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없는 두 惡女가 만났다

이태훈 기자 2023. 6. 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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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카고’ 오리지널팀 내한… 韓·美 무대 주역 두 ‘록시’의 수다
200여 회와 511회.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를 연기해온 배우 미국의 케이티 프리든(오른쪽)과 한국의 아이비(왼쪽)는 마주 앉자마자 오랜만에 만난 자매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종찬 기자

‘록시’와 ‘록시’가 만났다.

지난 1일 뮤지컬 ‘시카고’ 미국 오리지널팀 내한 공연이 열리는 서울 용산구 공연장 블루스퀘어. 주인공 ‘록시’ 역의 배우 케이티 프리든(24)은 한국판 ‘시카고’의 대표 ‘록시’인 배우 아이비(40)를 만나자 손뼉을 치며 반가워했다. 케이티는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지금까지 200회 넘게, 아이비는 2012년부터 2021년 5번째 시즌까지 511회 록시로 무대에 섰다. “내가 한국의 최장수 록시”라는 아이비의 인사에 둘은 마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록시’ 찾아보며 연구했죠”

뮤지컬 '시카고' 미국 오리지널 투어팀 내한 공연. 록시 하트 역의 케이티 프리든(오른쪽)이 벨마 켈리 역의 로건 플로이드(왼쪽). /뉴시스

케이티 “오, 세상에! 당신이 ‘록시’를 연기한 영상을 포함해 모든 록시들의 영상을 전부 찾아서 보고 또 보면서 공부했어요. 드디어 이렇게 만났네요!”

아이비 “영광이에요, 하하. 한국에 온 걸 환영해요. 저도 ‘메이드 인 USA 록시’를 만나게 돼 너무 반가워요.”

케이티 “저는 네 살 때부터 춤을 췄고,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죠. 1975년 이 뮤지컬을 처음 만든 브로드웨이의 전설적 창작자 밥 포시만의 독특한 분위기, ‘포시 스타일’을 정말 사랑했고 늘 연구해왔답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록시를 연기하다니 아직도 꿈속 같아요.”

아이비 “2008년 처음 객석에서 공연을 봤을 때 반해버렸던 공연이었는데, 2012년 오디션을 통과해 처음 록시 역을 맡았을 때 저도 꿈꾸는 것 같았어요. 가수로 활동하다 뮤지컬 배우가 된 뒤 처음 맡은 주연 배역이었죠. 케이티는 8개월간 미국 도시 51곳을 돌며 공연하고 바로 한국으로 왔죠?”

케이티 “하하, 사실 당신을 만나면서 내가 51곳이나 갔다는 걸 처음 세어 봤어요. 도시마다 관객 반응도 다 달라 매일 새로웠죠. 작년 추수감사절 시즌 워싱턴 DC 공연은 잊을 수 없어요. 제가 워싱턴 DC 인근에서 자라서 부모님과 친구들, 어릴적 무용 선생님까지 모두 초대했거든요. 제가 춤만 추는 줄 알았던 친구들이 노래에 연기까지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날마다 가장 진실한 나만의 록시”

뮤지컬 '시카고' 내한 투어를 위해 방한한 미국의 록시 케이티 프리든과 한국에서 가장 오래 록시를 연기한 아이비가 함께 무대 위에 섰다. 2023년 6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 오종찬 기자

아이비 저는 지난 2020년 5번째 시즌 공연 때 처음 록시 역에 배우 3명이 트리플 캐스팅됐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2014·15년에는 저 혼자 모든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다른 록시들과 함께하며 정말 많이 배웠죠. 케이티는 혼자 모든 공연을 소화하죠?”

케이티 “맞아요. 체력적으로 정서적으로 모두 만만치 않죠.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쉬고, 체력 관리를 위해 운동도 계속 해요. 제 경우엔 어릴 때부터 해온 발레 연습이 몸 상태와 춤의 기술적 부분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날 마음 상태에 따라 무대 위에서 어떤 날엔 좀 더 어리숙하게, 어떤 날엔 더 연약하게 록시를 연기해요. 그게 늘 무대 위에서 진실한 나만의 록시가 되는 방법 같아요.”

