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10년, 길을 잃었나③ 도시재생은 지역맞춤으로…사후관리도 중요

뉴스타파 2023. 6. 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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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은 도시재생법 제정 10년이었다. 도시재생법은 다양한 도시 재정비 사업을 ‘도시재생’이라는 개념 속에서 정의하고 있다.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 이 법에 나와 있는 ‘도시재생’의 정의다.

취재팀은 7개월에 걸쳐 이런 ‘도시재생’이 현장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취재했다. 새뜰마을사업 등 기반이 되는 법률이 달라도 이 도시재생의 정의에 해당하는 사업은 ‘도시재생사업’으로 보고 취재 대상에 넣었다. 서울과 인천, 부산, 광주, 진주, 전주 등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된 지역을 현장 방문해 도시재생사업을 한 곳에서 다시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지, 거점시설은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아봤다.

1편과 2편에서는 기껏 예산을 투입해 도시재생사업을 한 직후에 곧바로 전면 철거를 하고 재개발에 들어가거나, 역시 돈을 들여 지은 거점시설이 사업 종료 후에 방치되는 실태를 보도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3편에서는 이런 문제가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인지, 예방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것인지를 취재했다.

사업 종료 후를 미리 준비한 전주 용머리여의주마을

취재팀은 지난달 20일, 전주에 있는 용머리여의주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은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되면서 주민 21명으로 구성된 마을관리 협동조합이 거점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하며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년간의 도시재생사업 동안 용머리여의주마을에는 주민공동이용시설과 옛이야기 도서관이 생겼다. 주민 제안으로 온실과 텃밭도 만들었다. 현장지원센터는 사업기간 동안 마을 주민을 고용해 사업 종료 후를 미리 준비했다. 주민들에게 협동조합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부터 설립 절차와 서류 작성 방법 등을 교육했다. 마을 토박이인 송호숙 협동조합 사무국장은 현장지원센터 코디네이터로 참여해 직접 서류 작성 같은 실무를 담당하면서 협동조합으로 자립할 준비를 했다.

취재팀을 만난 송호숙 사무국장은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시청, 현장지원센터 그리고 주민협의체가 같이 협력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잘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주민협의체는 구성원의 역량과 관심 분야에 맞게 환경분과, 복지분과, 꽃길분과, 사업분과, 교육분과, 홍보분과로 6개 분과 협의체를 구성했다. 시설을 짓기 이전에 주민의 요구와 역량을 확인하고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이 종료된 뒤에도 협동조합과 시청은 마을 행사 일정과 사업계획을 공유하며 소통을 이어오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되면서 주민공동이용시설은 협동조합이 운영한다. 현재 이 시설에는 상담센터와 마을카페, 전시실 등이 입주해 있다. 주민공동이용시설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상담센터는 지난달 1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키우면서 신체적, 정신적 안정을 얻는 원예치료를 실시했다. 마을 카페에서는 매주 월요일 주민들을 위한 천원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전시실은 과거 마을에 있던 유기전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 주민인 전북 무형문화재 이종덕 유기장의 유기를 전시하고 있다.

전북 무형문화재 이종덕 유기장의 유기가 전시된 모습(왼쪽). 주민 제안으로 만들어진 온실이 주민공동이용시설 옆에 자리잡고 있다(오른쪽). 김대선 기자

협동조합은 지난해와 올해 전주형 공동체 사업인 ‘온두레 공동체사업’에 선정되어 5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보조금은 마을 축제와 한지 공예 교실에 쓰일 예정이다. 송 사무국장은 “회의록 작성, 사업계획서 작성 등 서류작업을 직접 해본 경험이 협동조합을 이끄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6개월 째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용머리여의주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에 남은 한 가지 과제가 있다. 바로 ‘인건비’다.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된 뒤, 주민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곧바로 수익을 내 인건비를 마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송 사무국장은 “인건비 보조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알아보고 있다”며 “도시재생사업 종료 후에도 몇 년간은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시 용머리여의주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왼쪽). 지난달 20일 이곳에서 송호숙 사무국장을 만나 인터뷰했다(오른쪽). 김대선 기자

