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찬의 우회도로] 뤼미에르 형제와 마동석

백승찬 기자 입력 2023. 6.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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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도시3>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역사는 한 번의 ‘대폭발’(빅뱅)로 시작되지 않았다”고 영화학자 파올로 케르키 우사이는 말한다. 18세기 후반부터 정적인 이미지들을 광원 앞에 빠르게 통과시켜 이미지가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창조하는 실험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1891년 특허를 취득한 ‘키네토스코프’는 앞선 기술력을 보여줬다. 구멍 뚫린 창을 통해 한 번에 한 사람씩 권투, 스트립쇼 등을 볼 수 있게 한 장치였다. 에디슨은 1894년 미국 뉴욕에 각기 다른 영화를 보여주는 10대의 키네토스코프를 들였다.

백승찬 문화부장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이보다 늦은 1895년 12월을 영화의 탄생 시점으로 본다. 이때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한 짤막한 다큐멘터리들의 관객이 개인이 아닌 다수였기 때문이다. 당시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한 50초 길이의 <기차의 도착>은 오늘날까지 ‘최초의 영화’로 불린다. 스크린 앞으로 다가오는 열차에 놀란 관객이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한 공간에서 다수의 관객이 같은 느낌을 공유한 최초의 영화 체험이었다.

지난 주말 영화관에서 <범죄도시3>를 봤다. 관객이 많은 토요일 오후 시간대라는 점을 감안해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코로나19 이후 관람료 인상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익숙해진 관객 습성의 변화로 ‘한국 영화가 죽어간다’는 기사를 본 것이 최근이었는데, 마동석의 굵직한 주먹을 타고 다시 한국 영화가 살아난 듯했다.

영화는 예상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약간의 역경을 극복한 뒤 몹시 나쁜 악당을 두드려 패 잡는다는 내용이다. 마석도가 죽거나, 끝내 범인을 놓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관객은 이 결말을 알고 있으며, 주연이자 제작자인 마동석도 관객이 그걸 원한다는 걸 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스포일러라 할 수도 없다. 1, 2편과 달라진 것은 빌런(악당) 정도다. 여성에 대한 시선이나 특정 지역·민족에 대한 묘사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설정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긴다는 점도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개봉 7일 만에 600만 관객이 영화관에 모였다. 올해 200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범죄도시3>의 인기는 놀랍다. 지금 기세대로라면 <범죄도시>는 한국 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인기 프랜차이즈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범죄도시>는 칸영화제에 초청되거나, ‘K무비’의 위상을 높일 영화는 아니다. <범죄도시>가 한국 영화계에서 갖는 의의를 찾는다면, 그건 어떻게든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았다는 점이다.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나 부모님과 함께하는 가족 나들이에 영화관을 끼워넣는 감각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커다란 팝콘 상자와 콜라를 아슬아슬하게 들고 상영 직전 어둑해지는 좌석을 찾아갈 때의 긴장과 흥분을 기억나게 해줬다는 점이다. 2시간 안팎의 시간 동안 재미가 있든 없든 반강제로 어둠 속에 붙들려 스크린에 집중하게 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저마다 영화를 평가하며 영화관을 빠져나오는 풍경을 되살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영화는 ‘함께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그것은 초기 영화의 수많은 스펙트럼 중에서도 다수의 관객 앞에서 상영된 <기차의 도착>을 콕 집어 ‘최초의 영화’라 부르는 이유와 같다. 넷플릭스나 티빙에 독점 공개하는 2시간 안팎의 콘텐츠 중에도 빼어난 작품이 많지만, 이 작품들을 ‘영화’라고 자신 있게 부르기엔 어딘지 어색한 이유와 같다.

영화관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한시적인 공동체가 형성된다. 14일 개봉하는 <엘리멘탈> 상영관에는 어린이와 보호자, 그리고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디즈니·픽사의 역량을 믿는 성인 관객의 공동체, 28일 개봉하는 <애스터로이드 시티> 상영관에는 스틸 한 장만 봐도 알 수 있는 강렬한 개성의 웨스 앤더슨 영화를 좋아하는 힙스터 공동체, 다음달 26일 개봉하는 <밀수> 상영관에는 김혜수·염정아 투 톱 여배우가 펼치는 스릴과 모험을 기대하는 한국 영화 팬들의 공동체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영화인들은 이 수많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할 매력과 지혜를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붐비는 영화관에서 든 생각이다.

백승찬 문화부장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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