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그림 작가로 취업한 동생이 말했다 “형, 나 요즘 AI 공부해”

천현우 작가·前용접 근로자 2023. 6. 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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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내겐 다섯 살 어린 동생이 있다. 우리 형제는 글쓰기와 그리기에 청춘을 바쳤다. 막노동을 다녀와서 글을 썼고,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는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남들처럼 20대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연습장만 빼곡히 채워나갔다. 습작 노트로만 책장 한 편을 수북하게 채워낸 우리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나는 작가가 됐고 동생도 게임 원화가(原畵家)로 취업했다. 그 어렵다는 글 쓰고 그림 그려서 먹고사는 일에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동생은 첫 출근 전날이던 일요일 밤 거하게 취해 속내를 털어놨다. “형, 나 요즘 AI 공부해.”

요즘 챗GPT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몇 년 내로 사무직 일자리 대다수가 사라진다는 공포감이 만연하다. 사실 그림 분야에선 이미 어느 정도 일자리 대체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2022년 미드저니를 필두로 한 그림 AI가 대중한테 공개된 후 수많은 프리랜서들이 일감을 잃었다. 그림 AI는 인터넷 속 수많은 이미지를 식자재 삼아 담아놓은 거대한 솥이다. 사용자가 텍스트로 이미지를 주문하면 그 수많은 재료를 마구 뒤섞어 완성품을 내어 놓는다. 숙련자가 한 달 걸려서 그릴 그림을 몇 분 이내로 뽑아낼 수 있다. 물론 머릿속에 떠도는 이미지를 정확하게 뽑아내는 능력은 아직 인간만 못하다. 인간은 자기 머리로 생각한 이미지를 곧바로 그려내면 되지만 그림 AI는 텍스트를 집어넣고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하지만 원하던 이미지와 좀 안 맞는다 한들 빠르게 고품질의 그림을 뽑아내는 작업은 이미 사람보다 AI가 월등히 잘한다. 앞으로 그림 AI가 더 발전하면 인간의 그림은 상업 영역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와중에 동생은 오히려 그림 AI를 적극 사용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유도 꽤 타당했다. “내게 그림은 어디까지나 목적이 아니라 표현의 수단이다. 잘 그린 그림은 훌륭한 문장과 같아서 보기엔 경이롭지만 사실 그것만으론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별로 없다. 무엇보다 잘 그린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힘들었던 만큼 다 그렸을 때의 보람도 크지만 효율이 지극히 나쁜 작업이다. 그림 그릴 시간 아껴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투자하고 싶다.” 나는 동생이 그림 AI가 나왔을 때 얼마나 속앓이했는지 안다. 다른 직업 찾아본다며 진지하게 용접 전망이 어떠냐고 묻던 적도 있었다. 그때의 공포심을 극복하고 기술과 공존하길 택한 것이다.

그간 열심히 그림 실력을 쌓아왔던 사람들, 특히 프로를 지망하던 작가들에게 그림 AI의 등장은 국가 부도 수준의 절망이다. 들였던 시간과 노력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이들의 분노와 박탈감은 이내 집단행동으로 진화한다. 그림 AI를 사용하는 플랫폼을 보이콧하고, 그림 AI를 규제해 달라며 국민청원을 한다. 작가들의 이러한 집단행동을 투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AI를 싫어하는 작가들을 혁신에 반대하는 구태 취급한다.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일 거냐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단언컨대 공감능력 부족한 냉혈한들의 말장난이다. 그러나 AI를 무작정 금지해야 한다는 말도 위험하긴 매한가지다. 노동자가 기술 발전을 막으려던 시도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 불가능한 주장을 하는 동안 AI는 지금도 규제 밖에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내 고향은 한일합섬이 있다가 사라졌던 마산이다. 기계에 밀리고, 값싼 노동력에 밀리고, 불황과 부도 때문에 밀려났던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봐왔다. 이들은 무력하게 다른 일터로 밀려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일해야 했다. 그 풍경을 또 보고 싶지 않다. 그림 작가들이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만족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괴롭진 않은 길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선 무작정 AI를 반대하기보단 어떻게 활용할지, 그 과정에서 작가와 소비자가 느낄 불안과 불만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미우나 고우나 결국 우리 앞에 들이닥친 현실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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