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 모니터, 편리함이 앗아간 노마드의 자유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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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급히 귀국해야 했던 2020년, 탁 트인 오션뷰를 자랑하는 제주의 한 원룸에서 팬데믹이 끝나길 기다리며 1년 정도 지내다가 그다음 해 두 개의 방과 거실이 있고 한라산과 먼바다까지 보이는 시내의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물론 인생에서 돈도 시간도 잃을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이지만 정해진 장소가 아닌 그날그날 상황과 기분에 따라 일하고 싶어지는 위치에서 몰두하는 것, 거기에 내 우선순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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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급히 귀국해야 했던 2020년, 탁 트인 오션뷰를 자랑하는 제주의 한 원룸에서 팬데믹이 끝나길 기다리며 1년 정도 지내다가 그다음 해 두 개의 방과 거실이 있고 한라산과 먼바다까지 보이는 시내의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일과 생활을 같이하기엔 다소 비좁았던 원룸에서 넓고 공간이 분리된 곳으로 가게 되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가장 기대했던 공간은 역시 서재. 한라산이 보이는 방에 넓은 책상을 놓고 노트북에 오랜 시간 탐냈던 휴대용 모니터를 연결해서 듀얼 모니터로 만들었다. 15인치 화면 하나로만 일을 해오다가 모니터 하나를 추가했더니 업무 효율과 편의성 모두 개선된 것 같아 만족스러워져서 여행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어떻게든 가지고 다닐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절로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용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편리해진 만큼 다른 부분에서 제약이 생겼다. 예를 들어 바다가 보이는 쪽 베란다에 러그와 좌식 테이블을 갖춰 두고도 거기서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노트북에는 듀얼 모니터와 키보드를 연결하는 선부터 충전기까지 온갖 케이블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노트북을 옮기려면 모두 분리했다가 다시 꽂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위치에서만 업무를 보는 동안 책상 위는 넓어진 면적만큼 너저분해졌다. 처음엔 늘어난 장비와 각종 문구류가 능력치 상승을 의미하는 것 같아 뿌듯해했지만 그만큼 물건에 시선을 빼앗기는 횟수가 증가하면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결제하거나 수납용 비품을 추가로 구매하는 등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기까지 했다.
거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노트북 분리를 번거롭게 느끼며 다시 서재로 들어가길 선택한 어느 날 더 이상 듀얼 모니터를 쓰고 싶지 않아졌다. 더 정확히는 편리함보다 이동성에 더 큰 비중을 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고, 서재에 묶여 있게 만드는 장비를 정리함으로써 공간적 제약을 없애고 싶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그리고 나에겐 공간이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물론 인생에서 돈도 시간도 잃을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이지만 정해진 장소가 아닌 그날그날 상황과 기분에 따라 일하고 싶어지는 위치에서 몰두하는 것, 거기에 내 우선순위가 있었다.
수시로 이동하다 보면 그저 노트북을 올려두고 작업할 만한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때가 있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작업하고,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버스터미널에서는 오프라인 상태로도 할 수 있는 이미지 편집이나 글쓰기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어쩔 수 없다기보다 직접 선택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장소에서 일하기로 한 건 전적으로 나의 결정이었다고 믿기 때문에 지금 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날로 듀얼 모니터는 내 당근 온도와 약간의 통장 잔고를 올려주고 빠르게 사라졌다. 지금도 하나 이상의 화면을 두면 얼마나 편리한지, 커다란 모니터를 쓰는 게 얼마나 속 시원한 일인지 알지만, 선뜻 주변에 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용을 고려하는 지인에게는 나의 경험담을 기반으로 결정하지 말고 한번 직접 경험해 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꼭 덧붙인다. 모든 이의 기준은 나와 같지 않으므로.
모아람 디지털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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