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중 가장 흔한 림프종, '이중항체'는 매력적인 치료 옵션"

박정렬 기자 2023. 6. 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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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의료,인] 엄현석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新의료,인'을 통해 새로운(新) 의료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人)과 속(in) 이야기를 전합니다.

혈액암은 일반인에게 비교적 익숙한 암이다. 작가 겸 방송인 허지웅을 비롯해 최근 '국민 배우' 안성기의 투병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의 관심을 환기했다. 흔히 '혈액암=백혈병'을 떠올리지만, 사실 환자가 가장 많은 혈액암은 T세포·B세포 등 림프구와 림프계의 돌연변이로 인한 림프종(림프암, 임파선암, 임파종이라고도 불림)이다. 백혈구·적혈구가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 듯, 림프구도 림프액에 실려 림프관·림프절을 통해 우리 몸 구석구석에 닿는다. 림프종 환자가 밤에 땀을 많이 흘리거나, 이유 없이 3개월 내 체중이 10% 이상 감소하는 등의 전신 증상을 경험하는 배경이다.

림프종과 같은 혈액암은 간암·폐암처럼 수술로 치료할 수 없어 일찍부터 항암제가 발전했다. 특히, 림프종 중에서도 가장 흔한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이하 DLBCL)은 의료계의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그 결과, 이제는 항암제에 반응이 없거나(불응성) 재발(재발성)하는 DLBCL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신(新)무기'도 속속 결실을 보고 있다. 초고가 항암제 '킴리아'를 포함한 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에 이은 앱코리타맙·오드로넥스타맙 등의 '이중특이항체'가 대표적이다. 이중특이항체 신약 임상에 모두 참여 중인 엄현석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은 "CAR-T 치료제와 비교해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이중특이항체는 한국인에게 매력적인 치료 옵션"이라 평가했다.

엄현석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이 림프종의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국립암센터
치료 힘든 림프종 환자 10명 중 4명이나 돼
DLBCL을 포함한 림프종은 다른 고형암과는 달리 병기(1~4기)만으로 치료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똑같은 병기라도 나이, 종양의 크기(LDH 수치), 일상생활 수행 능력, 암세포 침범 범위, 유전자 변이 유무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치료가 잘 될 수도, 반대로 어려울 수도 있다. 엄 병원장은 "악성 림프종 환자 중에는 목이나 배에 혹이 생겨 병원을 찾았다가 암을 진단받는 사례가 많은데, 오히려 이처럼 '림프절 외 침범'이 일어나지 않으면 환자 예후가 좋은 편"이라며 "치료 시 고려하는 여러 요인만큼이나 치료법도 다양하게 발전해왔다"고 설명했다.

DLBCL 환자에게는 표적치료제인 리툭시맙과 3개의 세포독성 항암제, 스테로이드를 함께 쓰는 'R-CHOP' 요법이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다. 리툭시맙의 'R'과 다른 네 약물의 앞 글자인 'CHOP'을 따 이렇게 부른다. 2000년대 전까지는 소위 '머리 빠지는' 세포독성 항암제 기반의 CHOP 요법을 적용했지만, 표적치료제인 리툭시맙을 함께 쓰면서 생존율은 10% 이상 상승했다.

표적치료제는 암세포에만 나타나는 특정 단백질(항원)에 결합하는 항체로 만든다. 하나의 자물쇠에 하나의 열쇠만 꼭 들어맞듯, 표적치료제도 항체가 암세포만이 가진 항원에만 달라붙도록 설계한다. DLBCL와 같이 B세포의 문제일 경우 이 표면에 나타나는 항원인 CD19, CD20, CD22를 타깃으로 항암제를 개발한다. 리툭시맙은 CD20에 달라붙는다. 언뜻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효과는 극적이다. 엄 병원장은 "항체가 종양 표면에 결합하면 다른 면역 세포들을 끌어들여 암을 공격하거나 '보체'라는 면역 물질을 활성화해 직접 암세포를 죽이는 항체·보체 매개성 세포독성 반응이 동시에 일어난다"며 "항원에 항체가 붙기만 해도 적(암세포)을 공격하기 위해 총과 미사일을 쏘면서 지원군을 부르는 '총력전'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암세포로 T세포 끌어당겨 치료 효과↑
하지만, R-CHOP 요법으로도 DLBCL 전체 환자 10명 중 4명은 약이 듣지 않거나 암이 재발한다. 나이와 비례해 발병률이 높아지는 림프종의 특성상 치료에 실패해도 동반 질환이 있거나, 고령으로 체력이 달린 환자가 많아 이후로 다른 세포독성 항암제를 쓰는 구제항암치료나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엄현석 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 /사진=국립암센터


엡코리타맙과 오드로넥스타맙의 적용 대상은 이런 40%의 불응성·재발성 DLBCL 환자다. 기존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 바로 이중항체다. 한쪽은 암세포(B세포)의 항원인 CD20에, 나머지는 건강한 면역세포(T세포) 항원인 CD3에 붙어 둘을 연결한다. 앱코리타맙과 오드로넥스타맙은 각각 피하, 정맥 주사로 투입 방법은 차이가 있다. 외부에서 항체를 주입할 때 나타나는 알레르기, 혈압 저하 등의 거부반응도 제각각 다르다. 임상시험을 진행할 땐 엄격한 환자 분류를 통해 대상자를 선별한다. 엄 병원장은 "리툭시맙같은 단일항체가 면역세포를 끌어들이길 '기대'하는 약이라면, 이중항체는 면역세포를 끌어들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만큼 치료 효과가 더욱 강력하고 확실하다"라며 "치료법이 없어 속수무책인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중특이항체 신약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중특이항체와 치료 대상과 작동 방식(기전)이 비슷한 CAR-T 치료제는 이미 상용화돼 있다. B세포의 또 다른 항원(CD19)을 표적 하는 항체 유전자를 T세포에 주입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이끈다. 애초 T세포가 만들어질 때부터 암을 공격하라는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CAR-T는 반감기 없이 몸 안에서 계속 순환해 한 번 투여만으로도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원샷 치료제'이기도 하다. 다만, 환자에게서 림프구를 추출한 후 냉동해 미국에서 제조한 뒤 국내로 들여야 해 4주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엄 병원장은 "환자 상태에 따라 T세포를 분리하지 못하거나 즉각적인 처치가 요구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바로 쓸 수 있는 이중항체가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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