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인구절벽과 비수도권 대학 구조조정

기자 2023. 6. 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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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의 대량 폐교가 코앞에 닥치자 교육부는 ‘라이즈(RISE) 사업’과 ‘글로컬(Glocal) 대학’이란 두 가지 대학 구조조정 전략을 내놓았다. ‘라이즈 사업’은 기존에 별개 사업으로 진행되던 네 개의 지역혁신형 대학 재정지원 사업들을 연계·통합하고 그중 50%를 지자체가 시행 주체가 되도록 변형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이다. ‘글로컬 대학’이란 비수도권 지역의 우수 대학 30곳을 선정해 향후 5년간 1000억원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벌써 라이즈 사업에 7개 광역시·도가 시범 선정됐고, 글로컬 대학 사업에도 100개가 넘는 대학들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원칙적으로 중앙정부 일변도의 대학교육의 거버넌스를 광역시·도가 주도하도록 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금까지 대학들은 교육부의 획일적 사업 기준을 맞추느라 지역 적합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라이즈 사업의 목적이 광역 지자체에 고등교육 재정사업권을 부여하겠다는 점에서 볼 때, 지금부터라도 광역시·도별로 지자체와 대학, 주민과 산업체가 함께하는 협치적 교육자치가 가능하다면 구태여 여기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간에 현재 교육부는 시·도 지자체들을 서로 경쟁시키면서 그들의 기준과 관점에 맞는 시·도를 ‘시범 지역’으로 선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도 지자체들은 다시 한번 교육부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놓고 눈치를 보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처음부터 산업-대학 연관 생태계 구도에 따른 광역 고등교육 권역을 구분한 후 일정 비율의 고등교육 예산을 일괄적으로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지자체가 대학을 관리해 본 경험이 부족할 테니 전체 광역시·도에 대해 단계적인 역량 강화와 인큐베이팅 시범사업을 실시하면 될 일이다.

반면, 이와 함께 실시되고 있는 글로컬 대학 사업은 사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5년 동안 1000억원이라는 예산을 한꺼번에 퍼붓는 방식은 비유컨대 단비를 기다리다가 폭우를 맞는 형국이 될 수 있다. 학생은 부족한데 학교는 때아닌 돈잔치를 벌여야 하게 되며, 방만한 지출과 예산 낭비는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이러한 대규모 재정지원사업의 대상이 대부분 사립대학이라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사립대학들은 기본적으로 개별 기업처럼 각자도생을 위해 노력하며, 공공성 차원에서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며 교류하는 공동재로서의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들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개별 대학들만 존재할 뿐, 통합된 형태의 입학방식, 대학 간 학생 이동, 공동 수업 및 연구 등을 활성화할 수 있는 통합된 고등교육 생태시스템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 재정보조금을 대학의 공공 거버넌스 체계를 확장하는 마중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사립대학들이 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사립대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거버넌스 차원에서 준공립대학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또한 예산 지원이 끝나는 5년 후에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평가 장치를 갖춰야 한다. 과연 5년 후에는 교육부가 기대하는 ‘글로벌 수준의 로컬 대학들’의 기초가 다져질까? 혹은 입학자원 고갈의 태풍을 피한 30개의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파산선고를 기다리는 상황만 남게 될까? 그 결과에 대해 교육부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업의 주 타깃이 되는 지역대학 입학 가능 인구 가운데는 젊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86세대를 비롯한 곧 노동시장에서 밀려날 40·50대들도 포함돼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청년층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그 지역에 남아 있을 정주민들이며, 은퇴 후에도 다시 노동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진행돼온 ‘대학의 평생교육 체제 지원사업(LIFE)’은 대학과 평생학습을 연계하면서 중장년층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던 시도였다. 이것이 앞으로 라이즈 사업과 글로컬 대학 사업 속에 통합되더라도 이들에 대한 관심이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

참고로 올해 교육부의 전체 교육예산 96조원은 각각 유초중등교육에 84.5%, 고등교육에 14%가 배정돼 있지만 평생 직업교육에는 단지 1.5%만 배정돼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25세 이상 성인 인구에게 투자되는 공적 교육예산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다. 올해부터 신설된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포함해 라이즈 사업과 글로컬 대학 사업이 이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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