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먹잇감이 된 중소기업 “기술탈취,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노도현 기자 2023. 6. 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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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증 힘들고 승소 가능성도 낮아
각 부처로 흩어진 관련 업무 통합
처벌·손배 등 양형기준 강화 촉구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싸웠습니다.” 23년째 중소기업 한진엔지니어링을 운영 중인 허인순 대표가 한국전력 자회사 한국남동발전과의 기술 탈취 분쟁을 두고 한 말이다.

허 대표는 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이 피땀 흘려 만든 기술이 더 이상 특정 집단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기술침해 처벌기준, 손해배상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대표가 침해를 주장하는 기술은 ‘옥내 저탄장 비산먼지 저감 설비’ 관련이다. 석탄화력발전소 석탄저장고에 있는 유연탄의 자연발화를 막고 먼지를 억제하는 장치를 말한다.

이를 2017년 남부발전 삼척그린파워발전소 현장에 처음 적용했다. 이듬해 남동발전이 고성하이화력발전소에 적용하려 한다며 기술자료를 요청해오자 건설사들과 남동발전, 설계사인 한국전력기술에 제공했다고 허 대표는 설명했다. 특허까지 받아놓은 터여서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고성하이화력발전소 계약은 A사에 돌아갔다. 허 대표는 해당 현장에 쓰인 핵심 부품인 노즐이 A사가 자체 개발한 게 아니라 일본에서 전량 수입했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해도 남동발전의 답은 한결같았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2021년 중소벤처기업부 정보통신 보안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컨설턴트에게 사정을 털어놓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야기를 접한 국가정보원이 내사를 진행했고 사건을 검찰로 이첩했다. 결국 현재 A사 관계자 3명과 시공 발주처 B사 관계자 1명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배임증재, 배임수재,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허 대표는 “재판 과정에서 증인들을 통해 모든 하도급 승인과 발주 협의, 특정 기술에 대한 적용 지시가 남동발전에 의해 일어났다는 증언을 확보했다”며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발주사는 건설사이고 우리는 발전소가 다 지어지면 운영·관리하는 역할이라 업체 선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이미 검찰 수사에서도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고 말했다.

기술 탈취를 의심하는 중소기업들은 각 부처에 기술침해 관련 제도가 흩어져 있는 탓에 애를 먹는다. 법정에 가도 승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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