‘도시재생 사후관리 조례’를 최초로 제정한 제주도의회

2021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는 도시재생사업 사후관리 조례를 국내 최초로 제정했다. 조례 제정을 추진할 당시 제주시 원도심의 모관지구와 애월읍에 있는 신산머루의 도시재생사업이 사업 완료를 앞두고 있었다. 모관지구는 2015년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지로, 신산머루는 2017년 뉴딜사업지로 선정됐다. 모관지구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약 182억 원을, 신산머루는 2018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약 84억 원을 들였다.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되면 사업을 집행했던 현장지원센터는 해체된다. 기존의 주민협의체가 협동조합을 꾸려 도시재생을 이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협동조합이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고민에 제주도 의회와 도청, 마을활동가들이 공감하고 사후관리 조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제주도의 도시재생사업 사후관리 조례에는 도시재생사업 완료 지역이 다시 쇠퇴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사후관리계획을 사업 완료 이후 6개월 이내에 수립해야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에도 주민협의체나 협동조합 등 법인, 기관 또는 단체에 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도 뒀다. 지난해 6월 발표된 모관지구와 신산머루 도시재생사업 사후관리계획을 보면 모관지구는 3년간 총 13.6억 원, 신산머루는 3년간 총 5.7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이 예산은 인건비, 시설 운영비, 온·오프라인 홍보비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사업 사후관리 조례. 자치법규정보시스템 누리집 갈무리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홍명환 원장은 지난달 26일 취재팀을 만나 도시재생사업 사후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의 도시재생사업은 건물이 지어질 때쯤 운영 주체들이 만들어지는 구조다. 운영 주체들이 자립이 안 된 상태에서 사업이 끝나버리면 지속이 힘들다. 사람들이 안착하고 자리를 잡도록 도와줘야 지속 가능하게 운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전계획 단계에서 사후관리를 구상하지 못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애초부터 사전계획 단계에서 사후관리를 구상하고 사업을 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면서 “마을을 운영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양성할지가 계획에 필수적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만난 홍명환 원장(왼쪽). 신산머루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다함께돌봄센터(오른쪽). 김대선 기자

앞으로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의회는 사후관리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7월 개최된 도시재생 사후관리 정담회에서 기간과 예산을 명시해달라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사업이 끝난 뒤 최대 3년까지, 마중물 사업에 들어간 예산의 4% 이내 금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제주도의회 강경문 의원은 “기간과 금액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도청) 실무진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하반기 중에 개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도시재생사업 종료 후를 위해 조례 만드는 지자체 늘어

제주도에 이어 다른 지자체들도 도시재생사업의 사후관리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했다. 경기도 포천시는 지난 2월 ‘포천시 도시재생사업 사후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남양주시도 지난달 ‘남양주시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사업 사후 지원·관리 조례’를 제정하고 사후 지원과 관리에 관한 사항을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업무에 추가했다. 2021년 11월 경상남도는 기존 도시재생 조례를 개정해 사후관리를 지원할 수 있는 조항을 추가했다. 전북 전주시와 충남 공주시, 인천 계양구는 마을관리 협동조합 설립과 자생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기존 도시재생 조례에 포함시켰다.

사후관리 조례를 제정, 개정한 지방자치단체의 현황. 홍명환 원장 제공 자료.

사후관리 조례의 핵심은 사후관리 예산 지원에 관한 조항이다. 사업 예산을 배정하거나 시설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에 직접 지원하는 등의 차이는 있지만, 사후관리를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여러 지자체가 같은 인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사후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조항은 제주와 포천, 남양주 세 곳이 만들었고, 남양주는 도시재생지원센터 업무에 사후관리를 추가해 사업이 종료되더라도 지원센터가 지원할 수 있게 했다.

