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는 중국, 잡아야 할 인도

2023. 6. 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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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지정학적(geopolitical)’이다.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어떤 세력과 손을 잡는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판이다. 거창하게 국운(國運)까지 들먹일 필요 없다. 지정학적 ‘생활의 발견’은 널렸다. 가파르게 치솟은 기준금리는 당분간 내려갈 조짐이 없어 상위권 자산가를 제외한 부류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당장 국밥 한 그릇을 먹으려 해도 결제카드를 쥔 손에 피가 쏠린다. 글로벌 공급망 혼란 탓에 고물가가 고착화했다는 풀이가 대세다. 완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일부 기업이 인플레이션을 핑계로 제품값을 올려 이익을 내서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순 없다’는 통념이 삶을 흔든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주요 2개국(G2) 간 거대한 충돌 와중에 불거졌다. 러시아는 언제든 첨예화할 진영 간 ‘헤쳐모여(블록화)’의 불씨를 지폈을 뿐이다.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냐, ‘디리스킹(derisking·위험경감)’이냐를 두고 미-중 경쟁의 톤을 조절하는 함수를 풀어야만 생존한다.

글로벌 권력지형은 ‘일극(一極) 체제’에 가까운가. 이는 한국이 어떤 문제든 시쳇말로 ‘닥치고 미국 편’이어야 하는가를 짚어보는 것과 맥락이 같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국제정치전문가 69명에게 최근 이 질문을 던졌다. 63.8%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세계가 굴러가진 않는다는 진단인 셈이다. 수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세계경제에도 큰 흠집을 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일극 체제에 가깝다’는 답변은 24.6%이고, ‘중립’에 표를 던진 비율은 11.6%였다. 강철 같은 한미 동맹은 폄하 불가의 대전제이지만 가치동맹에 세련되고 고도화한 국익 기반의 셈법이 더해져야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합리와 논리를 구축할 수 있다.

폭풍 전야 같다. 한미와 일본이 같은 편이 돼 소외당한 중국이 어떤 카드를 내밀지 알 수 없다. 한국 연예인의 중국 TV 프로그램 출연이 돌발적으로 취소되고 있다. 중국에서 짐을 싸는 한국 기업도 증가세다. 일종의 ‘보복 전조(前兆)’로 보는 건 ‘오버’가 아니다. 지난해 6월 발표된 ‘5월 대중국 무역수지’는 27년9개월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지난해 9월 빼고 올해 4월까지 계속 적자다. ‘중국 특수는 사라졌다’는 분석은 정답에 가깝다. 우리로선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해 그동안 경제성장에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 시장을 중국 기업이 많이 가져갔다. 자동차·스마트폰 등 소비재도 중국민의 자의인 듯, 아닌 듯 중국에서 설 곳이 사라지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아니더라도 ‘중국발 한국행’ 경제이익은 줄어들 흐름이었다.

‘구밀복검(口蜜腹劍)’마냥 실력을 키운 중국에 주요 7개국(G7)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맞서고 있다. 중·러시아까지 포괄·대항하는 공급망을 강화하고, 경제적 강압에 맞서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가치(이념)로 출발한 블록화의 영역이 경제까지 세(勢)를 확장하는 건 애초 불가피했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액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3%(2019년 기준)이고, 중간재 수입에 있어 중국 비중은 20.5%다. 중국 의존도가 높다. 업스트림 비중(생산에서 사용하는 중간재 가운데 중국산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7.65%, 다운스트림 비중(총매출에서 대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다. 단일 교역국 가운데 최고다. 미국·유럽연합(EU)이 공급망을 재편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도체·배터리 제품으로만 좁혀보면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의 중국 의존도가 각각 14.0%, 35.9%로 뛴다.

한국이 G7의 공급망에 동참하면 중국발 무역 제재에 따른 한국의 GDP 감소폭은 0.427~0.641%포인트 축소된다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추산했다. 미국·EU가 중국과 반도체·배터리 교역을 중단하고, 관련 제품의 역내 조달 비중을 늘리게 놔두는 것보다 한국이 공급망에 참여하는 게 낫다면서다.

