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세계 골프 전쟁

박종세 논설위원 2023. 6. 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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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미국은 전통적으로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는 첫 순방지로 국경을 맞댄 캐나다와 멕시코 대신 사우디를 택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최고의 환대를 베풀었고, 트럼프는 궁전 연회에서 사우디 칼춤 ‘아르다’를 추기도 했다. 빈 살만이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에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나와도 트럼프는 얼버무렸다. 빈 살만은 트럼프 사위 펀드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사우디 리브(LIV) 골프 합병 소식에 트럼프는 “거대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거래”라고 환호했다. 트럼프는 전 세계 17곳에 초호화 골프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세계 메이저 대회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의 의회 난동 사건 이후 미국 PGA는 그해 PGA 챔피언십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꿨다. 브리티시 오픈을 주최하는 R&A도 트럼프 소유인 스코틀랜드 턴베리 골프장에서는 대회를 치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사우디가 만든 리브 골프는 작년에 두 대회를 트럼프 소유 골프장에서 치렀고, 올해도 3개 대회를 개최한다. 트럼프 아들은 “합병이 완결되면 트럼프 코스에서 게임이 계속 열리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는 작년 7월 소셜미디어에 “양 투어가 결국 합병될 것이며 PGA에 충성하며 남아있는 선수들은 금전적으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특유의 빈정거리는 어투지만, 돌이켜 보면 돌아가는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다. 이들은 위대한 정신을 갖고 있고, 경이로운 사람들이며, 무제한의 돈을 갖고 있다. 무제한의”라고 했다.

▶재선을 꿈꾸는 트럼프에게 이번 합병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9·11 테러 피해 가족들이 반발하고 있고, 대통령이 외국 정부 기관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에 대한 불신 여론도 상당하다. 미 법무부는 이미 트럼프 재단에 리브 골프와의 관련성을 밝히라며 소환장을 발부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관계에서 트럼프와 반대쪽으로 나갔다가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사우디를 ‘왕따 국가’로 부르며 빈 살만과 각을 세웠으나, 사우디는 중국과 밀착하며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우디가 만든 리브 골프와 미국 PGA의 대립도 이 와중에 벌어졌다. 이 세계 골프 전쟁에서 미국의 자존심과도 같던 PGA가 무릎을 꿇었다. 미국 정부도 이제는 빈 살만을 달래려 애쓰고 있다. 적어도 지금의 승자는 ‘사우디의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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