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정식: 볼츠만을 생각하다

한겨레 2023. 6. 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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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루트비히 볼츠만의 묘비석에 새겨진 볼츠만 방정식. 위키미디어 코먼스

[숨&결] 전은지 |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어떤 연구를 하시나요? 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청자의 이해도를 고려해서 정해진다. 이해하기 쉬운 답안부터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항공우주공학을 합니다.” “유체역학을 합니다.” “기체역학을 합니다.” “볼츠만 방정식을 풉니다.”

크게 보아 나의 연구는 역학(力學, dynamics) 범주 안에 있다. 사전의 정의로 보면 역학은 물체의 운동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체는 힘을 가하면 움직인다”라는 경험에서 시작하여 인류는 운동과 힘이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알아왔다. 이 물체를 기체라고 생각한다면 힘과 기체 사이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학문이 기체역학이다.

항공우주공학을 한다더니 왜 갑자기 기체역학이 너의 연구 분야라고 하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항공우주공학은 하늘이나 우주에 무엇인가를 띄우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비행기든 로켓이든 우주선이든 그것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동안 부서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날아가는 물체와 주변 기체의 흐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항공우주공학과에서 기체역학은 필수 과목 중 하나다.

인류는 이미 기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관계식을 가지고 있다. 볼츠만 방정식이 그중 하나다. 루트비히 볼츠만은 약 200년 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물리학자이다. 그는 기체가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입자(원자 혹은 분자)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았던 1800년대 후반은 물질이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아직 증명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질이 입자로 이뤄져 있다고 확신하고, 그에 따른 기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경이로운 일이나, 그 당시 학계에서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이런 상황은 그를 큰 우울감에 빠져들게 했다고 전해진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원자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볼츠만의 생각이 옳았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듬해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우울증으로 심신이 이미 몹시 쇠약해진 상태에서 아인슈타인의 연구 결과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볼츠만의 가설(?)이 옳다는 점은 밝혀졌지만 그가 남긴 방정식을 푸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방정식을 풀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잘 안됐다. 볼츠만 방정식은 풀리지 않는 상태로 있다가, 1950년 즈음 컴퓨터가 개발되면서 비로소 답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볼츠만 방정식의 근사해를 구할 수 있게 되자, 이 방법은 우주개발에 널리 활용되게 되었다.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는 나는 200년 전 볼츠만이 만들어놓은 방정식을 컴퓨터로 풀고 있다. 볼츠만 방정식은 기체가 하나하나의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풀려면 입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추적해야 한다. 기체에는 1몰당 천만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입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의 움직임을 하나씩 계산하는 것은 슈퍼컴퓨터로 풀어도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 나와 동료들이 연구실에 틀어박혀 몇달에 걸쳐 풀어낸 그의 방정식 답은 우주에 로켓·우주선·위성을 보내고 태양계를 탐사하고 더 먼 우주로 나아가는 데 사용된다.

어느 날 학생들과 볼츠만에 관한 수다를 떨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참 경이롭다.’

어떤 것을 관찰하고, 반복되는 패턴을 인지하고,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를 생각하고, 거기에 상상을 더해서 인류의 지식은 여기까지 왔다. 수백 수천년 전부터 두려워하지 않고 상상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해하고 상상하려는 자들이 계속 존재하는 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조금씩 더 깊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아직 너무나 많아 절망할 필요는 없다. 느리게 하나씩 결국엔 알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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