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전환의 시대에 애덤 스미스 읽기

2023. 6. 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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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
그것이 스미스的 근대의 출발
챗GPT로 문법이 바뀌는 시대
새로운 사회구성 원리는

올해는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이 되는 해로, '국부론'으로 근대경제학의 시작을 알린 그의 사상을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고전의 재해석이란 으레 그러하듯이 당대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옛 현인의 지혜를 통해 답을 구해보려는 시도다. 그러나 때로 고전 읽기는 연구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고전의 권위를 빌려 대신 전달하고자 하는 짜깁기로 오용되는 것도 현실이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애덤 스미스로 빙의해 그가 당대에 풀고자 한 문제를 살펴보고, 그 질문의 동시대성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17~18세기 근대 유럽인들은 봉건적 질서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쟁취했다. 그와 같은 사회적 변화를 배경으로 토머스 홉스는 자연권이 우위를 점하는 근대적 자연권·자연법 사상에 기초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부터 시민사회론을 구성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 곳곳에서 균열이 커지면서 평등한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의 질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수직적 위계질서로 통치돼왔던 전통사회의 갈등과 혼란이 가중되자 근대 초기의 정치철학자들은 인간의 주체화, 즉 봉건적 질서로부터의 '개인'의 형성을 사회 구성의 원리로 삼고자 했으나 자유를 얻게 된 평등한 인간과 그러한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난제는 풀리지 않은 것이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즉 온전한 개인성과 사회가 갖는 상호의존성 사이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모순에 대해 홉스는 다시 한번 '복종의 계약'을 통한 수직적 질서를 상정할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도덕철학자로 출발한 스미스 역시 이러한 질문에 봉착했으며 그의 도덕철학 체계의 두 번째 부분인 윤리학에 해당하는 '도덕감정론'에서부터 이에 답하고자 했다. '도덕감정론'에서 그는 신의 본성이 아닌 신중함, 정의, 자혜 등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본성을 통해 사회가 구성되고 질서가 유지되는 원리를 설명하고자 했다. 특히 '가상에 의한 입장의 교환'을 의미하는 공감(共感·sympathy)의 원리는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며 인간 행동의 적정함을 보장하는 핵심적 요소다. 그러나 도덕에서 해방된 개인들 사이의 사회적 결합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한번 개인의 도덕적 이타심이나 위계적 계약을 끌어들이는 것이 근대적 사회질서의 원리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장이 확대되고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스미스는 동시대 정치철학이나 그 자신의 도덕철학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그 개념은 바로 '국부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노동과 가치'이다. 노동가치론에서 인간의 관계는 노동의 교환 관계와 가치의 교환 관계로 구성되는데, 인간과 인간이 직접적으로 맺는 관계는 외적인 강제기구를 필요로 하지만, 가치 관계는 가격기구라는 내적 메커니즘으로 인간의 관계를 조절한다. 인간의 본질은 노동과 욕구이며 분업을 통해 생산성의 무한한 발전이 가능해진 상태에서 인간의 욕구와 갈등은 시장을 통해 조절되고 해소된다. 인간 사회의 직접적 교류를 통해 사회의 원리를 설명하려 한 '도덕감정론'과 달리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재화의 생산 과정과 교환 질서를 통해 사회의 조절 문제를 접근한다.

챗GPT와 마이크로 칩 이식의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가치가 경제학을 위시한 근대사상의 자명한 공리이자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근대적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에 새로운 사회 구성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애덤 스미스 300주년, 근대 사회과학의 의미에 대한 보다 발본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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