비용을 지원하고 사후관리 계획을 세우는 사후관리 조례가 등장한 지 길게는 1년, 짧게는 4개월이 지났다. 이것만 해도 큰 변화이기는 하지만 조례 개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남아 있다. 홍 센터장은 도시재생사업 사전 계획과 집행, 사후 평가가 한 흐름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사전 계획은 용역에 맡기고 집행은 현장센터가 하고, 사후관리는 현장센터가 해체된 다음에 하는 분절적인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민간·주민이 협정 만들고 지키는 일본의 도시재생

도시재생사업을 우리보다 앞서 실시해온 일본에서는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일본은 1970년대부터 ‘마치 즈쿠리(まちづくり)’라는 이름으로 주민 참여형 마을 만들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도시재생사업의 토대인 ‘마치 즈쿠리’는 장시간 정성을 다해 기르고 다듬어서 만들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조금씩 좋게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일본의 마을 만들기 사업은 사업계획부터 건축설계, 사후관리까지 마을 주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합의를 형성한다. 사전 준비 단계에서 주민들이 마을 산책을 하며 마을의 매력이나 문제점을 발견하고, 지도에 표시한다. 재건축 디자인 등 워크숍을 통해 마을환경 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나누고, 건물이나 토지에 권리가 있는 주민들이 재건축 모형을 만들며 공동 재건축을 검토한다.

일본의 도시재생은 지역주민이 사업 준비 단계부터 참여해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사진 민승현 연구위원 제공

공공과 주민, 민간이 협의해 규칙을 만드는 것도 일본 마을 만들기 사업의 특징이다. 워크숍에서 제시된 아이디어를 토대로 주민들이 현실적으로 지켜나가고 싶은 건축 규칙을 만든다. 일본 츠루오카시 산노 상점가 마을 만들기 협정은 “가로변 건물의 1층 부분은 상점으로 하는 것, 안전하고 이용하기 쉬운 주차장을 만드는 것, 상점의 앞을 적극적으로 녹화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공공과 주민, 민간기업, 학자들이 함께 만든 협정은 마을 정비에서 실제로 지켜지고, 사업 이후에는 협정의 형태로 남거나 지역 조례로 발전한다. 민 연구위원은 “협정은 ‘마을 만들기를 통해서 이런 것들은 꼭 지키자’라는 주민들과의 약속이다. 주민들과 공공, 민간기업이 몇 년에 걸쳐 협정을 만든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법적 의무는 없지만, 사업을 계획할 때 협정 내용을 확인하고 설계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도시재생은 개발과 정비를 포함한 넓은 개념 아래서 다양한 법을 지역 특성에 따라 적용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구와 고용의 감소로 쇠퇴하는 도시를 재생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물리적 환경개선을 위한 ‘도시재생법’, 지역 활성화를 위한 ‘지역재생법’, 도시기능 증진을 위한 ‘중심시가지활성화법’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 도시재생 전문가인 민승현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도시재생은 지역의 선택에 따라 원형을 보존할 것이냐 아니면 개발할 것이냐가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과 협의회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월 22일 서울연구원에서 만난 민승현 연구위원은 도지재생에서 공공,민간,주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왼쪽) 일본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건축 룰 만들기 워크샵'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만든 건축 룰. 우측 사진은 주민들이 만든 재건축 모형이다. 민승현 연구위원 제공 자료.

지역의 특성에 맞는 개발을 위한 ‘다이칸야마 룰’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다이칸야마에는 ‘다이칸야마 멋진 마을 만들기 협의회(이하 다이칸야마 협의회)’가 있다. 다이칸야마 협의회는 지역의 특성을 훼손하는 개발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됐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재생을 목표로 ‘다이칸야마 룰’을 제정하고 ‘다이칸야마 룰 운용회의’에서 이를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마을의 다양한 문제를 토론하는 ‘다이칸야마의 내일을 생각하는 모임’을 시작으로 2004년 4월 1일 협의회가 만들어져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취재팀은 지난달 29일 ‘다이칸야마 멋진 마을 만들기 협의회’의 히라타 나오코 사무차장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히라타 사무차장은 “개발 계획의 중첩으로 지역의 특성이 상실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협의회는 사업자가 지역을 이해하도록 돕고 지속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협의체 활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히라타 사무처장은 마을과 맞지 않는 개발을 막기 위한 협의회 활동으로 ‘다이칸야마 룰’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이칸야마 룰’은 개발 행위를 하려는 관계자에게 지역주민과 의견을 교환하도록 촉구하고 생활환경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특성을 살린 개발이 이루어지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개발 행위에 대해서 협의회와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의견을 반영할 것,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 규모를 계획할 것, 주변 환경과의 연속성과 조화를 유의할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다이칸야마 협의회는 마을 만들기 활동도 진행한다. 도시 정비와 건축 전문가를 초청해 진행하는 세미나, 다이칸야마 룰에 근거해 가로 정비를 논의하는 워크숍,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지역주민 간 이야기를 나누는 철학 카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5일에는 “다이칸야마 역 앞의 미래를 생각하다”를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43명의 주민이 모여 다이칸야마 역 도시재생에 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눴다.

