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넥스포 아시아]③ 문정훈 서울대 교수 “韓 와인시장, 30대·여성이 이끈다”

싱가포르=유진우 기자 2023. 6. 8.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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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비넥스포 아시아(Vinexpo Asia)’ 첫 날 아침.

다소 이른 오전 10시 반이었지만, 100여명이 들어서는 강연장이 앞줄부터 마지막 자리까지 가득 찼다.

이날 연사는 문정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였다. 문 교수는 ‘한국의 주류 소비 흐름(Alcoholic Beverage Consumption Trends in Korea)’을 주제로 30분간 강연에 나섰다.

한국은 와인 소비 측면에서 신흥국(emerging country)이다. 한국 와인 수입과 소비는 팬데믹 기간 동안 급격히 증가했고, 최근에는 양적 성장에 이어 질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

와인 뿐 아니라 위스키 시장 역시 지난 20년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다, 2021년 20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하이볼 소비 증가에 힘입어 극적으로 반등해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강연은 한국 와인과 위스키 시장에 놓인 기회와 위협, 그에 통찰력을 제공한다.

비넥스포지엄

강연에 앞서 참석자들을 위해 주최 측이 준비한 설명을 보면 외국 주류업계가 우리나라 시장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평가하는지 예측할 수 있다.

세계 와인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위상이 이전보다 얼마나 높아졌는지 증명하듯, 강연장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주류 업계 관계자들이 눈에 띄었다. 목에 건 명패를 슬며시 살펴보니 프랑스와 미국, 스페인, 칠레,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같은 국가 이름이 보였다.

전통의 강자였던 소주, 맥주, 막걸리는 점차 저물고 있다.

대신 와인, 위스키, 증류식 소주가 떠올랐다.

그가 시작과 동시에 급변하는 우리나라 주류시장에 대해 설명하자, 관람객 사이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이 강연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에게 한국은 여전히 ‘소주의 나라’다. 이들은 한국시장에서 소주 자리를 와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문 교수는 “한국에서 주류 출고량 상위 주종이었던 맥주, 희석식 소주, 탁주는 출고량이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지만 와인 같은 과실주 출고량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며 “지난 20여년 동안 꾸준히 줄어들었던 위스키 출고량 역시 2021년 이후로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가 인용한 관세청 통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와인은 2018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25% 수입금액이 증가했다. 위스키 역시 같은 기간 연평균 15%씩 늘었다.

그래픽=정서희

통계로 살펴보면 한국 와인 시장은 30대 여성, 더 비싼 와인, 여전한 칠레 강세(强勢) 이렇게 세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① 30대 여성 소비자가 주도하는 젊은 시장

와인 시장이 고도화한 프랑스나 영국, 미국 같은 국가들은 최근 30대 이하 젊은 소비자들이 와인을 마시지 않아 골치를 썩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주로 경제력이 두둑한 50대 이상 남성들이 와인 시장을 이끈다.

그러나 우리나라 와인 시장은 이들보다 훨씬 젊은 30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문 교수는 “전체 와인 소비량을 놓고 성별로 구분해보면 30대 여성이 18%로 가장 높았다”며 “20대 여성(12%)과 40대 여성(17%), 50대 여성(14%)을 포함해 모든 여성 연령대가 같은 남성 연령대보다 와인 소비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다만 오로지 화이트 와인 소비량에 있어서 만큼은 40대 남성이 다른 연령대와 성별을 멀찍이 앞섰다. 이들은 주로 일식(日食)이나 해산물 요리를 먹을 때 사케를 대신해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유명 화이트 와인 산지 루아르의 유명 와인 생산자 ‘조셉 멜로’에서 수출 담당자를 맡고 있는 패트릭 추는 “보통 프랑스에서 화이트 와인은 연령대가 젊은 여성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한국 와인시장이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증거”라고 말했다.

② 양적 확대·질적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보기 드문 시장

우리나라 와인 시장은 양적으로 커졌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양적·질적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몇 안되는 국가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 와인 시장 질적 성장을 나타내는 지표로 소비자들이 점차 와인에 더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2015년까지만 하더라도 2만~3만원대 와인을 찾는 소비자는 극히 드물었다. 열명 중 한명(12%) 정도에 그쳤다. 이 수치는 6년이 지난 2021년 26%까지 늘었다.

반면 1만원 미만 와인을 찾는 수요는 2015년 37%에서 2021년 28%로 9%포인트(p) 줄었다.

문 교수는 “저가 와인으로 와인 시장에 발을 들인 젊은 소비자들이 이제 중가(中價) 혹은 고가 와인에도 아낌없이 제 값을 지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③ 칠레산 와인이 수년째 장악한 시장

칠레는 세계 6위 와인 생산국이며, 5위 와인 수출국이다.

2021년 국제와인기구(OIV) 통계를 보면 칠레 와인 생산량은 1340만헥토리터로 세계 1위 와인 생산국 이탈리아(4450만헥토리터)에 비하면 30%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오로지 우리나라에서 칠레산 와인은 수년째 수입물량 면에서 1위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이날 강연에도 칠레 유수의 브랜드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들은 강연 내내 눈여겨 볼 만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머리 위로 길게 손을 뻗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열정을 보였다.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니스랩이 한 국내 주요 리테일 브랜드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칠레산 와인은 우리나라 레드 와인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차지하고 있다. 2위 프랑스(22%)와 3위 이탈리아(14%), 4위 호주(12%) 등을 멀찌감치 따돌린 결과다.

화이트 와인 시장에서도 칠레산 와인의 강세는 여전했다. 화이트 와인 시장에서는 이탈리아 와인이 28%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칠레산 와인은 이 시장에서도 2위(19%)를 기록하면서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프랑스와 같은 수준이다.

문 교수는 “한 브랜드에서 판매한 와인을 기준으로 작성한 통계기 때문에 이 수치가 시장 전체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판매량과 제품 수에 있어 칠레가 강세라는 추세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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