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 국가경쟁력 결정하는 ‘기업가정신’…재점화 위해서는 제도개혁 필요[기고]

기자 2023. 6. 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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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경제가 생산요소의 양적 확대와 모방형 기술 진보에 기댄 성장전략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1990년대 초반 이후 5년에 1%씩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성장률 하락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4%로 하향 조정했으며, 주요 8개 투자은행들도 성장률을 평균 1.1%로 전망하면서 일본보다 성장률이 낮을 거라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저출생과 인구구조 변화가 이미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고, 4차 산업혁명 관련 혁신 분야의 경쟁력마저 약화되고 있어 10년 내에 잠재성장률이 0%대까지 떨어질 거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경제성장을 이끈 주체는 언제 어디서나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이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왕성한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위대한 기업가들이 있었기에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데 불행히도 한국의 기업가정신 수준은 갈수록 하락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7위까지 추락했다. 지난 수년간 국내 경제 환경이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만 작용한 결과이다. 기업규제의 강화, 노조에 경도된 노동정책 등으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리스크를 짊어지고 혁신에 매진할 인센티브가 소실되어 갔다. 기업의 성장과 활동에 대한 전방위적인 규제와 처벌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경영 리스크는 높아지고, 기업가정신은 위축되고, 저성장은 고착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세계는 중대한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매켄지연구소는 제1차 산업혁명과 비교할 때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의 속도는 10배, 적용 범위는 300배, 영향도는 3000배에 이를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은 오늘 혁신에 매진하는 국가만이 내일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미래의 경제패권을 위한 혁신경쟁에 매진하고 있다. 글로벌 혁신경쟁 시대에는 노동, 자본 등 전통적인 생산요소보다 기업가정신이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뿐만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과감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고,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기회를 기민하게 발견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의 본질이다. 기업가의 동기와 기업가정신의 발현은 제도에 영향을 받는다. 기업 환경을 결정짓는 한국의 제도 경쟁력은 OECD 37개국 중 26위를 기록하고 있다. 낮은 기업 제도 경쟁력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과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기업인에 대한 형벌 만능주의가 만연하면서 불확실성 속에서도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기업가들이 줄어들고 있다. 자칫하면 배임죄로 기소당하고 전과자로 낙인찍히는 제도하에서 실패를 무릅쓰고 하는 과감한 판단과 결정은 누구라도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슘페터의 기업가정신은 기존의 균형을 파괴하기 때문에 기득권층의 반발 및 사회 갈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익집단이 정치권 및 규제당국과 긴밀한 이해관계를 구축하고 혁신과 변화의 도전에 반대하며 규제 지대를 추구하는 삼각 철옹성이 구축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기존의 사업자를 보호하는 온정적이고 근시안적인 정책과 전투적 강성노조의 기득권 보호와 변화에 반대하는 투쟁은 슘페터 기업가정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유니콘 기업과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적은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기업가정신이 성장의 근본 원천임을 재인식하고 기업가정신의 본질과 결정 요인을 감안하여 기업가정신 재점화를 위한 정책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기업가정신은 기업가 개인의 태도와 역량도 중요하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서 보면 기업가정신의 총량과 생산성은 제도의 유인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가정신을 재점화하고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규제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 제도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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