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인구감소·의대쏠림·대학해체의 삼각파도에 휩쓸리는 대학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3. 6. 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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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방대. 연합뉴스 제공

전국의 대학이 거대한 삼각파도에 휩쓸려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지역대학 소멸로 이어지고 있는 학령인구 감소의 파고도 제대로 넘지 못했는데, 이제는 백약이 무효인 의대·이과 쏠림의 폐해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최소한의 소통 의지도 상실해버린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교육개혁의 파고도 심상치 않다.

‘대학규제 제로화’를 핑계로 지방대학의 관리를 포기해버리는 ‘라이즈 사업’과 정체도 알 수 없고, 예산도 확보하지 못한 ‘글로컬대학 사업’은 사실상 대학 해체 작업에 가까운 것이다. 30년 전 어설픈 신자유주의를 외치면서 섣부르게 만들어놓은 대학설립준칙주의가 수명을 다하고 초신성(超新星) 폭발로 이어지기 직전의 암울한 상황이다.

서울대. 위키미디어 제공

● 선도대학의 책무를 잊은 서울대

서울대가 5월 27일 정부의 첨단분야 인재 양성 정책에 따라 218명 정원의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2024학년도 서울대 전체 입학정원 3502명의 6%, 공대 입학정원 817명의 26.6%에 해당하는 상당한 규모다.

첨단융합학부에 개설하겠다는 차세대지능형반도체·지속가능기술·혁신신약·디지털헬스케어·융합데이터과학 등은 대학의 전공이 아니라 기업의 부서에 더 어울리는 전공이다. 약사고시 응시자격조차 부여하지 않겠다는 ‘혁신신약’ 전공의 정체는 짐작조차할 수 없는 상황이다.

1990년대 초에 500여 명의 증원 이후 30년만의 이례적인 증원에 대한 서울대의 준비는 황당한 정도를 넘어 어처구니없는 수준이다. 당장 가을부터 수시 148명, 정시 70명의 신입생을 모집해야 하지만 서울대는 철저하게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첨단융합학부의 신설을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학부 설립에 필요한 시설·교수·직원을 어떻게 확보하고, 교육과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찾아볼 수 없다. ‘신설이 승인만 된 것이지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다고 알고 있다’는 것이 서울대 관계자의 발언에서는 선도대학에 대한 사회적 책무에 대한 인식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서울대만 입학정원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SKY)의 298명을 비롯한 수도권 상위권 대학의 정원이 817명이나 늘어난다. 수도권의 입학정원이 늘어나는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결국 가을에 시작되는 내년도 입시는 격하게 요동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 확실하다. 특히 서울대가 수도권 대학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증원하게 되면서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의 입시 전략은 연쇄적인 지각변동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수도권 증원의 파장은 고스란히 지방대로 넘어간다. 교육부가 지방대에도 입학정원 증원이라는 선물을 준 것은 사실이다. 경북대 294명을 비롯한 10개 대학의 입학정원이 총 1012명 늘어난다. 그런데 지방대의 입장에서는 입학정원 증원을 마냥 반길 수가 없다. 증원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10개 대학도 과연 늘어안 정원을 채울 수 있을 것인지 불확실하다.

자칫하면 교육부의 선물이 ‘그림의 떡’이 돼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교육부 증원의 부담은 고스란히 지방의 중하위권 대학에게 돌아간다. 그렇지 않아도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하위권 대학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연세대 언더우드관. 위키미디어 제공

● 전공 쏠림은 필연적인 성장통

대학에서 철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2011년 80개에서 2021년 60개로 정확하게 25%의 철학과가 사라졌다. 철학과 전임교수의 수도 같은 기간 348명에서 269명으로 대략 같은 비율로 감소했다. 입학정원의 감소는 더욱 심각했다. 1490명에서 892명으로 거의 40%나 줄었다.

