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해서 던졌는데 '덜컥' 수리? 사직서의 무게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사직서 제출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활용된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 '미생'의 오과장, 최근에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차진만까지. 그런데 간혹 “부장님, 사직서 제출하겠습니다. 수리해 주십시오”, “난 사직서 수리할 생각 없습니다”와 같이 사직서와 관련해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간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때 사직서는 직장 상사와 의견이 다른 부하 직원이 의견관철을 위해 배수의 진을 친 것이거나, 직장 내에서 썸타는 직원 간 로맨스의 일종이거나 ‘욱’하는 성격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이렇게 줄다리기를 하는 장면이 펼쳐진 이후 실제로 사직하는 경우는 거의 보기 어렵고, 사직서는 수리되지 않아 없던 일이 되고 다음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러한 상황을 법률적으로 설명해본다.
먼저 ‘사직서를 수리해 달라’, ‘사직서를 수리 못한다’는 경우다. 사직서의 수리는 사직을 허락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회사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회사를 마음대로 그만두지 못하는가? 아직도 종종 회사가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면 사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이를 전제로 조치가 이루어지는 경우를 보는데, 그렇지 않다. 공무원은 국가가 임'면'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에 별도로 정해진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공무원이 그만두려면 국가의 승인이 필요하다.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으면 사직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공무원에 한해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면 사기업은 어떨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근로관계의 종료사유에는 정년, 기간의 만료, 사망, 해고, 사직, 합의해지 등이 있다. 사직이냐, 합의해지냐를 놓고 종종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있고, 이때 문제는 사직서의 제출을 확고한 사직의 의사표시로 볼 것인지, 사직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와 관련해 판례는 사직의 의사표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근로계약을 종료시키는 취지의 해약고지로서 사직의 의사표시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상 근로자로서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비록 민법 제660조 제3항(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때에는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당기후의 일기를 경과함으로써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 소정의 기간이 경과하기 전이라 하여도 사직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다(대법원 2000. 9. 5. 선고 99두8657 판결).
근로계약도 민법상 고용계약의 일종으로서,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 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민법 제660조 제1항). 사용자가 근로계약 해지를 하는 것은 해고로서 특별법인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는 것과는 달리 근로자가 고용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를 함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으므로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행한 사직의 의사표시가 원칙적으로 근로계약 해지의 통고에 해당한다는 것은 타당한 법리이다. 결국 원칙적으로 사직서의 제출, 즉 근로계약 해지의 의사표시로서 근로계약은 종료되고 사직서의 수리는 굳이 필요없다. 사직할테니 사직서를 수리해달라는 것, 사직서를 수리해주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는 넌센스이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회사가 승낙하지 않으면 계속 회사를 다니면서 하기 싫은 근로를 강제로 제공하여야만 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사직서의 수리’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첫째, 통상적인 퇴직과 달리 다른 조건이 결부되는 경우로, 퇴직의 대가로 법정 퇴직금 이외에 소정의 금액이 지급되는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이 대표적이다. 근로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보장되는 퇴직금 이외에 다른 대가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 이에 추가적인 대가가 결부된 경우에는 사용자의 승낙, 즉 수리가 필요하다.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에 관해 회사의 퇴직자 모집 공고는 청약의 유인, 근로자의 퇴직 지원은 청약, 회사의 퇴직자 선발을 승낙이라고 설명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사직서의 수리는 사직일에 대한 합의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 별다른 합의가 없는 한 사직일은 통상 사직서를 제출한 날이 속하는 달의 다음 달이 경과한 날이다. 예를 들어 6월 7일 사직서를 제출하였다면 8월 1일이 된다. 민법 제660조 제3항은 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때에는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당기후의 일기를 경과함으로써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대부분은 월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로자가 법정 근로계약 종료일보다 먼저 사직하기를 원하고, 이러한 의사표시가 담긴 사직서를 회사가 수리한다면, 합의에 따라 사직일이 앞당겨질 수 있다.
그러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사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회사가 간곡히 근로자에게 사직을 만류하고, 이에 근로자가 사직의 의사를 철회함으로써 근로관계가 지속되는 경우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동의 하에 사직의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것이다. 만일 근로자가 회사의 사직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의사를 굽히지 않을 경우 당초 사직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당연히 고용관계는 종료된다.
마찬가지로 사직서를 제출했음에도 회사가 별 반응이 없다면 사직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근로계약은 종료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서 없던 일로 하자거나 실제 사직할 생각 없이 욱하는 마음에 한번 던져본 것이라는 변명은 법률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번 상대방을 떠보려고 사직서를 던졌다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법적 지위에 놓이게 될 수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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