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이재명, 'TV토론' 하자더니…'네 탓' 공방만
김기현 "토론도 하지만 비공개 회동 이어가야"
이재명 "만인이 보는 데서 공개적으로 대화하자"
[더팩트ㅣ국회=조성은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개 TV 토론'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7일 양당은 '네 탓' 공방을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TV 토론 후 1대 1 비공개 회담을 이어가자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공개 토론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회동 형식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실무 협상이 열흘 넘게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TV 토론은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양당 대표의 공개 TV 토론은 지난달 25일 김 대표가 "23일 이 대표에게 (비공개) 식사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밝히면서 얘기가 나왔다. 이 대표가 다음 날인 26일 이를 공개적으로 거절하며 '공개 정책 대화'를 제안했고, 김 대표는 여기에 '공개 TV 토론'을 역제안했다. 양당 모두 이에 합의하는 듯했으나, 회동 방식을 두고 열흘 넘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공개 TV 토론 이후 비공식적인 대화를 병행하자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TV 토론 등의 방식으로 공개적으로 대화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양당 내에서는 토론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토론 방식으로는 이견만 확인할 뿐 타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양당 모두 악재를 맞이한 상황에선 토론이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근 국민의힘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을 마주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남국 무소속 의원 코인 논란과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 등 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최근엔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과 권칠승 민주당 대변인의 천안함 관련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양당 모두 이런 부분에 공격이 들어왔을 때 충분히 방어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다. 더욱이 양당이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 토론한들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토론으로 타협이 되겠나. 토론은 결국 싸우는 것"이라며 "서로 관계가 너무 안 좋으니 일단 만나서 편하게 대화하자는데 싸우자고 하면 그게 되겠느냐"고 했다. 그는 공개 TV 토론 방식에 대해서도 "대선도 아니고 양당 대표 TV 토론에 국민이 관심을 가지겠느냐"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밥이나 먹자'니까 '이거 아니면 안 돼' 이렇게 나오고 '그럴 거면 차라리 이렇게 해'라면서 점점 세게 던지는 모양새"라면서 "양당 대표가 회동하려면 먼저 물밑에서 여러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번처럼 '일단 던지고 보는 식'의 회동이 성사될 리가 없다"고 봤다.
또 다른 민주당 중진 의원도 통화에서 "지금 양당 대표가 해야 하는 건 민생 현안, 외교 현안에 대해 해법을 합의해 내는 것"이라며 "선거도 아니고 토론으로 승패 갈라봐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서로 각 세우고 싸우기만 하다 올 텐데, 감정만 상하고 끝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TV 토론에는 회의적이다. 김수민 시사평론가는 통화에서 "애초부터 번지수를 잘못 잡았다. 여야 간 만나라는 여론은 높은데 이건 양쪽 간의 어떤 의견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뜻이 아니다"라며 "민주당은 국회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거기에 대해 연달아서 거부권을 행사하고 앞으로도 그럴 사안들이 잇따를 텐데 이걸 계속 반복할 수는 없으니 이런 것들을 풀어보라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특히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의 회동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 근데 그러려면 예전에 했던 영수회담이라든지, 여야정 협의체 등이 가동돼야 한다"며 "TV 토론은 뭔가를 타결짓는 형식이 아니다. TV 토론을 할 거면 거부권 행사 정국 이전에 했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TV 토론은 사람들이 다 보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얘기들이 많다"며 "비공개 회동을 포함한 여러 만남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공개 회동에 대해서는 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가능성에는 회의적이었다. 특히 이 대표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윤 대통령의 뜻으로 결정이 이뤄지는 상황에 김 대표와의 회동에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대선 주자인 이 대표가 김 대표의 체급만 올려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통화에서 "김 대표는 얻을 게 많지만, 이 대표는 얻을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김 대표는 거대 야당을 상대로 협상을 위해 무언가 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서 "반면 이 대표는 계속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구했는데, 김 대표와 만나는 게 윤 대통령을 만나는 것만큼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 대표가 여당 대표를 만나서 협상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내에서는 공개·비공개 여부에는 말을 아끼면서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지도자끼리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는 자리가 중요하다"며 "토론보다는 둘이 만나서 주제 없이 차분히 대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게 정치"라면서 "공개·비공개를 떠나 양당 대표가 실질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토론의 방식은 아니다"라고 했다.
처음부터 만남이나 토론의 의지는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서로가 만남을, 토론을 거부한다는 그런 불통의 이미지를 주려는 것"이라며 "(불통의 이미지를 피하려면) 일단 던지면 받을 수밖에 없는데 세부 논의를 하다가 상대 탓하면서 결국 무산시키는 것"이라고 봤다.
이어 신 교수는 "이 대표는 예전 영수회담처럼 야당 대표는 대통령과 만나야 한다는 인식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상대는 대통령이고 김 대표는 대통령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김 대표도 모르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에 불통의 이미지를 주고, 국민의힘은 소통하려 노력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단 던진 것)"이라고 봤다.
양당 대표는 이날도 신경전을 이어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개 토론' 제안에 "대화는 논쟁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자꾸 대화를 안 하고 논쟁만 하자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했다.
그는 "여당, 야당 대표가 만나 국정 현안을 아주 긴밀하게 이야기 나누는 협상의 자리가 대화의 자리이지 토론하는 자리가 협상하거나 대화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토론하자니 얼마든지 좋다. 토론도 하는데, 여야 사이에 국정 현안을 협의하기 위한 별도의 대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예정에 없던 추가 발언을 통해 "국민의힘이 자꾸 (회동) 형식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문제를 갖고 지금 몇 주가 지나고 있다"면서 다시 한번 공개 대화를 촉구했다.
그는 "저는 TV토론도 좋고 국회 로텐더홀에서 의자 하나 놓고 만인이 보는 가운데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를 바란다"며 "당장 오늘 오후든 내일이든, 모레든 좋다. 시간이 되는대로 국민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국정에 대해, 정치 현안에 대해, 민생에 대해 대화하길 촉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 국면 후보 간 토론회도 아니고 굳이 형식과 절차를 갖춰 자꾸 미룰 필요가 없다"며 "제가 국민의힘 회의실을 가도 좋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어 김 대표를 향해 "정부·여당의 대표면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 하는데 자꾸 비공식적인 만남을 요청한다"며 "저희가 공개적으로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책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더니 앞으론 하자면서 뒤로는 미루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저는 국민의 삶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 굳이 특별한 현안도 없이, 해결될 과제나 해결 가능성도 없는데 국민이 보지 않는 곳에서 비공개로 만나는 모양새로 노력하는 척하는 그림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실무 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서도 "국민의힘 행동 양식을 경험했지만, 겉으론 하자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반대하는, 발목 잡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며 "말로는 (회동) 하자면서 실제 협의를 해보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자꾸 미룬다"고 꼬집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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