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이게 마블이야, 트랜스포머야…'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2007년 시작된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다섯 번째 영화 '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2017)를 끝으로 수명이 다한 것 같았다. 이듬해 '범블비'가 나왔을 땐 과해도 너무 과하다는 인상까지 줬다. 그런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다시 돌아왔다. 6일 공개된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은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 리부트(reboot·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 첫 번째 영화다. '트랜스포머' 리부트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범블비'로 일단 간을 보며 가능성을 확인한 뒤 1994년으로 넘어 와 본격적인 재가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영화, 익숙해도 너무 익숙하다. 변신 로봇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아니다. 특정 슈퍼히어로 영화가 자꾸만 생각난다는 얘기다. 오리지널리티를 대놓고 포기한 듯한 이 행보에 관객은 묘하게 당황할 수밖에 없다.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에 관해 말하기 전에 돈 얘기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그간 천문학적인 매출을 기록해왔다. 1~4편이 매출액 37억6600만 달러를 기록했고, 흥행에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5편 '최후의 기사'도 전 세계에서 6억 달러,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범블비' 역시 4억68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낮은 완성도 탓에 아무리 욕을 먹어도 볼 사람은 보고, 제작비를 회수하고도 남는 매출을 낼 수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말하자면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은 이 시리즈의 투자 가치만 계산해 찍어낸 영화 같다. 리부트라는 단어로 새로운 세계관을 약속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트랜스포머'만의 특색은 보여주지 못하고 뜬금 없이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에 의존한다. '트랜스포머' 골수 팬이야 뭘 보여주든 만족하겠지만 새로운 걸 원하는 관객은 새삼스럽지만 또 실망할 수밖에 없다.
압권은 이 영화가 가장 공을 들인 듯한 마지막 대규모 전투 장면이다. 오토봇·맥시멀·인간이 힘을 모아 테러콘에 맞서는 이 액션은 앞서 마블이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어벤져스:엔드 게임' 등에서 보여준 액션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특정 장면이 유사한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장면이 똑같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일부 시퀀스나 신이 특정 영화를 소환하다면 일종의 오마주(hommage·특정 작품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일부 장면을 인용하는 것)로 볼 여지도 있겠지만,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처럼 긴 분량을 가져왔다면 그걸 오마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 '노아'가 슈퍼히어로로 다시 태어나는 장면은 '아이언맨'에, '엘레나'의 행보는 '반지의 제왕'에 빚을 지고 있다. 다소 과하게 이야기하면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은 변신 로봇으로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를 패러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가 트렌드를 철저히 반영한 공산품이라는 건 갖가지 설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 주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기반으로 한 뉴트로(New-tro·New와 Retro의 합성어)에 골몰하고 있다는 점을 겨냥해 그 시대 힙합 음악과 스트리트 패션을 적극 보여준다는 것. 노아·엘레나 두 주인공을 흑인 배우에게 맡기고, 새로운 오토봇 캐릭터인 '미라지'가 이른바 '흑인식 영어'를 구사하게 한다는 것 등이다. 유행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순 없겠지만,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마저도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은 이 작품을 긍정할 수 없게 한다.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은 마지막 대목에서 앞으로 이 시리즈의 방향을 암시하며 끝난다. 또 한 번 관객을 당황하게 하는 이 전개는 이 영화가 돈을 벌 수는 있을지 몰라도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거라는 걸 확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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