엄혹한 국제관계의 셈법 속에서 이쪽이 아니면 저쪽에 붙어야 하는 건 숙명일 수 있다. 하지만 G7의 공급망이 한국 경제 안보·이익의 처음과 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우린 미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인플레이션감축법(IRA)’ 입안 과정에서 이를 절절하게 느꼈다. 그런 측면에서 더 폭넓은 외교, 현 정부가 자랑하는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에 맞는 보폭을 보여야 한다.

인도에서 참고할 게 적지 않다. 경제적으로 ‘뜰 것이다, 뜰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은 이 나라는 적어도 국제정치판에선 미국도, EU도, 중국도, 러시아도 마음대로 못하는 거물이다. 신냉전구도가 기정사실화한 국면에서도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올해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을 맡아, 오는 9월 자국에서 정상회의를 여는 인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데에 동참하지 않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되레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를 외친다. 2009년부터 2년간 인도 외무장관을 지낸 니루파마 라오 전 주미 인도대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권 침해는 잘못이지만 서방은 베트남·이라크 등에서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고 비민주적 개입을 한 과거가 있기에 인도는 러시아 고립 요구에 관심이 없다.”

이런 배포와 중립적 입장은 인도 초대총리인 자와할랄 네루가 뿌리내리게 했다. 이른바 ‘비동맹외교’다. 그는 인도는 ‘친(親)러시아가 아니고 친미도 아니며, 친인도’라는 말로 총리 재임 17년간 비동맹외교를 다듬었다. 글로벌 긴장이 최고조에 달할 때라도 거의 모든 나라와 잘 지내고, 대화를 중재하며 증진시킬 잠재력이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인도를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 측면에서 경쟁 우위에 선 국가로 분류했다. 대규모 노동력과 소비시장, 첨단 의약과 디지털 연결성에 주목하면서다. 국민의 중위연령(총인구를 나이순으로 나열할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이 28세로 젊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인 만큼 개발도상국, 특히 요즘 주목받는 글로벌사우스(남반구에 있는 신흥국)의 리더로서 입지가 탄탄해지고 있다. 인도는 미국의 바람대로 행동하지 않지만 굳건한 대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에 최대 수출 대상국이고, 최대 교역파트너여서다.

한국으로선 인도처럼 대국적 외교를 할 순 없더라도 향후 중국에서 줄어들 경제적 이익을 인도에서 메울 방도를 찾아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주요 수출국 순위에서 인도는 8위(188억7000만달러·2.76%)를 차지했다. 비율로만 보면 2020년(2.33%), 2021년(2.42%)보다 늘었지만 순위는 한 단계 내려갔다. 중국의 비중이 25%대인 점을 고려하면 미미하다. 하지만 역으로 인도가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발효한 2010년 이후 두 나라 교역액은 지난해 약 278억달러를 달성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인도는 한국산 물품에 대한 원산지 관리 강화에 나서면서 관세를 물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선 불확실성 탓에 장사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멀어지는 중국에 대비한 돌파구를 인도에서 뚫어야 한다면 시발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인도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업에 합당한 관세 부과 기준이 적용되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의 방점은 방위산업, 디지털, 바이오헬스, 우주 등에서 인도와 협력을 발전시키는 데에 찍힌 것으로 읽힌다. 그래도 관세 문제를 거론한 점 자체를 평가한다.

올해는 인도와 수교한 지 50년이 되는 해인 만큼 두 나라 간 ‘특별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깊이를 더하려면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 여론도 우리가 막힌 곳을 뚫는 데에 불리하지 않다. 인도의 제조업 경쟁력을 배가시키려는 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꿈틀대고 있다. 국내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관세장벽을 높이면 결국 인도 상품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인도 대표 기업 몇몇을 육성하는 방향도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죽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진단이 있다.

경제력 집중을 통한 압축 성장의 경험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맞닥뜨렸던 한국으로선 인도와 더 진솔한 소통을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모디 총리와 접촉면을 더 넓혀야 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해빙을 거론하자 한국도 한중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식의 한 박자 늦는 듯한 대응을 할 일이 아니다. 인도엔 더 기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빠르게 변화하는 지정학의 역학에 경제와 기업인이 대비할 수 있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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