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세미프로리그 축구선수도 노동자랍니다

한겨레 2023. 6. 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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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대한축구협회는 리그 규정을 통해 팀마다 최소 5명 선수와 최소 2천만원 정도를 보장하는 연봉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선수 5명은 경기 때 뛰는 선수 11명의 절반도 안되고, 2천만원으로 1년간 생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나머지 선수들은 수당제 계약을 하게 돼 훈련수당과 승리수당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야 합니다.
2020년 5월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축구(가명) | 프로축구 4부리그 선수

프로스포츠 선수 계약은 선수는 소속된 구단의 지시에 따라 경기와 훈련에 참여해 스포츠 선수로서 특유의 기술을 제공하고, 구단은 그 대가로 계약상 정해진 보수를 제공하는 계약입니다. 프로축구 4부(K4) 리그 선수들 역시 다른 노동자처럼 노동력(운동)을 사용자(구단)에게 제공하여 그에 따른 보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저희 역시 노동자이고 그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운동선수를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속한 K4 리그에서는 몇몇 선수를 제외하곤 거의 규칙적이고 안정적으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리그 규정을 통해 팀마다 최소 5명 선수와 최소 2천만원 정도를 보장하는 연봉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선수 5명은 경기 때 뛰는 선수 11명의 절반도 안되고, 2천만원으로 1년간 생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수당제 계약을 하게 돼 훈련수당과 승리수당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야 합니다. 경기에서 이기지 못할 경우에는 훈련수당만 받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함께해야만 생활할 수 있습니다.

해체된 한 K4 리그 구단에서는 임금 문제가 아주 심각했었습니다. 연봉제 계약을 한 5명에게 계약대로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수당제 계약을 한 선수들도 훈련수당은 전혀 받지 못했고 승리수당으로 20만~30만원 정도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달에 4경기 남짓 리그 경기를 뛰는데 승리수당만 받게 되니 경기에서 이기더라도 다른 일을 병행해야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원정경기를 할 경우 보통은 경기일 전날 해당 지역에 마련한 숙소에 도착해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하는데, 선수들이 사비로 숙소를 잡고 체력관리실 대신 운동장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무려 1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구단 쪽은 “현재 사정이 어려우니 이해를 부탁한다”는 식으로 둘러대기 바빴습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선수들은 하나둘씩 다른 팀으로 떠나거나 선수 생활을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K4 리그 다른 구단들은 이 정도까지 엉망은 아니었습니다. 구단들은 선수들에게 평균 40만원 정도 훈련수당과 20만~30만원 정도 승리수당에 더해 경기명단에 들어갈 경우 10만원 정도 엔트리 수당을 지급해왔습니다. 물론 충분한 수준의 임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해체된 구단 선수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단들은 운동장 외에도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정경기에 드는 비용을 선수들의 사비로 지불하게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문제가 됐던 구단이 해체된 뒤 리그 규정이 강화돼, 구단이 연봉제 선수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 리그에서 퇴출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대한축구협회가 선수들의 임금 문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사실 세미프로리그인 K3(3부리그), K4 리그 구단에서 뛰는 선수들은 제대로 된 급여 수준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이런 구단들을 선택하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K1(1부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꿈을 위해서 불합리한 임금 조건을 참고 운동하고 있습니다.

선수가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이런 불합리함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고, 세미프로리그가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양질의 경험을 쌓는 곳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합니다. 여전히 몇몇 구단에서 일어나고 있는 임금 체불을 막는 리그 법규조항을 강화하고, 선수가 임금을 받지 못할 경우 협회가 나서서 선수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선수, 팬, 구단 스태프 모두 ‘운동선수도 노동자다’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 인식의 전환을 통해, 저희는 더 나은 환경에서 축구에 집중하며 발전하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세미프로리그 선수들의 발전은 프로리그의 수준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종국에는 한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부지런히 일하다. ‘근로하다’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세미프로리그에 속한 모든 선수는 ‘세미’프로가 아닌 ‘프로’가 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축구 하나만 바라보고 부지런히 일합니다. 즉 이들은 축구를 일로 삼고 열정을 갖고 항상 열심히 근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팬분들께서 저희가 더 나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저희의 처지가 개선될 수 있도록 세미프로리그에 관심을 가지고 저희 주장에 귀 기울여주시길 소망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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