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숙의민주주의와 노란봉투법
노란봉투법으로 알려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직상정됐다. 쟁점이 되는 내용 가운데 세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사용자 개념의 확대다. 현행법에서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만을 사용자로 본다. 하지만 개정안에 의하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으면 사용자로 본다. 하청업체 근로자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사업자에 대해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소위 원청의 사용자성을 명문화한 것이다.
둘째 파업으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했을 때 그 개인별 귀책 사유와 손해 기여도에 대한 입증의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했다. 개인별 손해배상책임 비율을 사용자가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용자로서는 협상 타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된다. 끝으로 이 법안에는 노동조합의 교섭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노동조합의 파업은 기업의 손실을 전제로 한다. 기업에 손실을 줌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목적으로 취하는 노동조합의 행동이 파업이다. 이런 노동조합의 활동은 법으로 보장된다. 이렇게 부당한 법이 있느냐고? 있다. 바로 법 위의 법, 헌법 33조에 규정된 단체행동권이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기업이 손실을 보게 된다는 사실 사이의 괴리는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우선 법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두고 법 개정의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노란봉투라는 명명은, 2009년에 있었던 쌍용자동차 파업과 뒤이은 47억 원의 손배가압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압류 금액에 대한 4만7000원 모금운동에 등장한 것이 노란봉투였던 것에서 유래한다. 그 이전인 노무현 정부에서도 손배가압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철도노조에 대한 75억 원의 손배소송은 그 한 예다.
문재인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회의원 시절 문재인 전 대통령은 손배가압류에 대응하기 위해 2014년 조직된 ‘손잡고’라는 시민단체의 발기인이었다. 나중에 문재인 정부 정무수석이 되는 조국 교수는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기까지 했다. 손배가압류 근절을 공약으로 내걸고 2017년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러나 당선 직후 ‘손잡고’가 청와대에 보낸 공약 이행 요청에 침묵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국정운영의 확실한 주도권을 장악한 후에는 몇 차례 여당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법률 개정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모두 흐지부지됐다. ‘손잡고’는 2020년 말까지 문재인 정부 임기 중 제기된 손배소송은 28건, 청구금액은 약 69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발표했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만 언급한 것은 모두 자신을 노동자의 편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정부였기 때문이다.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에 대한 손배소송과 가압류는 손해의 보전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노동조합의 손발을 묶고 단체행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손배가압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은 법률체계의 일반적 원칙이라는 점을 든다. 노란봉투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여기에 근거한다. 본회의에 직상정된 노란봉투법의 운명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간호법이 반면교사다. 거대 야당만의 결의로 국회 본회의 통과,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발동, 그리고 원안 그대로 재표결 및 법률의 폐기가 그것이다. 간호법의 운명처럼 이 과정에 여야의 숙의를 기대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묵혔던 법률들이 국회의 벽을 넘어서고 있다. 오죽하면 여당일 때 그렇게 하지 하는 소리가 나오겠는가. 간호법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숙의민주주의의 필요성이다. 개혁은 점진적일 수밖에 없고, 일방통행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간호법이 준 교훈이다. 쌍용자동차에서의 손배가압류로 서른 명 가까운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마음이 있다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간호법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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