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5년간 '봐주기' 셀프감사 … 비위 잡고도 솜방망이 처벌

신유경 기자(softsun@mk.co.kr), 김희래 기자(raykim@mk.co.kr),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3. 6. 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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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국민의힘 의원(맨 오른쪽) 등 여당 의원들이 7일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를 방문해 김필곤 선관위 상임위원 등 관계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자체 정기감사를 통해 업무추진비로 직원 격려금을 지급한 부적절한 행위를 적발하고도 '주의' 조치만 내리는 등 미온적인 대처를 일삼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5년간 자체 정기감사 결과 고발·징계요구 등 높은 수위의 처분은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외부에서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으면서 부정행위를 봐주고 덮어주는 조직문화가 가족에 대한 특혜 채용마저 관습으로 치부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7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선관위는 자체감사를 통해 경고 1건, 주의 42건 등의 처분을 내렸다. 인사혁신처의 공무원 징계제도에 따르면 경고, 주의 등은 불이익한 처분에 해당되지만 징계 종류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방만한 회계 운영으로 감사 대상이 된 사안들이 대부분 경미한 수위인 주의 처분을 받았다. 이 중에는 업무추진비로 직원 격려금을 지급한 건도 있었다. 지방선거 관련 단속활동 업무에 대한 노고 치하 명목으로 소속 직원에게 업무추진비로 현금 20만원을 지급한 사례다.

직전 해인 2021년에 이어 동일한 수법이 적발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연이어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이다. 당시에도 업무추진비로 지방선거 관련 업무에 대한 노고 치하 명목으로 내부 직원에게 90만원의 격려금이 지급됐는데, 이 또한 주의 처분만 받았다.

이외에도 관서운영경비 지급 범위를 초과해 일반수용비 등을 집행한 건과 지급단가 기준을 초과해 숙박시설 임차비를 과다 지급한 건도 주의 처분에 그쳤다. 앞서 2019년에도 선관위는 2018년 당시 선거경비와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부실한 업무에도 주의 처분을 남용하며 선관위가 사실상 '봐주기' 감사를 펼쳐온 정황이 확인됐다. 지난해 주의 처분을 받은 사안 중에는 선거공보에 후보자의 학력 확인을 소홀히 한 건과 후보자 등록 재산에 관한 신고 심사를 소홀히 한 건이 포함됐다. 입후보할 수 없는 사람의 예비후보자 등록신청을 접수·수리한 뒤 등록무효 결정 후 다른 선거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건도 주의 처분을 받았다. 후보자등록신청 서류 중 재산신고 가액 단위를 오환산하고 병역신고대상자임을 미확인한 건도 마찬가지였다.

감사 결과에 대한 처분을 명문화한 선관위 감사규정 역시 애매모호하다. 선관위 감사규정상 처분은 고발·징계요구·경고·주의·회수 등으로 나뉜다. 규정에 따르면 경고의 경우 감사 결과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사실이 있으나, 그 정도가 징계 사유에 이르지 않을 정도로 경미할 경우 처분한다. 주의는 그 정도가 징계 또는 경고 사유에 이르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경우에 내린다. 모두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박 의원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봐주기식 감사와 특혜 채용 등을 자행하는 선관위를 어느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느냐"며 "이번 기회에 전문성 있는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 적폐를 제대로 털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장 공정해야 할 선관위의 무능과 부패는 결국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떳떳하다면 감사든 수사든 받지 못할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선관위를 향한 국민 여론은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메트릭스가 연합뉴스·연합뉴스TV 공동 의뢰로 지난 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노태악 선관위원장 거취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중 73.3%가 '이번 사안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79.6%)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72.0%)에서 노 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민의힘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날 선관위 청사를 항의 방문해 감사원의 직무감찰 수용을 재차 촉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선관위를 방문한 것은 지날달 23일에 이어 두 번째다. 행안위 여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김필곤 선관위 상임위원과 김문배 선관위 기조실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지금이라도 객관적이고 전문성 있는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경찰청에서 선관위 간부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유경 기자 / 김희래 기자 /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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