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84] 공주의 부활, ‘퀸카’

장유정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원장·대중음악사학자 2023. 6.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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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1990년대 우리나라를 강타한 신드롬이 있었으니, 바로 ‘공주병 신드롬’이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이 김자옥이 1996년에 노래한 ‘공주는 외로워’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쓴 김자옥은 시종일관 미소 띤 얼굴로 “거울 속에 보이는 아름다운 내 모습 나조차 눈을 뗄 수 없어”라고 능청을 피우다가, “예쁜 나는 공주라 외로워”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을 도맡아 했던 그는 의외의 변신을 통해 자신의 우울함을 날려버린 것은 물론이고 대중에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가수 태진아가 제작한 음반은 당시 10만여 장이 팔릴 정도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극도의 자기도취 상태’를 의미하는 ‘공주병’이란 용어는 1993년부터 대중매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개성 강한 X세대가 등장하면서 ‘공주병’이나 ‘왕자병’처럼 자기애가 넘치는 상태를 뜻하는 신조어가 출현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이 신조어는 대상을 희화화하여 풍자할 때 주로 사용하곤 했다.

거의 30년 만에 공주병이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했다. 세상이 달라지면서 건강한 자기애라는 긍정적 의미가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걸그룹 ‘(여자)아이들’은 ‘퀸카(Queencard)’라는 노래에서 “월화수목금토일 미모가 쉬지를 않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부셔 빛이 나네”라며 “거울과 사랑에 빠진” 자신을 ‘퀸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역설하는데, 성형수술을 받으려던 마음을 돌이켜 여주인공이 수술실을 나서는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주체적이고도 독립적인 여성은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등 4세대 걸그룹의 노래들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예전 걸그룹에서 그러한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원더걸스가 2008년에 발표한 ‘So Hot’에서 “난 너무 예쁘고 매력 있다”라고 한 것이나 2NE1이 2010년에 노래한 ‘I Don’t Care’에서 변심한 남자에게 “당장 꺼져”라고 소리친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대부분 귀엽거나 섹시한 이미지의 부각에 치중하느라 당당하고도 개성적인 인격체로서 여성을 드러내는 데는 소홀하기도 했다.

남녀 불문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향기를 드러내는 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본연의 특성이다. 1세대 걸그룹 S.E.S.의 일원인 ‘바다’는 말한다. “우리만의 우주를 만들어 나가면 계속 우리 안에서 자기답게 빛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우리는 그렇게 나를 찾고 나다워지는 방법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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