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스·드론 등 특허 비공개… 日, 안보기술 사수 나섰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3. 6. 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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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활용 못하도록 25개 분야 특허 공개 금지하기로

일본이 국가 안보를 극대화한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첨단 기술의 외국 유출을 원천 봉쇄한 법제화에 이어 방위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첨단 기술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책도 발표했다. 미·중 패권 경쟁 격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일본이 안보 쇄국(鎖國) 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가 스텔스나 무인기(드론)와 같이 국가 안보 관점에서 중요한 25개 기술 분야의 특허를 비공개한다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7일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작년 5월에 국회를 통과한 경제안전보장추진법에 따라, 25개 기술 분야의 특허를 비공개한다. 레이더에서 항공기를 감추는 스텔스 기술과 무기로 활용 가능한 드론·자율 제어 기술 등 15분야는 특허 비공개 대상으로 지정된다. 음속보다 5배 빠른 극초음속 비행을 가능케 하는 스크램제트 엔진 기술과 고체 연료 로켓엔진 기술 등 10분야는 방위 목적과 연관된 일부 기술을 비공개한다. 예컨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작년에 개발에 성공한 ‘스크램제트 엔진’과 관련한 특허는 비공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백형선

통상 시장경제에선 출원된 특허는 대략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 다른 기업들이 이를 보고 특허권자에게 돈을 내고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보편적 시스템이다. 그러나 일본은 안보에 위협 소지가 있는 기술의 외부 유출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특허 비공개라는 초강수를 택했다. 이 같은 조치는 “국가·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큰 발명에 대한 특허 출원에 대해서는, 출원 공개 등 절차를 유보하고 필요한 정보 보전 조치를 강구한다”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 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이 법에 따라 특허 비공개 대상이 될 경우 특허 출원을 취하하거나 외국에 출원하는 것이 금지되며 1년마다 비공개 연장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규정을 위반해 외국에 출원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벌칙 조항, 특허 비공개로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되는 발명가를 위한 손실 보상 규정도 적시됐다.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 출범 7개월 후인 지난해 5월 제정됐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마땅한 경제적 대응 수단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일면서 법제화로 이어졌다.

이날 일본 국회(참의원)는 ‘방위산업강화법’을 통과시켰다. 여당인 자민당뿐만 아니라, 야당 입헌민주당도 찬성한 이 법은 일본의 자위대 임무에 필수적인 방위 장비를 개발·생산하는 제조 기업이 사업을 지속 못 하고 철수할 경우 정부가 이 기업의 생산 라인을 매입해 국유화한 뒤, 다른 민간 기업에 생산 운영을 맡기는 게 골자다. 핵심 기술을 갖춘 자국 방산 기업을 세금을 들여서라도 지키겠다는 것이다. 살상 무기의 해외 수출이 금지된 일본에선 지난 10년 새 방산 기업의 사업 철수가 이어져, 장기적으로 방위력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일본 정부는 같은 날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데이터센터 등 4분야를 전략 분야로 규정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성장 전략도 발표했다. 기시다 총리는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수준으로, 세제와 예산 측면에서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최근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등 해외 기업의 생산 거점을 유치하는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다. 한국·중국과 경쟁하는 자동차 배터리에서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배터리 재료인 광물 자원의 안정적인 조달에도 민관 협력 체제로 대응할 계획이다. 온난화 문제와 같이 전(全) 지구의 문제 해결과 직결된 바이오 분야와 인공지능(AI)의 이용 급증에 따라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진 데이터센터에도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의 한 반도체 전문가는 “인공지능이나 반도체 등 미래 기술의 대부분은 첨단 군사 무기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만큼, 일본이 다시 기술 입국을 기치로 내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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