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견제위해… 美, 삐걱대던 빈 살만에 ‘화해의 골프채’ 선물했나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3. 6. 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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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PGA 골프 합병 뒤엔 ‘외교戰’
지난 5월 미국 버지니아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소유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에서 열린 LIV골프 대회에서 선수들이 우승자 축하 샴페인을 터뜨리는 모습. 미 프로골프투어는 지난 4월부터 극한 갈등을 벌이던 LIV 측과 합병 논의를 극비리에 진행, 지난 6일 합병을 전격 선언했다. '사실상 사우디가 외교와 골프 모두에서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AP 연합뉴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의 후원을 받는 리브(LIV) 골프가 합병을 선언한 6일(현지 시각)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사우디 공식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블링컨 장관은 전날 “(미국의 중동 최대 동맹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촉진하겠다”면서 중동에서의 미국 리더십 회복을 공개 선언했는데 그의 사우디행(行)과 거의 동시에 1년간 이어져 온 미국과 사우디의 ‘골프 전쟁’이 극적으로 봉합된 것이다.

한날 예고 없이 공개된 이 두 개의 이벤트는 PGA와 LIV의 합병 선언이 스포츠계의 뉴스를 넘어서는, 국제정치적 무게를 지닌 상징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6월 사우디가 국부펀드의 후원으로 LIV 투어를 출범시킨 이후 PGA는 LIV에 가담하는 선수들의 PGA 출전 자격을 박탈까지 하면서 대립해 왔다. 비슷한 시기에 미 정부와 사우디 왕실의 관계도 악화하면서 골프를 둔 충돌이 양국의 껄끄러운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때 중동 내 미국의 최우방이었던 사우디와 관계가 벌어지는 가운데 PGA와 LIV의 합병과 블링컨의 사우디 방문이라는 ‘깜짝 뉴스’가 같은 날 나오면서 식어가던 양국 관계가 전환점을 맞을지 주목되고 있다. 미·사우디 사이의 갈등을 틈타 중동에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사우디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기조로, 외교 노선을 바꿨다는 전망도 나온다.

7년만에… 사우디에 이란 대사관 재개관 - 6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이란 대사관 재개관 행사에 양국 외교 관리들이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란 대사관이 다시 문을 연 것은 2016년 양국 관계 단절 이후 7년 만이다. /AFP 연합뉴스

미·사우디 갈등과 잇따른 ‘골프 전쟁’의 발단은 미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하던 사우디의 반체제 성향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터키에서 사우디 정보 요원들에게 잔인하게 암살당한 사건이다. 이는 미국과 사우디의 전통적 동맹 관계 물밑에서 사우디가 ‘딴생각’을 한다는 미 외교가의 오래된 의심에 불을 지폈다. 2021년 대통령에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30대 지도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배후로 지목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살인자”로 부르며 비난했다.

바이든 정부가 빈 살만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몰아세우는 가운데 사우디는 LIV 골프를 만들어 미국의 특급 선수들을 끌어들였고, 갈등의 불길은 스포츠계로 옮겨붙었다. 미 언론은 LIV가 빈 살만이 ‘오일 머니’를 무기로 밀어붙여 온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스포츠로 인권 유린 등 부정적 평판을 세탁하는 것)’의 전형적 사례라며 비판했다. 이 와중에 바이든의 정적(政敵)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LIV 경기를 본인 소유 골프장에 잇따라 유치하며 ‘실속’을 챙겼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가스 등 에너지값이 치솟고 미국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닥치면서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에 도움을 바라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7월 바이든은 사우디에서 43세 어린 빈 살만을 만나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한 면책권을 인정하겠다”고까지 하면서 (원유 가격 하락을 위한) 증산을 부탁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되레 오펙플러스(OPEC+·산유국 협의체)의 감산을 주도하며 미국의 뒤통수를 쳤다.

아울러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이 사우디와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미국의 중동 내 입지가 쪼그라들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는 앙숙이었던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7년 만에 정상화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빈 살만을 만나 38조원 규모의 투자협정을 맺고 원유값 위안화 결제를 논의하는 등 양국은 노골적으로 밀착하며 미국을 소외시켰다.

지난 4일 사우디가 추가 감산을 발표하며 미·사우디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표된 PGA와 LIV의 합병을 두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사실상 사우디의 정치적 승리”라고 보도했다. 양국 간 화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사우디에 줄곧 밀리기만 했던 미 바이든 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다시 한번 접고 들어갔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좀 더 많다.

6일 사우디를 찾은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빈 살만과 만나 1시간 40분에 걸친 긴 회담을 했다. 백악관 매슈 밀러 대변인은 “회담에선 중동 그리고 그 외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사우디에선 7년 전 폐쇄했던 이란 대사관의 재개관 행사가 열렸다. 미 국무장관의 방문일에 중국 중재로 화해한 이란과의 외교를 공식 재개한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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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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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회담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이번 방문에서 사우디 지도층을 만나 수단·예멘의 분쟁 종식, 이슬람국가(IS) 퇴치, 이스라엘·아랍국가 관계 정상화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AFP 연합뉴스
지난해 자신 소유의 뉴저지 베드민스터 골프장에서 열린 LIV 골프대회 프로암 경기에서 선수들과 포즈를 취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P 연합뉴스
지난 2022년 12월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아랍국가 정상회의에 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악수하고 있다. 중국과 사우디의 밀착은 미국을 크게 긴장시키고 바이든 정부의 외교 노선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타가 됐다. /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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