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귀퉁이 묻었던 4·3 희생자 유해, 75년 만에 가족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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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광풍이 일었던 시기에는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일가족 12명을 급하게 밭 한귀퉁이에 묻었다는 한을 품고 숨졌던 한 4·3 유족의 후손들이 75년 만에 희생자 시신들을 가족묘지로 모시게 됐습니다.
4·3 당시 희생됐던 일가족의 묘를 이장하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안봉수/4·3희생자 유족 : 우리 밭 귀퉁이에 묘를 만들고 제를 지냈었는데 이제 어엿하게 양지바른 곳으로 모시게 돼서 우리 가족들은 무척 편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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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의 광풍이 일었던 시기에는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일가족 12명을 급하게 밭 한귀퉁이에 묻었다는 한을 품고 숨졌던 한 4·3 유족의 후손들이 75년 만에 희생자 시신들을 가족묘지로 모시게 됐습니다.
권민지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기자>
4·3 당시 희생됐던 일가족의 묘를 이장하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한데 모인 후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제를 올립니다.
조심스럽게 묘지로 옮겨지는 유해들.
봉분을 쌓고 다지기를 거듭합니다.
이 가족묘에는 제주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곳 표선면 가시리는 제주 4·3 당시 420여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피해가 컸습니다.
9연대 군인들의 대규모 초토화 작전이 전개된 1948년 11월.
가시리 달랭이모루에서는 고 안흥규의 아내와 자녀, 동생과 조카 등 일가족이 한꺼번에 학살됐습니다.
[안봉수/4·3희생자 유족 : 그때 우리 형제분들, 어머니, 고모 해서 12분이 돌아가셨고요.]
사건 보름 만인 새벽, 고 안흥규는 급하게 시신을 수습해 밭 인근에 묻었습니다.
희생자 가운데는 당시 미처 도망가지 못했던 여성들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아직 이름도 짓지 못한 젖먹이 아기를 포함해 절반이 영유아와 어린이였습니다.
고 안흥규의 아들인 안봉수 씨는 당시 겨우 목숨을 건졌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75년 만에 선조들의 유해를 가족 묘지로 옮기기로 한 겁니다.
[안봉수/4·3희생자 유족 : 우리 밭 귀퉁이에 묘를 만들고 제를 지냈었는데 이제 어엿하게 양지바른 곳으로 모시게 돼서 우리 가족들은 무척 편안한 마음….]
안 씨 일가 희생자들이 75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가족들과 함께 깊이 잠들게 된 가운데,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수 천 명의 희생자를 찾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영상취재 : 고승한)
JIBS 권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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