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나라’ 佛서 패스트푸드점 급증… 고물가에 3년 새 17% 늘어[글로벌 현장을 가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2023. 6. 7. 23: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대로 맥도널드 매장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외부 테라스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프랑스 사람들은 패스트푸드를 정말 싫어했는데 많이 바뀌었어요. 특히 젊은층이 맥도널드 같은 곳을 많이 가죠.”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대로변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 앞에서 만난 시민 마리엘렌 벨장그 씨는 두 손에 맥도널드 제품을 각각 든 채 이같이 말했다. 그는 “좀 전에 회의 하나를 마치고 이제 다른 회의에 참석하러 가야 해서 바쁘다. 이럴 땐 패스트푸드가 빠르고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기 좋다”며 웃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패스트푸드 매장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날 개선문 방향으로 샹젤리제 대로를 약 10분 걷는 동안에도 맥도널드, 버거킹 등 7곳의 패스트푸드점을 볼 수 있었다. 몇몇 매장은 건물 밖 테이블까지 만석이었다. 반면 이 주변 고급 레스토랑은 테라스는 물론이고 건물 내부까지 자리가 많이 비어 대조를 이뤘다.

佛패스트푸드점 20년 새 4배

시장조사회사 ‘CHD엑스퍼트-데이터센셜’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전체 패스트푸드 매장 수는 5만1500곳으로 20년간 4배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에 비해서도 17% 증가했다.

햄버거를 먹는 영국인들을 향해 ‘고깃덩어리나 먹는 국가’라며 패스트푸드를 수준 낮은 음식으로 하대하던 프랑스인들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바빠진 일상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저렴한 가격을 이유로 꼽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프랑스의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5.1% 올랐다. 4월(5.9%)에 비해선 소폭 완화됐지만 지난해 5월부터 매월 5%를 웃도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고물가로 식료품 등 원료 값이 오르니 외식비도 뛰고 있다. 프랑스 호텔 및 식당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7∼12월)에만 외식비가 8% 올랐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낮 12시경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대로의 한 고급 식당 테라스의 자리가 텅텅 비어 있다. 고물가로 외식비가 오르며 외식을 줄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식을 줄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파리의 팡테옹 근처 패스트푸드 매장 앞에서 만난 장뤼크 시르 씨는 “예전에는 1주일에 3번씩 외식을 했지만 지금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고물가로 일반 식당의 가격은 엄청 뛰었지만 패스트푸드는 비교적 저렴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날 취재팀 2명이 맥도널드에서 식사하는 데 든 비용은 18.5유로(약 2만6000원)였다. 바로 옆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선 1인분 가격만 39.6유로(약 5만5000원)에 달했다. 패스트푸드 매장에선 일반 레스토랑에서 외식할 비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2인분을 주문할 수 있는 셈이다.

외식비 부담이 커지자 르몽드 등 유명 언론에서도 최근 ‘20유로 이하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 등을 종종 소개하고 있다. 샌드위치, 바게트 등 빵만 팔던 빵집에선 기존에 보기 힘들던 테이블과 의자를 매장 내에 놓고 점심 식사 손님을 받는다. 샌드위치, 음료, 간단한 샐러드를 곁들인 10유로대 저렴한 식사 메뉴가 인기다. 음료나 간단한 디저트만 팔던 카페들도 샐러드, 파스타 등으로 구성된 간편 점심 식사를 판매하고 있다.

할인 매장서 ‘짠물 소비’

고물가는 프랑스인의 쇼핑 패턴도 바꿔놓았다. 파리 곳곳엔 재고 물품을 저렴하게 파는 할인 매장이 늘고 있다. 대형마트 ‘스토코마니’는 올해 3월 할인 품목을 다양하게 늘리고 할인 매장을 세련되게 리모델링해 눈길을 끌었다.

스토코마니의 한 지점은 다양한 색상의 네온사인으로 13개 영역을 구분해 가격대별로 제품을 배치했다. 소비자들이 할인 상품을 쇼핑하는 재미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매장은 2유로(약 2800원) 미만에 살 수 있는 제품이 약 2000개에 달한다. 할인 폭은 최대 70%. 스토코마니는 지난해 8억 유로(약 1조1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고급 식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프랑스인들은 장바구니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못난이 매장’도 즐겨 찾는다. 할인 매장 ‘프리미암’은 농산지 협동조합, 제조업자 등과의 직거래를 통해 외형이 고르지 않아 제대로 팔기 어려운 과일과 채소, 잘게 잘리지 못한 햄과 고기를 저렴하게 판매한다.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도 인기다.

중고품 수요도 늘고 있다. 현지 매체 ‘유럽1’에 따르면 유아 중고용품 판매 애플리케이션 ‘빕스’는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는다. 1년 전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이곳에선 유아 중고용품을 신제품의 50∼80%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보리스 포르코니 빕스 홍보담당자는 “올해 이용자가 2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드플레이션’ 논란

고물가가 계속되자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 논란도 일고 있다. 그리드플레이션은 기업들이 폭리를 취하려고 판매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덩달아 소비자 가격 또한 오르고 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기업들은 보통 가격 경쟁력을 위해 가격을 낮추려 하기 때문에 그리드플레이션은 억지 논리라는 반론도 존재하지만 고물가가 워낙 심하다 보니 기업을 향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식지 않고 있다.

독일 금융기업 알리안츠는 최근 보고서에서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가 유럽의 식량 인플레이션에 작지만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또한 유럽 당국자들이 근원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킬 핵심 요인으로 주요 기업의 이익 전망치를 꼽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민심이 흉흉한 데다 정부의 가격 동결 압박이 강해지다 보니 주요 기업 또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 유통회사 카르푸는 지난해 시리얼, 커피, 기저귀 등 100여 개 필수 품목에 대해 일시적으로 가격을 동결했다. 에너지 값 급등으로 지난해 역대급 매출을 올린 주요 에너지 기업도 최근 잇따라 가격 인하 방침을 밝혔다.

자영업자도 고물가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특히 프랑스의 ‘국민 빵’으로 통하는 바게트 값도 만만치 않게 올랐다. 버터, 밀가루 등 원료 값뿐 아니라 빵을 굽는 데 쓰이는 에너지 비용도 급등한 탓이다. 프랑스 곳곳에서 제빵사들이 “바게트를 구울 수 없다”며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는 일이 잦다.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 여진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정권은 ‘바게트 대란’까지 일어나면 민심이 폭발할 것을 우려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 1월 엘리제궁에 제빵사들을 초청해 “에너지 가격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에너지 기업과 협의하겠다”고 달랬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또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빵사는 세금 납부를 미룰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