다이칸야마 협의회는 지역 특성에 맞는 개발을 위해 주민과 전문가, 민간이 협의해 규칙을 만들어 오랜 기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히라타 사무차장은 “어떤 지역이든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지역의 특성을 알고, 마을에 대해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재생법 제정 10년…“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재생 필요”

김항집 한국도시재생학회장은 지난 3월 29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재생을 강조했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도시재생이 필요하다. 수도권에 있는 대도시와 지방에 있는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의 도시재생 과제와 해법은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특성에 맞는 법 적용은 도시재생법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국토연구원이 2021년 발간한 “도시재생사업 실효성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편방안 연구”도 도시 규모와 입지 등 지역 특성을 반영해 도시재생법의 정책적 대상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취재팀이 만난 김항집 한국도시재생학회장은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재생사업을 강조했다. 김대선 기자

김항집 학회장은 도시재생사업과 도시정비사업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도시재생사업을 정비와 원형 보존 중 양자택일하는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항집 학회장은 “하나의 사업지 안에서도 정비가 필요한 지역은 정비를, 원형 보존이 가능한 곳은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사업지역 안에서 도시재생사업과 도시정비사업 간의 관계를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홍렬 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20년에 발표한 논문 “도시정비사업 관련 법규와 도시재생법의 관계 및 개선방안”에서 ‘도시정비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의 연계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시재생사업 종료 후 전면 철거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도시재생사업 실패의 결과’라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의 도시재생사업이 제때 통합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중복된 결과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국토연구원 연구보고서에도 도시정비법 등 다른 법과의 중복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개발과 정비에 관한 사항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물리적 환경 정비와 관련해서 “(도시재생법에) 별도의 근거 조항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정비 관련 사항을 명확히 구분하는 법률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도시재생은?

취재팀이 만난 전문가들은 ‘길게 보는 도시재생’을 강조했다. 김항집 한국도시재생학회장은 “개발만 하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관리의 시대가 왔다”면서 “재생사업은 중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사업이다. 쇠퇴가 20~30년 일어난 지역의 재생 효과를 지나치게 단기적으로 평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경주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재생이라는 게 4~5년 사업을 했다고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다. 재생은 최소한 10년은 내다보는 사업인데 단시간 내에 뚝딱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영아 대구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특히 도시재생사업과 재개발사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깔끔하게 정비가 되었는가, 얼마나 단기간에 사업이 이루어졌는가와 같은 재개발사업을 보는 눈과 도시재생사업을 보는 눈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도시재생은 지역에서 참여와 갈등을 반복하면서 많은 경험치가 쌓여야 작동되는 사업인 만큼 더디고 힘이 드는 게 당연하다. 도시재생은 깔끔한 건물과 가로를 바라며 진행하는 사업이 아니라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며 진행하는 사업”이라고 재개발사업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특히 도시재생사업으로 주민 조직이 생겼다는 것 자체를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주민 조직체가 10년 정도 경험을 쌓아서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에도 생활공간을 지키기 위한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도시재생사업의 성과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바람직한 도시재생의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다.

“주택이나 건물 소유권이 없는 세입자여서, 나이 들거나 아파서, 혹은 생업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참여하지 못하고 배제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안정적으로 거주하고 일할 권리는 인간 실존의 문제이자 생존권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무시되기 쉬운 권리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도시재생은 상식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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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4일 도시재생법이 제정됐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쇠퇴한 지역에 마을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 조직이 생겼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거점시설도 생겼다. 반면 사업 종료 후 전면 철거 재개발을 추진하는 지역도 있다. 예산을 들여 지은 거점시설이 사업이 종료되면서 방치되는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의 도시재생을 통해 인적 자원과 경험도 축적됐다. 이제는 이런 인적 자원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도시재생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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