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못하던 미국 시인, 한국 詩 전파자로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3. 6. 7. 17: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이크 레빈 계명대 교수
2012년 한국 오면서
처음 한국문학과 조우
한국 시집 영어로 번역
전미번역상 등 휩쓸어
"한국詩 매력은 다양한 상상력"

한국 시를 영어로 번역해 국제적 문학상을 휩쓸고 미국 출판사에서 한국 시 시리즈를 출간해 영미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미국 시인이 있다. 2012년 한국어를 전혀 못하던 상태로 한국에 와 현재는 계명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제이크 레빈 교수(사진)다.

레빈 교수는 김이듬의 시집 '히스테리아(Hysteria)'를 번역해 2020년 한국 문학 작품 최초로 미국 문학번역가협회(ALTA)가 주관하는 전미번역상을 받았다. 레빈 교수는 아시아의 시를 뛰어나게 영역한 번역가에게 주어지는 루시엔 스트릭상도 수상했다.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상을 동시에 받은 것은 ALTA 문학상이 제정된 이래 레빈 교수가 처음이다.

이외에도 황유원 등 다수의 한국 시인 시를 번역한 레빈 교수는 미국 출판사 '블랙오션(Black Ocean)'에서 한국 시 영역본 시리즈인 '문 컨트리(MOON COUNTRY)'를 만들어 다른 번역가들의 한국 시 영역본도 편집·출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루시엔 스트릭상을 받은 이영주의 '차가운 사탕들(Cold Candies·번역 김재균)' 역시 '문 컨트리' 시리즈로 출간된 시집이다.

레빈 교수가 한국 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2년 한국 대학에 취직하면서였다. 미국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세종대 영어과목 담당 교수로 채용돼 한국 땅을 밟은 레빈 교수는 서울대 비교문학 전공 박사 과정을 밟으며 번역 이론을 공부했고, 2016년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I Am a Season That Does Not Exist in the World·루시엔 스트릭상 후보작)'를 시작으로 한국 시 번역을 시작했다.

레빈 교수는 한국 시의 매력이 다양성에 있다고 밝혔다. 한국 시에는 외국 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내용과 형식이 존재하고 유머가 풍부해 해외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레빈 교수는 "'미래파'로 분류됐던 황병승, 신용목 등의 시인들도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눈에 띌 만큼 개성이 넘치고 김이듬, 김민정 등의 페미니즘 시들은 소설 '채식주의자'의 진지함과는 구별되는 유머가 있다"며 "한국 시 영역본 시리즈 이름을 '문 컨트리'로 지은 것은 김수영의 시 '달나라의 장난'에 나오는 달나라처럼 한국 시들이 깊은 상상력을 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레빈 교수는 한국 시를 번역할 때 원작의 뉘앙스와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마루' '가야금'처럼 영어에 대응어가 없는 한국 시의 시어를 함부로 다른 영어 단어로 대체하거나 번역 과정에서 작품의 맥락을 자의적으로 재창조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레빈 교수는 번역을 할 때 필요시 원작자에게 시어의 의도를 물으며 작업을 진행한다. 레빈 교수는 "시집 안에서 시인이 신이라면 번역가는 신의 말을 전하는 성직자라고 생각한다"며 "과거 한국 문학을 번역한 일부 작품에서 오역 논란이 일었던 것은 번역가의 역량 문제도 있지만 편집자와 원작자의 감수를 적절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자신의 세 번째 시집 'The Imagined Country'를 발간한 레빈 교수의 목표는 한국어로 쓴 자신의 시집을 출간하는 것이다.

레빈 교수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시를 쓰는 것은 새로운 감정과 개념을 배우는 경험"이라며 "한국 독자들에게 외국인 시각에서 본 한국 사회의 모습을 깊이 있게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형주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