연평도 해병대 훈련장 고치며 도르래 시스템을 배우다

김태관 2023. 6. 8. 0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눈표범 원정대 4회]
지속가능한 원정대 프로젝트를 꿈꾸며

산 다니는 선배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원정을 한 번도 못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다녀오는 사람은 없더라."

그 말대로다. 당장 우리만 해도 2021년 레닌봉의 매콤한 맛을 잊지 못해 올해도 이 고생을 하면서 다시 원정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원정, 한 번 해봤다고 쉬워지는 일은 어째 하나도 없다. 다들 대체 어떻게 몇 번이나 원정을 갈 수 있는 거야?

매월 기사마다 빠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여전히 후원 및 협찬사를 찾고 있다. 최근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아웃도어 팀을 선발해서 지원 및 협찬을 해주는 프로모션을 열었기에 지원해봤지만 당당하게 탈락했다. 발표 당일 밤 11시까지 전화기를 쥐고 있던 스스로가 떠오르는 조금 슬픈 기억이다. 이후 아는 후배가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약간 우울해졌다. 중앙아시아 등반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제공되는 베이스캠프가 없어서 우비로 처마를 만들었던 레닌봉 원정. 역시 돈은 많은 게 낫다..

지속 가능한 딴따라

우리의 원정은 올해가 끝이 아니다. 내년에도 중앙아시아 2개봉이 남았고, 블리자드를 만나 후퇴했던 선홍이의 설욕을 위한 마운트 쿡 등반,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중앙아시아의 수많은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나의 원대한 계획에 우리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손주 완전 딴따라여."

딴따라가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니겠다만 숭고한 목적이나 치열한 목표가 없이 즐거운 것으로만 따지자면 딴따라는 찰떡이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 무용의 극치일 것이다. 알아주지 않는 노래, 팔리지 않는 영화와 같은 무용함. 그렇지만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들 중에 이런 '무용'이 꽤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지속가능한 딴따라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게 PR, 바로 월간<山> 연재다. 덕분에 처음 뵙는 선배님도 기사 잘 읽고 있다는 덕담을 주시기도 하시고, 하나 둘 늘어가는 댓글을 보면 제법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2022년도에 기고했던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보면 미우나 고우나 레닌봉은 정말 잊지 못할 산이 될 것 같다.

이게 아니었다면 지금의 연잳재도 없었을 거다. 감사한 기사다

또 하나는 영상 제작 계획이다. 레닌봉 원정 때 가장 아쉬웠던 게 영상의 부재다. 뭔가 짧아도 좋으니까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을 남기고 싶었다. 우리가 뭘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활자나 사진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그 공기를 전할 수 있으면 누군가 한 두 명 정도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까? 이번 원정에서는 꼭 영상을 만들어서 어디에라도 투고하고자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외대 김동수 선배님의 제안이 들어왔다. 올해 원정 영상을 잘 만들어서 그걸 내년 울주 세계산악영화제 영상 제작 지원 사업에 지원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되기만 한다면 정말 좋은 기회고 너무나 황송한 일이겠지만, 울주 "세계" 산악영화제인데 우리가 될까? 어쨌든 영상을 남겨두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 이번엔 꼭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런 모습을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내놓을 순 없을 텐데..

여기는 연평도 유격장 이상 무

이번 달에는 조금 특이한 훈련이 있었다. 최선홍 대원과 이재호 대원이 연평도의 유격장 시설을 점검하면서 로프 작업 시스템을 숙달한 것이다. 나는 뭐하고 있었냐고? 무릎아파서 사렸다. 그런 관계로 이번 훈련의 후기는 최선홍 대원의 수기를 통해 전하고자 한다.

=====================================================

이번 달에는 조금 특이한 훈련이 있었다. 최선홍 대원과 이재호 대원이 연평도의 유격장 시설을 점검하면서 로프 시스템을 숙달한 것이다. 최선홍 대원의 수기를 전한다.

아침 첫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인천항에 가기 전 사무실에 들려 공용 장비를 들고 가야 한다. 인천산악구조대는 문학경기장 인공암장 내부에 사무실이 있어 문학경기장역에서 하차했다. 선배님들께 재호를 소개하고 장비들을 정리했다. 보수할 장비들을 들어 봤는데 '헉' 소리가 난다. 정말 무지막지하게 무겁다. 인수봉 보수 작업 때 썼던 장비들과 비교해 봐도 훨씬 무겁다. 그래도 산은 안 탄다니 안도감이 들었다.

인천항에 도착해보니 입구부터 북적북적하다.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다들 낭만 여행을 떠나는 건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다. 그에 반해 나는 무거운 짐에 쩔쩔매고 있으니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다.

