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라도 좋으니 당장 사겠다"…K9 자주포, 이유있는 질주 [사람과 현장]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2023. 6. 7. 16: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 매경 포커스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3사업장에서 최종 조립을 마치고 시험운행 준비를 위해 주행로에 대기하고 있는 K9 자주포 앞에서 회사의 핵심 주역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최동빈 사업장장(상무), 김대영 해외영업센터장(전무), 차영수 생산팀장(부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화포(火砲)라는 무기가 탄생한 이후 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포병이었다. 압도적 우위. 포의 발달은 수학의 발달과 궤를 같이한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 출신이었다. 그는 수학을 좋아했으며 잘하기까지 했다. 전쟁 중에도 수학자를 동행했다. 포병의 시대를 종식시킨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이다. 새로운 '전투의 왕자'가 탄생한다. 그게 전차다. 당시는 참호전, 참호 앞에는 철조망과 장애물이 있고 기관총 세례가 기다린다. 참호를 돌파하고 적의 진지를 점령할 신병기가 필요했는데 그게 전차였다. 전차는 1차 세계대전 때 등장했다. 위력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선 놀랄 만한 모습으로 진화된다. 전차가 기갑부대에 배속되면서다. 신속한 기동과 기습으로 일거에 적진을 돌파하는 신개념의 작전이 펼쳐진다. 이름하여 전격전. 적의 제1선을 급속히 돌파하여 후방 깊숙이 진격함으로써 적을 양단시키는 전술이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때 처음 실시한 걸로 전쟁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웬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차가 의외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포병 기술이 발달해서다. 통상 전차는 상층부가 약하다. 너무 무거우면 기동력이 떨어지니 그렇게 만든다. 전차 위로 폭탄을 떨어뜨리면 그 비싼 전차는 고철 덩어리가 된다. 그게 드론이었다. 여기에 개인이 소지하고 다니거나 이동이 가능한 대전차포의 성능도 좋아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수도 키이우 주변에서 러시아군을 가장 많이 살상하고 결국 키이우 점령을 무산시킨 것도 우크라이나 2개 포병여단이었다.

항공기도 마찬가지. 항공기는 상공 높이 올라가 적의 핵심 지역에 폭탄을 투하한다. 이른바 종심타격. 전차부대의 진격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도 항공기의 역할인데 이 역시 레이더 기술의 발달과 대공미사일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과거와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쟁의 왕자 자리는 다시 오리무중이 되었고 포병은 흘러간 전설에서 다시 영광을 재연했다.

전투기에 탑재되는 고성능의 미사일, 항공모함에서 쏘아올리는 초정밀 폭탄이 등장하는 현대전, 게다가 사이버, 인공지능에 우주전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한물간 재래식 화포가 각광받는 아이러니. 나름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가격이다. 최고급 탄도미사일이 우리나라 돈으로 10억원 정도 한다면 포탄은 100만원대. 상대가 안 된다. 한 발 쏠 걸 1000발을 쏜다. 기상 여건이나 지형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가성비 높고 고효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중에서도 자주포(自走砲). 말 그대로 스스로 달리는 포로 차량에 탑재돼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모양은 전차 같지만 기능은 대포다. 전차는 직사화기고 사거리도 짧다. 그러나 자주포는 곡사화기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니 사거리도 길다. 영국의 안보 문제 연구기관인 국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현대화된 중형 자주포는 작년 기준 전 세계에 6402문 있다. 정보 획득이 어려운 북한을 뺀 수치다. 이 중 155㎜포는 4656문, 중국의 122㎜가 1440문, 러시아의 152㎜가 300문이다. 그런데 이 자주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한국이고 그 기업이 한화다. 현재 전 세계에 있는 중형 자주포의 36%인 1787문이 한화의 K9 계열이다. 수출한 물량만을 놓고 보면 45%다. 총 8개국에 수출된다. 한화 관계자는 "향후 계약된 물량까지 친다면 아마도 70%는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폴란드로 첫 수출될 예정인 K9 자주포 차체. 폴란드 국기표시가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의 K9 자주포가 잘나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쟁 제품은 독일의 PzH2000. 포탄 적재량이 많고 빨리도 쏜다. 장애물이나 참호통과 능력도 우수하다. 그러나 K9은 몸체가 가벼워 주행 스피드가 뛰어나다. 나머지 면에선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뭐니 뭐니 해도 핵심은 가격. 독일제가 최소 2배 이상이라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방의 아킬레스건이 화포였다. 1971년 번개사업으로 탄생한 KM19라는 박격포는 포병이 아니라 보병의 화기였는데 최대 사거리는 1.8㎞. 지금의 탱크 사거리보다도 짧다. 그러다가 1984년에 실전에 배치된 KH179라는 곡사포가 있었는데 이건 자주포가 아니라 트럭으로 끌고 다니는 견인포였다. 북한에 비해 여전히 열세였다. 북한은 숫자도 훨씬 많고 그중 50%가 자주포이거나 차량 탑재용이었다. 기동력 면에서 상대가 안 됐다. 이런 안보 위기감에서 탄생한 게 바로 K9 자주포다. 1989년 국방과학연구원은 자주포 체계팀을 편성해 개념 연구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 뒤 개발 완료. 드디어 육군에 배치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해 6월 연평해전이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 군 당국은 K9을 해병대용으로 전환 배치해 연평도에 갖다놓는다. 연평도에서 북한 해주까지는 32㎞. K9의 최대 사거리 40㎞ 내에 포함된다. 바로 이곳 창원 공장에서 출고식을 마치고 해군 상륙함에 실었다.

