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잘못 든 술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대표팀은 3기 ‘드림팀’으로 불렸다. 국내 프로무대 최정예 선수들이 뽑혀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사고를 쳤다. 두번째 경기에서 홈팀 호주에 맥없이 역전패한 날 밤,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한 선수 10여명이 카지노로 향했다. 이튿날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밤늦도록 도박한 사실이 들통나자 비난이 쇄도했고 ‘제명’ 징계까지 거론됐다. 그러다 대표팀이 탈락 위기에서 극적으로 4강에 들고 일본을 이겨 동메달을 따내면서 징계 얘기는 흐지부지 덮였다. 황당한 일탈에 석연찮은 대처였다.
이런 일탈은 축구 대표팀에도 있었다. 2007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 때 유명 대표선수 4명이 숙소를 무단이탈해 현지 유흥업소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이들은 고개 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고 국가대표 자격정지 1년 등의 징계를 받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은 분위기 파악 못한 회식과 음주가무로 빈축을 샀다. 조별리그 1무2패의 초라한 성적 후 뒤풀이 회식 자리에서 흥겹게 박수치며 환호성을 지르다 국내 팬들의 속을 심히 긁은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7일 김광현(SSG)에게 사회봉사 80시간과 벌금 500만원, 이용찬(NC)·정철원(두산)에게 사회봉사 40시간과 벌금 3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세 선수는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회 기간 중 숙소 밖 술집에서 한두 차례 새벽까지 술 마신 일로 상벌위원회에 회부됐다. 대표팀 소집 기간 중 음주 행위 자체에 관한 처벌 규정은 없으나 KBO는 국가대표 품위를 손상했다고 판단해 규약에 따라 징계를 확정했다.
연일 졸전·참패를 거듭하며 WBC 대표팀이 안긴 실망에 견주면 징계가 가벼워 보일 수도 있다. 아무리 이동일·휴식일이라 해도 대회 중에 주축 선수들이 술 마시러 다녔다니 국민은 복장이 터질 일이다. 한국 야구는 이번 일로 “딱 그 수준”이라는 뭇매를 피할 수 없다. 가뜩이나 음주운전·성폭력·도박·금품 요구 등 악재가 속출하는 프로야구계에 찬물이 또 쏟아졌다. 그래도 야구장을 찾아주는 팬들이 있어 배부른 것인가. 마지막 경고다. 태극마크 흑역사에서 ‘잘못 든 술잔’은 더 없어야 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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