일부 철학과는 생존을 위해 ‘철학상담학과’나 ‘철학윤리학과’로 간판을 바꿔 달기도 했다. 졸업생의 취업률을 높여보겠다는 몸부림이지만 실효성이 있는 시도였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런 시도가 ‘인문학으로서의 전통적인 철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공허하게 들리는 상황이다.

기초학문의 퇴출을 뜻하는 고장도 구조조정은 철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기초학문의 진짜 핵심이라고 할 국어국문학과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문예창작·디지털문학·한국어문학 등의 이색적인 간판을 내거는 등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공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리학·화학·지질학·해양학 등의 핵심 기초과학 전공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기초학문의 퇴출이 대학의 정체성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을 통해 미래의 인재를 도야(陶冶)하는 곳이 아니다. 당장 산업현장에 필요한 정체불명의 ‘융합’ 인재를 빠르게 양성하는 ‘직업훈련소’로 변질되고 있다. 정부가 교육개혁을 핑계로 밀어붙이고 있는 ‘첨단분야 인재양성’ 요구가 그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교육부가 심각한 문제라고 법석을 떨고 있는 ‘의대 쏠림’이나 ‘문과 침공’은 사실 필연적인 것이다. 고등학생의 60%가 ‘이과’(자연계)를 선택하고 있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IMF 이후 심각했던 ‘이공계 기피’가 언젠가부터 말끔하게 해소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공계를 선택한 학생들이 몽땅 ‘의대’로 몰려가는 현실은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다.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나 정부가 나서서 법석을 떤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작 ‘박사후 연구원’을 제도화하고, 의대의 입학정원을 대폭 늘이는 정도의 어설픈 대책으로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것이다. 오히려 20여 년 전에 시작된 이공계 기피가 슬그머니 해소된 경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전공 쏠림은 사회가 성숙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성장통(成長痛)일 수도 있다.

글로컬 대학위원회 1차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주호 부총리. 연합뉴스 제공

● 대학 해체를 부추기는 '글로컬'

대학 혁신의 성공사례를 창출·확산시켜서 전체 대학의 혁신과 성장을 견인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글로컬대학30’ 사업의 목표다. 국민의 소득을 증대시켜주면 경제가 저절로 살아난다는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꼭 빼닮은 발상이다. 

그동안 교육부의 철저한 통제에 도토리 키재기 식 성장에 길들어버린 대학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비현실적인 주문이다.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수정하는 교육개혁을 최소한의 의견수렴도 없이 장관 취임 6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30년 전 대학설립준칙주의 시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서울·인천·경기를 제외한 지방대가 지난달에 마감한 ‘글로컬대학’ 신청으로 몸살을 앓았다. 4년제 대학의 97%가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지원했다고 한다. 15년 동안의 등록금 동결과 신입생 충원의 어려움으로 돈에 목말랐던 지방대의 입장에서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해주겠다는 교육부의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교육부가 6조원에 이르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히지도 않았다. 거대 야당이 교육부의 일방적인 선택과 집중을 수용해줄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5쪽으로 제한된 신청서에 담긴 혁신의 유형은 다양한 모양이다. ‘대학간 통합’과 ‘유사학과 통합’은 평범한 아이디어다. 황당한 혁신 유형도 알려지고 있다. 학생이 원하면 학제(4년제·2년제)도 선택하고, 오프라인·사이버 학기도 선택할 수 있는 ‘학사 파괴형’도 있고, 고등학교 졸업생 대신 ‘성인재교육’이나 ‘인생2모작’을 내세운 ‘특성화 추구형’도 있고, ‘정착형 비자’로 중국·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의 학생을 끌어모으겠다는 ‘글로벌 인재 유치형’도 있다고 한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야심친 교육개혁은 기존의 대학은 ‘해체’해버리고, 아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평생교육·외국인 교육기관’을 만들어내겠다는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이 돼버리고 있는 셈이다.

당장은 교육부의 질풍노도와 같은 교육개혁의 광풍(狂風)에서 벗어나 있는 수도권의 대학도 안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첨단분야의 ‘계약학과’가 대학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대학은 모름지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해야 한다’는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를 되새겨볼 때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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