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전 충북 도지사 박중양의 어마어마한 갑질

입력 2023. 6. 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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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법주사 가는 고개 자동차 못 넘자 소가 끌게 해 농사일로 바쁜 6월에 1만여호 도로 부역 엄명 울분 찬 군민 300명 분노 폭발 구타·폭력사태 호의호식·장수 누린 친일파, 공덕비도 있어

요즘도 '갑질' 보도가 나오고 있다. 최근 부천시의회의 한 시의원이 "누구든지 (한국으로) 돌아가서 연수 중에 있었던 일을 발설하기만 하면 주둥이를 쫙 찢어버리겠다"면서 갑질과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저 유명한 대한항공의 '땅콩 갑질' '히스테리 갑질'을 다시 생각나게 만든다. 이런 갑질이 과연 요즘에만 일어난 일이었을까. 100년 전 희대의 갑질 사건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923년 6월 16일자 동아일보에 '임농(臨農) 부역(夫役)에 분개한 농민'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급하지 아니한 산길을 닦고자 임농(臨農)시에 치도(治道)를 명령한 도지사'라는 부제도 달려있다.

임농, 즉 한창 농사에 바쁜 시기에 길을 닦으라고 명령한 도지사의 이야기다. 이 도지사가 누구인가. 바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제7대 부의장을 지낸 골수 친일파 박중양(朴重陽)이란 사람이다. 기사는 그가 충청북도 도지사를 지낼 때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다루고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에서는 도장관(道長官) 박중양 씨로 인하여 큰 분란이 일어났다. 약 1개월 전에 풍류를 즐기는 충청북도 지사 박중양 씨는 보은 군수 김재호(金在皓)씨의 안내를 받아 자동차를 몰아 보은군 속리산 속에 있는 명찰(名刹) 법주사(法住寺)를 유람 차 나섰다. 보은읍에서 속리산 사이에는 박석치라는 큰 고개가 있어서 도저히 자동차로는 넘어가지 못할 곳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한 도(道)의 장관으로서 어찌 차에서 내려 흙을 밟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박중양 씨는 기어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촌가(村家)에 가서 소를 가져다가 자동차를 끌게해 고개를 넘은 결과, 겨우 도지사의 위엄은 지키게 되었다."

100년 전 일이지만 생각만 해도 혀가 끌끌 차지는 장면이다. 소가 헐떡거리며 자동차를 끌고 고개를 넘어가는 애처로운 광경, 옆에서 쩔쩔 매고 있을 수행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일이 여기서 끝났으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조소 거리에 그쳤을텐데, 일은 누구도 생각지 못하던 방향으로 진행된다. "마음이 덜 풀린 박 지사는 김재호 보은 군수를 보고 '명승지로 가는 길에 자동차 하나가 자유로 통행하지 못해서는 한 도(道)의 수치'라고 하며 불일내(不日內)로 공사를 시작하여 곧 자동차가 통행을 하게 하라고 엄명하였다."

기사는 계속된다. "지사의 명령이라 일개 군수로서 어기는 수가 없으니까 김 군수는 즉시 6월 초순부터 부역(夫役)을 풀어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본래 이 고개는 비록 자동차는 통행치는 못하나 인마(人馬)는 통행되는 곳이며, 그 고개는 다만 속리산 법주사 외에는 다시 통한 곳이 없는 중요치 않은 길이었다. 그러나 지사의 분부이므로 전군(全郡) 1만여 호(戶)의 부역을 풀게 되는데, 때는 마침 첫여름이므로 농가의 제일 바쁜 때이다."

농사가 제일 바쁜 때인 첫여름 6월에 단지 도지사가 언제 또 자동차를 타고 법주사에 갈지 모르지만, 갈 때 불편하지 않으라고 1만여 호에게 부역 명령을 내린 것이다. 분노에 앞서 어이가 없는 일이다.