인천항에 들어서는 두 사람.. 같이 가지 못해서 다행이다

승선 시간이 다가와 선착장으로 향했다. 신원을 검사하는 직원들이 "뭐하는데 이런 것들을 들고 가냐"고 묻는다. 로프랑 철 무더기를 들고 가니 어지간히 수상해 보였나보다. 유격장 보수작업을 간다 대꾸하고 배에 승선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대연평도 도착 전 소연평도에 잠시 들렸다고 하는데 자느라 구경도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항구에 도착했다는 재호의 말에 눈이 뜨였다. 연평도에 첫발을 디뎌 본다. 바다직박구리의 고운 노랫소리가 우릴 반겨준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이쁜 새소리를 듣다니 오늘 운이 좋겠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짐들을 날랐다.

마중 나온 상사님 차량을 타고 유격장으로 갔다. 짐이 워낙 많아 2번 나누어 갔다. 차로 가도 거리가 꽤 된다. 유격장은 생각보다 자그마하다. 그래도 20m 정도 돼 보이는 외벽과 상승외줄, 외줄도하 등 갖출 건 다 갖춰져 있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선배 세분은 외벽에서 작업하고 나랑 재호, 대장님은 상승외줄을 맡았다. 나머지 분들은 외줄도하 연습장에 설치되어 있는 줄들을 교체하기로 했다. 우리 조가 교체해야 할 외줄은 상승 외줄 두 줄, 풀장이 있는 곳에 네 줄. 총 여섯 줄을 교체해야한다.

훈련 시설 보수 작업

로프들이 굵직굵직하다. 직경이 손가락 두 마디는 족히 된다. 그래서 쇠톱으로 잘라야 했는데 너무 두꺼워 나무 자르는 것 보다 힘들었다. 특히 무엇보다 매듭 만드는데 너무 애를 먹었다. 너무 뻑뻑한 나머지 옭매듭 하나 매기만 해도 팔에 펌핑이 온다.

새 줄을 설치하기 위해 내가 빌레이를 담당하고 대장님이 위로 올라 가셔서 작업을 진행했다. 구름이 해를 가린 덕분에 오전 작업은 수월하게 끝이 났다. 문제는 오후였다. 태양이 연평도에 온 우릴 반겨주는지 햇살을 아낌없이 쏘아줬다.

상승외줄 후엔 풀장에 있는 외줄을 교체해야한다. 줄을 잡고 물웅덩이를 통과하는 훈련장이다. 고여 있는 물웅덩이는 녹조인가 미역인가 암튼 물속이 파릇파릇하다. 빠지면 못해도 샤워 3번은 해야할듯하다. 작업을 이어 나가던 도중, 실수로 등반용 로프를 물속에 빠트렸다. 아차 싶어 로프를 잡아 보려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자동으로 으악 소리가 나왔다. 내가 빠진 것처럼 찝찝하다.

외줄 작업이 끝났다. 이제 외줄도하 교장만 끝내면 된다. 외줄 아래 있는 안전망이 노후화되다 보니 축 쳐져 있다. 위에 올라서자마자 바닥을 친다. 느슨해진 안전망 밧줄을 다시 팽팽히 당겨 주기로 했다. 티롤리안 브리지를 만들 때와 원리가 똑같았다. 우린 대장님의 지도하에 도르래 시스템을 설치했다. 대장님의 설명을 들으니, 아리송했던 도르래 사용법이 드디어 이해 됐다. 티롤리안이든 홀링이든 도르래 원리의 본질은 같았다. 대장님은 추가로 도르래 시스템을 이용한 크레바스 구조에 대해서 한마디 더 해주셨다. 3:1 시스템으로는 의식 없는 사람을 끌어올리기 불가능하다. "반드시 도르래 원리를 숙지하고 그 이상의 시스템을 눈감고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연습 한 뒤 원정을 떠나라"고 신신당부했다. 말씀대로 원리만 이해하면 3:1에서 6:1, 9:1로 변환이 가능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5시가 넘었다. 작업량이 많아 다 못 끝낼 줄 알았는데 기어코 끝냈다. 작업이 무사히 끝나 올해부턴 해병대 장병들이 열심히 훈련 받을 수 있을 것 이다. 그들에겐 악재인건가? 해병대 후배들이 한 여름에 훈련하는 모습들이 상상된다.

교육장 앞에서 한 컷!

이름값을 위한 표범길 등반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동수형님의 긴급호출이 있었다. '루트파인더스'라는 산악 사이트를 운영하시는 김진덕 선배님과의 만남이 주선됐다는 소식이었다. 이전에 후원사업과 관련하여 전화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원정기와 기사에 너무나 좋은 평가를 내려주셔서 내가 쑥스러울 정도였다. 약속시간이 저녁 6시였기에 우리 팀은 오랜만에 4명이 다 함께 등반을 가기로 했다. 장소는 도봉산이었다. 이번 훈련에서는 등반뿐만이 아니라 기념비적인 행사가 있었는데, 바로 막내 재호의 원정지원금 수여식이었다. 재호의 글을 통해 전한다.

