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책의 공간’ 마포구에 묻는다

기자 2023. 6.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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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다 지난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큰 호응을 얻은 터라, 코로나19 종식이 선언된 후 열리는 올해 행사는 업계 안팎의 기대가 높다. “출판사, 저자, 독자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책 축제”이고 올해 주제 ‘비인간, 인간을 넘어 NONHUMAN’도 시의적절해 한 사람의 독자이자 출판인으로서 관심을 갖고 둘러보던 차에 “우리는 항상 ‘책’의 공간을 마련하며 살아갑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읽지 못할 책을 꾸준히 사서 모을 수밖에 없는 장서가와 애서가에게, 책이란 존재는 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텐데, 유독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서울국제도서전이 책과 관련한 대표적인 ‘비일상의 공간’이라면, 책을 만드는 이들이 책을 만드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공유하는 공간, 책을 읽는 이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책과 만나는 공간은 ‘일상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최근 들어 이 일상의 공간에 연이어 파열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는 3년 전 문을 연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가 있는데, 이곳은 “작은 출판사와 출판 생태계의 다양한 작업자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마포구가 설립해 출판사 보스토크 프레스가 운영을” 맡아왔다. 그런데 마포구에서 공간의 용도와 입주 조건 변경 등 개편 방향을 알려 입주사와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포구 특유의 책 공간으로 자리 잡은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운영하겠다는 정책이 추진돼 주민의 반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마포구는 매력적인 책의 공간을 품고 있는 지역이라 하겠다.

행정에는 체계와 절차가 있을 테고 양측의 입장 모두에 귀를 기울여야겠으나, 범박하게 살피면 공간의 의미가 어떻게 생기고 퍼지는지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한 상황이 아닐까 짐작한다. 어느 공간이든 공간을 마련한 측과 공간을 쓰는 측의 상호 교감과 작용이 이루어지겠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비일상의 공간’은 아무래도 일회성과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하니 전자의 역할이 크겠고, ‘일상의 공간’은 그야말로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만드는 이들의 역할이 클 테니 후자의 영향이 압도적이지 않을까 싶다. 해당 공간을 상업적 이익, 효율, 생산성만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면 어느 방향의 논의든 그곳에서 ‘지내는’ 이들과 시작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다행히 이들의 목소리는 여기저기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니, 순서를 바로잡고 적절한 해법을 논의하는 데에는 행정당국의 자세 변화만 따르면 충분할 거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마포구에는 책의 공간이 참 다양하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와 인접한 경의선 책거리, 매해 가을이면 홍대 앞을 책으로 수놓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도 모두 마포구와 함께해온 곳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이 매해 코엑스에서 열린다고 강남구를 책의 공간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마포구가 그간 책에 쏟은 관심과 지원이 결코 적지 않았다고 하겠고, 그 성과도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년이면 20회를 맞이하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라는 ‘비일상의 공간’과 책과 관련한 가장 적극적인 사람, 즉 책을 쓰고 만드는 이들이 모인 ‘일상의 공간’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를 품고 있는 지역이라면, 그야말로 좁게는 서울을, 크게는 한국을 대표하는 책의 공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큰 방향에 답하며 논의를 시작하길 마포구에 바란다. “마포구는 대표적인 책의 공간이 되고 싶은가, 아닌가.”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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