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움켜쥔 손을 펼까 말까
김강의 장편소설 <그래스프 리플렉스>(2023)는 근(近)미래의 대한민국을 설정해 초고령화 시대의 풍속도를 나름의 시각으로 파헤친 작품이다. 그래스프 리플렉스(Grasp Reflex)라는 말은 신생아들이 손에 닿는 물체가 무엇이든 꽉 쥐고 놓지 않으려는 ‘반사 작용’을 뜻하는 의학 용어이다. 나이가 들어도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품은 작중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작중 올더앤베러 ‘최만식’ 회장과 국회의원 ‘김영권’이 그들이다.
87세의 최만식 회장은 노인을 위한 기업인 올더앤베러의 창업주이다. 그는 자동차가 낡으면 부품을 바꾸듯이, 심장·간·신장·폐 등을 인공장기로 교체하며 ‘인조인간’으로 개조한다. 그뿐만 아니다. 개인 헬스트레이너인 젊은 여성 안나를 ‘마이걸’로 삼아 임신시키는가 하면, 52세 아들 필립에게는 회사 경영권에 일절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팔십 가까운 국회의원 김영권도 전 국민 기본소득 법안을 부결시키고 ‘노인 기본소득’ 법안을 통과시킨 정계의 실력자다. 그는 의원 내각제를 꿈꾸며 영원한 권력을 바라지만, 아들 인호가 지역구 영산시에서 출마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현직 내과 의사인 김강은 전작 <소비노동조합>(2021)에서 기본소득이 전면적으로 실현되었거나, 통일된 한반도라는 근미래를 설정해 소설을 썼다. 문제의식이 남다르다. 작가는 <그래스프 리플렉스>에서 자신의 특장인 의학적 지식을 활용해 인공 장기 이식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는 한편, 노인 인구 40% 시대 올림포스의 ‘신(神)’ 같은 존재가 된 초고령화 시대의 그림자를 응시한다. “노욕이면 또 어때.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진 것뿐이다”라는 최만식 회장의 진술은 작품의 의도와 의미를 잘 설명해준다.
김강의 소설을 보며, 몇년 전 일본 작가 가키야 미우가 쓴 <70세 사망법안, 가결>(2018)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이 작품은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자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죽어야 한다’는 법안 상정을 둘러싸고 다양한 시선들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한 가족 간에도 처한 상황에 따라 법안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점이 퍽 흥미롭다. 작중 70세 사망법안이 실제 통과되지 않지만, 저출생·초고령화 시대 돌봄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 같은 일본 사회의 여러 쟁점들을 건드리며 작품이 전개되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김강의 <그래스프 리플렉스> 또한 노년기에 가져야 할 삶의 태도는 과거 지상주의도 현재 지상주의도 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하는 듯하다. 젊은 세대의 ‘언젠가’가 늘 배신당하고, 노년 세대가 살아온 ‘예전’의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세대 간 대화와 소통은 어려워질 수 있다.
오는 6월28일부터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된다. 생일이 12월이어서인가, 3개월에 한 번씩 가는 병원에선 두 살이나 줄여 내 나이를 표기한다. 하지만 어떻게 잘 나이 듦을 살아갈 것인가는 늘 고민이다. 김강의 소설을 읽는 내내 브레히트의 희곡 <도살장의 성 요한나> 속 대사가 떠오른 것도 이해된다. “너희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착하게 살았다는 말뿐 아니라 좋은 세상을 남기도록 하라!” 좋은 세상은 어떻게 오는가. 움켜쥔 손을 펼까 말까, 나의 고민은 계속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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