아이비 “맞아요,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배우도 사람이라 매일 마음이 변하잖아요. 같은 대사와 노래도 그날 감정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면 무대가 더 즐거웠죠. 혼자 매일 ‘록시’로 무대에 설 땐 꼭 매일 경기에 나가는 운동선수처럼 긴장이 쭉 유지되고 나만의 캐릭터를 다져가는 기쁨이 있었어요.”

케이티 “그 말 정말 공감되네요. 매일 경기에 나가는 운동선수처럼 꾸준하게!”

◇”모든 게 진심인 사랑스러운 살인범”

뮤지컬 '시카고' 내한 투어를 위해 방한한 미국의 록시 케이티 프리든과 한국에서 가장 오래 록시를 연기한 아이비가 함께 무대 위에 섰다. 2023년 6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 오종찬 기자

아이비 “록시는 남편 몰래 만나던 애인을 살해하고 재판을 받지만, 언론과 대중의 속성을 교묘히 이용해 깜짝 스타가 되죠. 처음엔 이 미국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한국 관객이 공감하게 표현할까 고민됐어요. 무조건 관객의 사랑을 받아야겠더라고요. 모든 말과 행동이 진심이어야 록시의 사랑스러움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케이티 “맞아요. 사실 나쁜 여자이고 얄미운 캐릭터지만, 동시에 범죄자로만 느껴지면 안 돼요. 좋아하고 싶고 사랑할 만하고 공감이 가야 했어요. 저부터 그 매력에 흠뻑 빠져야 했고요. 저는 원치 않던 삶 속으로 던져졌지만, 단순한 생존을 넘어 스타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불타는 록시의 성격에 주목했죠.”

아이비 “그렇죠, 하하. 대본만 보면 진짜 나쁜 여자인데 못된 대사, 못된 연기를 할 때도 사랑스러워야 해요. 내가 가진 ‘끼’가 연기에 모두 배어나오게. 그래서 배우에겐 록시가 정말 어려우면서 또 매력적이죠.”

케이티 “완전 공감! 우리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늘 새로운 록시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배우 자신을 록시라는 캐릭터에 입히는 것처럼. 그래서 록시의 독백 같은 노래 ‘록시’가 좋아요. 그 노래를 부를 때 자유로움을 느껴요.”

아이비 “전 시즌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달라지더라고요. 10년 넘게 접하다 보니 지금은 ‘품격(Class)’이 좋아요. 인물들이 자기 악행을 자기들 말로 풍자하죠.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 뮤지컬의 메시지도 이 노래에 많이 들어있죠. 가장 ‘시카고’다운 노래 같아요. 아, 직접 노래할 땐 누가 먼저 총을 들었는지 다투는 노래가 제일 재밌었어요.”

케이티 “록시의 어떤 면에 공감이 가나요? 저는 록시가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상처주는 건 싫지만, 늘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뤄가려 하는 점이 좋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아이비 “아, 그건 저랑 좀 다르네요, 하하. 전 의외로 야망이 없어요. 생각해 보면 오히려 뭘 대단히 하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제게 행운이 주어지고, 이렇게 오래 뮤지컬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 어려운 순간에도 항상 긍정적으로, 툭툭 털고 일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런 면은 저와 닮았네요.”

뮤지컬 ‘시카고’는 1975년 브로드웨이의 신화적 창작자 밥 포시에 의해 처음 무대에 오른 뒤 1996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을 시작했다. 리바이벌 뒤 브로드웨이에서만 25년간 1만 회 이상 공연했다. 1988년 초연을 올린 ‘오페라의 유령’ 공연이 지난 4월 막을 내리면서, 현재 공연 중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가장 롱런하고 있는 작품이 됐다. 세계 36국 500개 이상 도시에서 3만2500 회 이상 공연돼 3300만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 서울 공연은 8월 6일까지. 이후 열흘간 부산 공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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