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하지 않은 세상` 꿈꾸던 초고가 주거상품 결국…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이미연 2023. 6. 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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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다른 차별화' 노리다 '불평등 조장 논란'만 남겨
논란이 됐던 '더 팰리스 73' 광고 문구. 현재는 링크가 막힌 상태. 출처 해당 홈페이지
더팰리스73 투시도. 출처 홈페이지
'더 팰리스 73'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현재 이 페이지만 볼 수 있는 상태

"천박하다 못해 이런 미개한 문구가 당당하게 나오는 사회라니. 이걸 기획 컨펌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이상함을 못 느꼈다는 게 정말 심각하다."

"민주주의 기본인 '평등' 개념을 부정하는 광고를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낼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인가."

안녕하세요 금융부동산부 이미연입니다. 이슈 선점이 늦은 김에 아예 흘려보낼까 싶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듯 해서 결국 잡았습니다.

이미 어지간히 관련 기사들을 보셨을 듯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 못보신 분을 위해 간단 요약하겠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설 한 주상복합 아파트 광고 문구가 갑자기 사회 논란의 한가운데로 소환된 건인데요. 광고 문구는 간결했습니다만, 그 간결함에 묻은 인식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에 무거운 파편을 던졌습니다. 차원이 다른 '차별화'를 노렸는데 '대놓고 불평등 조장'이라는 우려만 남겼는데요.

주인공은 분양가가 120억원대부터 높게는 400억원대로 분양되는 초고가 아파트·오피스텔 주거복합단지인 '더팰리스 73'입니다. 이 현장의 시행사인 더랜드는 3년 전 '쉐라톤 팔래스 강남'을 사들였고 그 자리에 최고급 주거 단지를 짓기로 한거죠.

그간 국내 최고급 단지에 적용하던 대명사(?)가 '하이엔드'였는데, 이 현장은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하겠다며 '하이퍼 엔드'라는 개념도 들고 나왔습니다.

시행사 측은 '완벽한 최상위 주거 공간 구현'을 위해 개념 구상부터 설계까지 2년여의 시간을 쏟아붓고, 리차드 마이어의 설계 사무소인 마이어 파트너스와 매주 2~3차례 화상회의를 진행하는 노력도 부었다고 합니다.

분양 과정 역시 범상치 않았습니다.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 '리얼 하이퍼 엔드'를 구현해놨다는 홍보관은 '프라이빗 갤러리'로 명명되어 검증된 고객에 한해서 방문 예약만 받았다고 하는데요. '진짜 자산가' 자격을 갖춰야 홍보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는데도 예약이 꾸준했다고 합니다.

이런 영향 덕분이었을까요.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문제의 카피가 나왔습니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네? (저 국문과는 아니지만 우선 문장 구조가 좀;;;;)

이 문장 혹시 2023년 대한민국이 '평등하지 못한 사회'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걸까요? 아님 정말 표현 그대로가 의도한 것이라 이해해야할까요.

이 문구가 논란이 되자 시행사는 일단 홈페이지에 해당 문구만 삭제했는데, 현재는 아예 사과문만 덜렁 올려놓고 다른 페이지는 모두 막아놨습니다.

막히기 전 홈페이지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주택 건축에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가 가득했습니다. 현장 주소는 아예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고, 지도 역시 주요 위치가 전부 영문으로 적혀있습니다.

광고 문구로는 "40년 역사의 강남 첫 특급호텔이었던 쉐라톤 서울 팰리스 강남 호텔 자리에 73개의 팰리스가 탄생한다"며 "도시 위에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상징물이 되다"라는 건축물과는 거리가 있는 듯한 모호한 표현도 적혀있었습니다.

"최상위 주거공간으로서 본질이나 계보를 새롭게 제시하게 될, 세기에 다시 없을 주거 명작이 될 것", "부와 명예의 상징적 호텔로 명성 높았던 그곳의 이름을 넘어설 더 팰리스 73, 리차드 마이어의 인생 역작으로 완성될 이 시대 진정한 마스터피스를 기대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겨 있었네요.

홈페이지 운영 목적 자체가 현장을 고급스럽게 포장해 자산가들에게 알려야하는 것이니 이 정도 미화는 뭐 그냥 넘어가겠지만, '평등' 개념을 완전히 곡해한 표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비판 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총체적 난국'을 단 한문장으로, 엄청 기가 막히게 표현했구나", "저(카피를)걸 뽑아내고 승인하고 채택한 이들 모두 정상은 아닐 듯 하다", "대놓고 계급(?)을 나누는거냐"라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반대로 "광고라면 이 정도 어그로(관심)는 끌어야한다. 성공한 카피", "뭐가 문제냐. 맞는 말 아니냐"라는 의견도 간간히 보이긴 합니다.

실제 서울은 물론 부산 등에서도 초고가 주거상품이 분양 중이지만, 이 현장만큼 세간의 관심을 단기간에 흡입한 곳은 아직 없어보이긴 합니다. 아 만약 '노이즈마케팅'을 유도한 거라면 '완전 대성공'이라고 봐야할까요.

일각에서는 '블랙코메디'가 아니냐는 일갈도 나옵니다. 초고가 주거 상품의 홍보 목적이 아니라면, 저 문장은 기가 막히게 한국 사회의 허영심을 꼬집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현재 이 단지가 들어설 현장은 이미 호텔이 철거된 상태입니다. 2027년 하반기에 완공된다는데, 향후 사람들이 이 단지를 볼때마다 설계부터 엄청난 공을 들인 주거 상품이 아니라 한때 '평등'의 개념을 잘못 사용한 광고 문구로만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공개된 간결한 사과문을 기억에 남겨볼까요.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중하지 않은 표현으로 많은 분들께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했다"며 "앞으로 더욱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다짐이 담겨있네요. 그럼 이번 시간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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