계속 기사를 보자. "일반 인민들은 백성의 생명을 보장하는 농사를 못 짓게 하고 이 길을 닦을 지급한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여 매우 울분히 여기던 중, 더욱이 같은 군(郡)에서도 회남면, 회북면 같은 곳은 부역장까지 왕복이 거의 100여 리나 되니 인민의 피해와 곤란은 이를 길이 없었다. 과연 지난 11일에 군청 토목 기수(技手) 모(某) 일본인은 워낙 돌연히 시작한 일이므로 예정이 서지 못하여서 인민에게 일정한 지점에 일을 시키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변덕을 피우므로, 가뜩이나 울분히 여기던 300여 명의 인민들은 마침내 그 기수에게 몰려 들어 난타를 하고, 그 싸움을 말리려 하던 순사 세 사람까지 난타를 하여 중상을 당하게 하였다. 이 급보를 들은 보은 경찰서는 충청북도 경찰부의 응원까지 청하여 전원 총출동으로 현장에 급행하여 이미 40여 명을 검속하고 지금 계속 검거 중이니, 사건의 전도(前途)는 매우 위험하다더라."

이 도로 공사는 결국 1주일가량 걸려 비포장 2차선 도로를 만들었다. 박중양은 1924년 이 길로 속리산에 갔다가 여승을 성폭행, 변사(變死)하게 한 일로 대기 발령 조치되었다가 1925년 충북도지사에서 사퇴한다.

1923년 6월 조선일보도 이 사건을 다뤘다. "충북 보은군에는 1만여 호의 백성이 농사에 바쁜 이때에, 보은군 읍내에서 속리사(俗離寺)까지 가는 길을 닦느라고 죽겠다 소리를 사람마다 하여 민원(民怨)이 창천(漲天)하다 한다. 대개 도로를 잘 닦아 놓으면 지방 발전에 관계도 크지마는 이같이 농사에 바쁜 때에 먹을 것도 없는 백성들이 열흘 동안 해야 하는 큰일을 시작하여 민원이 일어나게 할 것이야 무엇있노. 더군다나 속리사라 하면 풍속을 떠난 절인데 그와 같이 급하게 치도(治道)를 하여 속리사를 해방을 할 작정인지. 이러나 저러나 살 수가 없어 악에 바치다시피된 백성들은 별별 원망을 다 하는데,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하는 중에 제일 뼈가 닿는 소리가 있다 한다. 갈 적마다 소를 대령하라고 하였으면 오히려 낫겠는데, 이같이 사람만 못살게 군다고 야단이라 한다."

박중양 백작은 해방 후 반민특위에 기소되어 검거됐으나 이승만 정권은 그가 아프다는 이유로 곧 풀어주었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떵떵거리며 살았다. 그는 호의호식하면서 장수(長壽)까지 누린 대표적 친일파였다. 충남 공주시 공산성 산자락 아래 대로변에는 그의 공덕비가 서있다.

도지사 만큼의 권력자는 아니지만 군수의 갑질에 관한 기사도 눈에 띈다. '진천군수의 별명은 방축(防築) 군수'라는 제목의 1923년 7월 4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충북 진천군수 김도규(金島奎)라는 양반은 도임(到任)한 지 불과 며칠에 기생놀이를 시작하였다. 읍내리 금성대공원을 독점하고 명색이 기생이라는 것을 출동시켜 부하와 같이 질탕히 놀던 바람에 읍내 백성들은 장고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지난 6월 10일에는 공원 놀이로만은 좀 부족하던지 한번 선유(船遊)를 한다고 그 고을 삼덕면 방축(防築)에다 배를 띄우고 놀게 되었다. 때는 마침 가뭄이 심하여 일반 농가에서 인심이 흉흉하던 때라 너무 노는 것을 불가(不可)하다는 충고를 듣고도 오히려 호령만 추상(秋霜)같았다. 이와 같이 노니던 끝에 필경은 창피한 싸움까지 나서 당당한 군수 영감이 방축 속에 빠지시게 되었다. 다행히 죽지는 아니 하였으나 '방축 군수'는 그의 별명. 차라리 달을 잡다가 물에 빠졌으면 오히려 '풍류(風流) 군수'나 되려니와 싸우다가 풍덩은 점점 낭패(狼狽)다."

중국 대표 고전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에 국무유민(國無遊民) 조무행위(朝無幸位)라는 말이 있다. '나라에 놀고 먹는 백성이 없어야 하고, 조정에는 요행으로 지위를 얻은 공직자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요행으로 얻은 지위에서 갑질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됨됨이를 알고 싶거든 권력을 줘 보라'는 말이 있다. 갑질은 인성 문제도 있지만 특권의식이 더 문제다. 지위가 오를수록 처신에 조심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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