제2연평해전 발발 8년 후 2010년 11월 23일 이번엔 북한군이 연평도에 선전포고 없이 포격을 단행한다. 정전협정 이래 최초로 발생한 민간 거주구역에 대한 공격이다. 이때 우리가 맞대응한 무기가 바로 K9 자주포였다. 정확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논바닥에 떨어졌느니 바다로 빠졌느니 미확인 보도가 난무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전략정보 전문기관인 '스트랫포'가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고 나온 말들"이라며 "그러나 북한 방사포 진지와 해안포대의 관련 시설 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탄착이 형성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북한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도 K9 자주포의 위력에 북한군이 놀란 게 확실하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K9 자주포를 만드는 곳은 경남 창원에 소재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당초 삼성정밀에서 시작해 삼성항공, 삼성테크윈, 한화디펜스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 지금은 재래무기부터 잠수함, 우주까지를 포함한 방산사업을 핵심 가치로 키우는 한화의 품에 안겼다. 그러곤 대한민국 방산 수출의 아이콘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산강국을 천명하고 한국 방위산업을 극찬하는 외신 보도도 나오지만 아직까지 국산 무기는 마이너리그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자료(2022년)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이 세계 9위. 총 26개 분야로 세분하는데 가장 앞선 분야가 바로 화포다. 미국이 100점이면 한국은 87점. 그런데 이 화포 중 자주포 분야에서는 K9이 당당히 1등을 다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손재일 사장은 "전 세계 수출의 70%가 우리 제품"이라며 "우리나라 수출품 중 시장 점유율이 70% 넘는 게 몇 개나 될 것 같으냐"고 반문한다.

손 사장이 들려준 에피소드 하나.

"2016년 노르웨이에서 우리 자주포를 구입하려고 했습니다. 현지 시험을 하는데 이웃 나라인 핀란드, 에스토니아도 참관했습니다. 그런데 노르웨이가 아니라 다른 나라가 더 놀란 겁니다. 핀란드가 사자고 했고 에스토니아도 구매 의사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두 나라에 지금 신제품을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니 중고품이라도 사겠느냐고 해서 팔게 됐습니다. 핀란드는 노르웨이보다 9개월 먼저 구매계약을 합니다."

무기를 사기 전 에스토니아의 고위 군사 관계자가 2018년 K9 자주포를 운용하는 군부대를 방문했다. 그때 에스토니아 장군을 영접한 한국군 최고 책임자는 부대에 배치된 지 얼마 안되는 신병에게 K9을 운용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초년병도 쉽게 조작하는 걸 보고 감동했다는 후문.

특히 이들이 놀란 건 자주포의 정확성. 사거리가 40㎞인데 반경 50m 안쪽에 떨어진다. 파편이 통상 50m는 가니 실제 목표를 거의 100% 타격한다고 보면 된다. 폭탄을 공중에서 폭발시켜 타격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자주포는 육군용이다. 지상의 적군 진지를 겨냥하거나 전차부대 등을 겨냥해 사용한다. 그런데 이를 해안포로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이집트다. 이집트는 K9 자주포의 정확성에 놀라 해군에 배치해 해안포로 활용하도록 했다. 움직이는 배도 맞히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인도는 2017년 K9 자주포를 100대 구입했다. 한화는 인도에서 러시아 자주포와 경합했다. 통상 언덕 주행 평가는 콘크리트로 만든 일정 경사각 도로를 사용한다. 그러나 인도의 요청은 달랐다. 자신들의 작전지역인 모래언덕서 하자고 했다. 거센 바람이 몰아쳐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파른 모래 오르막을 올라가야만 했다. 몇 차례 시도를 하다가 러시아는 포기했다. K9 자주포는 그 혹독한 테스트를 통과했다.

