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지켜본다는 것은
부리를 흔드는 저어새를 본다. 고라니가 껑충 뛰어오르는 순간을 목격한다. 쇠제비갈매기가 새끼를 돌보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본다. 20년 동안이나 이들을 관찰해 온 사람에 이끌려, 간척사업으로 다 끝나버린 줄만 알았던 갯벌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한 이는 카메라를 든다. 영화 <수라>의 감독 황윤이 담아낸 작은 몸짓들은 영화관으로 날아들어 보는 이들의 마음에 퍼덕인다.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인 ‘수라’를 살펴 기록하는 이들과 그런 이들의 뒷모습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들, 그 따스한 시선의 연쇄를 관객들이 함께 본다. 지켜봄의 연속이다.
지켜본다는 것은 주의를 기울여 살핀다는 뜻이다. 살핀다는 말은 오래도록,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의미이므로, 무언가를 깊이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그 존재에게 마음을 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켜보는 행위는 시간의 흐름을 내포한다. 지켜봄은 대상이 무엇이 되어가는 동안 혹은 어떤 행동을 이어 나가는 동안, 그의 시간 속에 머물며, 아늑한 눈빛으로 돌보아 준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수라갯벌’에는 다양한 멸종위기 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국토교통부는 이를 매립하고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지난해 9월28일 국민소송인단 1308인이 국토부 장관을 상대로 새만금 신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6월1일 취소소송 2차 재판이 열렸다. 영화 <수라> 시사회에서 한 관객은 싸움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고,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 황윤 감독은 질문자가 청소년이 될 때까지, 어쩌면 성인이 될 때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오랜 기간 싸움을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은 슬프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우직한 ‘지켜봄’이 한 아이가 다 자라도록 계속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번 흘깃, 눈길을 주고 마는 게 아니라 갯벌에 오래도록 남아, 그곳의 생명들이 사라지지 않게 살피며, 행여 사라진다고 해도 직시하겠다는 결의로 느껴졌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은 도요새의 군무를 회상하며, 그러한 ‘아름다운 광경을 본 죄’로 활동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는 이들이 결국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말로도 들린다. 스러져 가는 아름다움에 감응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기꺼이 선한 목격자가 되어 끝내 꺼지지 않는 눈빛을 밝혀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매립된 갯벌에서 바닷물을 기다리다 죽어간 조개들의 타들어 가는 갈증을 상상할 수 있다면, 온몸이 굳어버린 작은 새가 지녔을 한 뼘만큼의 온기를 쥐어볼 수 있다면, 지켜보는 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정재율의 시 ‘화가의 일’(<온다는 믿음>)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가 무용하다 여기는, 나무 사이를 지나는 새들, 흔들리는 갈대들, 사라지는 집들을 기록하는 화가가 등장한다. 그는 ‘누가 한가하게 이런 그림 따위를 구경하겠느냐’고 힐난하는 사람에게 대꾸하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외친다. 누군가 이 그림을 봐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풍경을 마지막으로 관찰하는 사람”일 수는 있다는 희망에 최선을 다한다. 지켜보는 일의 쓸모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 일을 이어 나가리라는 다짐만은 지켜내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화가의 일을 묘사하는 시인 또한 화가와 그가 마지막까지 붙들려는 풍경 모두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함부로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보는 일을 자신의 천명으로 삼는 이들의 끈질긴 응시에 우리가 눈빛을 보탠다면 어떨까. 떠나기를 주저하며, 저버리기를 포기하고 계속 되돌아오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꿋꿋한 파수꾼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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