박쥐길 하강중인 김태관

=====================================================

5월 8일 월요일 아침, 완전체가 모였다. 태관, 선홍, 나 이렇게 셋은 자주 모였지만 눈표범 원정대의 진짜 대장, 동수 형까지 함께 모이는 건 오랜만이었다. 원래 가기로 했던 춘클리지 등반 약속이 야속한 비로 인해 취소되었다. 하늘은 어린이의 맘을 참 몰라준다. 주말 내내 내리는 비에 생긴 오기로 월요일 오전 등반을 약속해버렸다. 그날 아침 8시께, 원래 인천에 일이 있어 저녁 회담 자리에만 참여하기로 했던 선홍 형에게 전화가 왔다.

"재호야, 나 출발한다."

"형? 출장 간다며?"

"출근하려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냥 등반 가려고"

"예???"

뭐 결과적으로 모두가 모일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럼에도 도봉산 아래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실소가 터져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해 먼저 어프로치를 시작한 동수 형을 따라 나와 태관 형이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마침내 석굴암 삼거리에서 동수 형을 만나 다함께 박쥐 아래 도착했다. 날씨는 더웠고 바위는 여전했다. 가방을 내리고 숨을 고르며, 짧지만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기운을 차린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장비를 나눠 차고, 박쥐 시작점에 올라섰다. 선등은 동수 형. 그 뒤로 나, 태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선홍 순으로 등반했다. 동수 형은 처음 밸런스에서 약간 고전한 뒤로는 거침없이 바위를 뜯었다.

그러던 중 선홍 형에게 전화가 왔다. 길을 잃었다는 비보였다. 우리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저 그가 조심히, 빨리 이쪽으로 와 줄을 묶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역시 동수형님은 대단하시다.

동수 형의 선등이 끝난 후, 후등인 나는 부담 없이 처음 구간을 넘어섰지만 중간 슬랩 한 스텝이 어려워 버벅댔다. 그렇게 나와 태관형까지 등반이 끝난 후에도 선홍 형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선등자가 박쥐 날개를 모두 뜯고 소나무 아래에 도착하고서야 오늘의 요주 인물, 선홍 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발을 잘 디뎌가며 날개를 뜯고, 위로 올라서는 구간에서 슬립을 먹었다. 한 번 슬립을 먹으니 후등임에도 겁이 나, 팔이 저릴 정도로 힘을 잔뜩 주며 굼적거리기만 했다. 여기에 무서움과 함께 백날 머물러봤자 아무것도 안 되는 걸 알기에 눈 딱 감고 과감한 자세로 후다닥 올랐다. 그러니 오히려 발이 안정감 있게 디뎌졌고, 그 뒤로 소나무까지는 속도를 내 등반했다.

그 뒤로 태관 형은 등강기를 이용해 오르고 나는 먼저 하강을 했다. 태관 선홍 순으로 등반을 마치고 하강을 했다. 동수 형은 새로 가져오신 하강기 기능을 사용해보면서 표범에 줄을 걸고 내려왔다. 나는 뒤로 원정 비용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일정이 잡혀있어 먼저 하산을 했고, 형들은 마저 표범을 등반하고 도봉산을 떠났다.

재호의 등반(박쥐길)

평범한 등반일 수 있겠지만, 이날을 잊을 수 없는 건 이번 원정에 대한 외대산악회 선배님들의 응원을 가득 받았기 때문이다. 김동수, 정상욱, 남승우, 오영택, 허훈, 유승대, 윤여탁, 김찬영, 황경희, 김강일, 송상묵, 성기섭, 남상곤, 박준, 윤익준, 정승구, 김지훈 형의 마음을 동수 형이 대표로 도봉산의 정기를 담아 전달해줬다.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형들의 온정 덕분에 하산하는 발걸음이 정말 가벼웠다. 이 감사함을 절대 잊지 않고, 훈련에 더욱 정진하여 원정 복귀 후 당당하게 형들에게 인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열정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달하여, 어느 기사의 표현처럼, 외대산악회도 다시금 '원정냄새'가 물씬 풍기기를 기대한다.

재호의 영광스러운 첫 고산등반을 위해 힘써주시는 외대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표범길 등반을 마친 후 하산하여 김진덕 선배님을 만나러 갔다. 드디어 뵙게 된 선배님은 역시나 시종일관 산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등반에 너무나 큰 관심을 보내주셨다. 특히 만난 모든 산악인들의 비망록을 기록하고 있다는 수첩에 황송하게도 우리의 비망록도 실리게 되었다!

자신있게 써 내려간 비망록. 지금보니 좀 부끄럽다
정말 감사한 말씀을 많이 해주신 김진덕 선배님께 압도적 감사! 응원 감사합니다!

선배님은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전원 집합의 날이 지나갔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