작년 9월에는 메인스트림인 미국으로 건너갔다. 자주포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인 미 육군은 K9의 성능과 짝꿍에 해당하는 K10 탄약운반차와의 연계 성능에 관심을 보였다. 애리조나주 유마사격장에서 시범을 보인 자주포와 탄약차. 미 육군 전투력발전사령부의 에드먼드 마일스 브라운 사령관(소장)은 "미국의 화포를 가져가 사용하던 때가 언제인데 이제 이런 첨단장비를 미국으로 가져와 행사를 한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해외영업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대영 전무는 "현재 록히드마틴과 함께 1조원대 영국 육군의 차세대 자주포 회득 사업인 MFP에 참여할 계획"이라며 "여기엔 K9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버전인 K9A2를 내세울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게 성사되면 자주포를 세계 처음 만든 나라에 수출하는 신기원을 여는 셈이다.

기자가 지난주 창원 공장을 찾았을 때는 마침 폴란드에서 5선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관계자 3인이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었다. 폴란드는 현재 대한민국 방산의 최대 고객. 2014년 처음으로 자주포 차체를 120대 사갔고 작년엔 여기에 포탑까지 얹은 완제품 672문 구입 계약을 체결했다. 8월에 1차 물량 212문 구입을 구체화했다. 이에 따라 한화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K9 초도 물량 48문을 폴란드군에 전달했으며, 폴란드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연합훈련인 '아나콘다23'에도 참가했다. 현재는 2차 실행 계약을 위한 양측 간 세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생산라인은 크게 4파트로 구분된다. 먼저 쇠를 붙이는 용접 분야, 그 다음 표면을 가공해 틀을 만들고 여기에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 공정이 기다린다. 그러고 나선 조립라인에 들어선다. 조립은 ①바퀴 등을 다는 현수 ②전기선을 놓는 배선 ③엔진을 얹어 동력장치를 장착하고 ④차체에 포탑을 얹어 무장을 하는 단계 ⑤그리고 유압을 조정하고 마지막으로 ⑥조준 감사를 하게 된다. 그 조립라인엔 현수 단계에 들어갈 폴란드 국기를 단 K9 자주포의 차체 틀이 놓여 있었다. 생산을 책임지는 최동빈 상무는 "100여 명의 생산인력 중 절반가량이 국가기술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평균 근속연수가 25~30년은 된다"며 "국민 세금과 방위성금으로 정부가 무기를 사준 덕에 성장한 점도 있지만 국내 수요로는 한계가 있다"며 수출산업으로서의 제조 경쟁력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생산라인에서 나온 K9 자주포는 성능시험을 거쳐야 한다. 1.6㎞ 길이의 주행로를 달린다. 디젤차량인데 연비는 1㎞가 안된다. 전투중량 47t에 1000마력이니 그런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포반장 자리에 정위치하니 시동을 거는데 굉음을 낸다. 역시 직접 타봐야 실감이 난다.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자리다 보니 귀가 멍멍하고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시속 60㎞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느낌은 질주다. 하마나 코뿔소가 달리는 것 같은. 그렇게 K9은 한국 방산의 대표주자로 세계 시장을 질주한다.

155㎜포

포탄의 구경이 155㎜라는 얘기인데 구경이 클수록 위력은 세지만 그만큼 운반과 장전에는 취약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참호전에 대비하기 위해 개발한 곡사포용 포탄이 155㎜였는데 이게 효과가 대단한 것으로 입증되자 미 육군이 이를 따라 표준야전포탄으로 채택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엔 나토가 포병 표준으로 삼았다. K9도 155㎜다. 포신 길이를 포구 직경으로 나눈 값이 구경장인데 K9은 52다. 그렇다면 포신 길이는 8m6㎝.

사람과 현장은…

머리보다는 가슴, 가슴보다는 발로 쓰는 글을 좋아한다. 경제기사가 따분한 이유는 발로 쓰지 않고 머리로 써서 그렇다. 발품을 팔아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니다 보면 글이 나온다.

[손현덕 주필]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