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골둠바 세계초등] 수직빙벽 올랐더니 '이 능선이 아니었네…'

손호성 2023. 6. 7.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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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맹 골둠피크 원정대]
팡그리 골둠바(6,620m) 세계 초등기
골둠피크(6,620m)를 등정하고 하산하는 길에 본 정상부와 북벽.

2021년 연말이었다.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박정용 형이었다. 2023년 3월쯤 부산에서 꾸리는 원정등반의 대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웬 원정대? 히말라야 원정 등반은 나와는 거리가 멀고 아무 상관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선배이자 평소 등반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던 형의 명령과 같은 문자였기에, 고민하지 않고 지원서를 보냈고 체력평가에 참여했다.

체력평가 당일, 지원자가 많았다. 대부분 부산시산악연맹 소속의 산악회원들이거나 구조대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이었다. 50대 이상이 많았다. 고산에서 알파인 등반은 체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체력평가에 참여한 선배 대부분 '노장' 느낌이었다. 체력평가는 팔굽혀펴기, 턱걸이, 윗몸 일으키기 같은 기초체력과 등반 능력을 볼 수 있는 매듭법, 이중화 신고 툴링, 스포츠 클라이밍, 5km 산악지대 달리기였다. 나는 체력에 자신 있었지만 하루 만에 모든 종목의 평가를 보는 건 힘들었다. 그럼에도 우수한 기록으로 체력평가에 통과한 '노장' 선배가 많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고산 트레킹과 알프스 등반을 꾸준히 해온 선배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히말라야 등반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처음 만나 어떻게 등반을 이어나갈지 기대와 걱정 속에 한 팀을 이루어 52일간 등반하게 됐다. 골둠피크 원정대는 6명으로 꾸려졌다. 복진영 원정대장과 박정용 등반대장 외에는 히말라야 등반 경험이 없었다. 우리는 여러 달 동안 부채바위, 밀양 얼음골, 설악산 등 다양한 산악지역을 오가며 극한의 훈련으로 팀워크를 다졌다.

베이스캠프에 모인 대원들. 왼쪽부터 김대일, 박소정, 복진영, 정지훈, 손호성, 박정용.

드디어 2023년 3월 5일 김해공항을 출발해 6일 저녁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했다. 이틀간 현지에서 필요한 장비와 물품들을 구입하고 9일 샤브르베시로 이동, 베이스캠프까지 7일간 도보 캐러밴을 시작했다. 고산 경험이 없는 나는 큰 걱정을 안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샤브르베시(1,600m)를 시작으로 라마(2,460m), 문두(3,400m)를 지나 이틀을 걸어 강진곰파(3,870m)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고소적응을 위해 강진리(4,900m) 봉우리 트레킹에 나섰다.

고소 치료 위해 사흘간 마을 왕복

팡그리 골둠바(6,620m)는 네팔 카트만두의 북동쪽 랑탕 히말라야 지역으로 중국 티베트 국경의 경계선에 있다. 시샤팡마 남벽을 마주하고 있다. 티베트 국경지대 경계선까지 어프로치가 상당히 길다. 강진곰파에서 랑탕계곡 깊숙이 들어가는 랑시샤르카(4,100m)를 지나 이틀 동안 걸은 끝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골둠피크는 이때까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33명의 포터들이 짐을 풀고 하산했다. 형들은 40일간 머물 텐트를 서둘러 폈다. 나도 형들이 텐트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했다. 서 있기도 힘들었다. 두통을 참으며 느린 동작으로 텐트 폴대를 만지작거리다가 도저히 힘을 쓸 수 없어 미리 완성된 본부 텐트로 도망가 그대로 누워버렸다. 잠시 휴식을 하고 나가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몇 시간 흘렀을까? 텐트에서 나와 보니 개인텐트와 공용텐트부터 시작해 짐정리가 끝나 있었다. 박소정 대원도 고소증상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 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텐트와 장비정리를 시작했다. 키친보이가 가져다 주는 따또바니와 고소에 좋다는 갈릭수프를 마시며 베이스캠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최종 캠프인 C3에서 정상 공격에 나섰다. 눈이 많아 체력 소모가 컸지만 뚫고 올랐다.

다음날이 되어도 머리카락이 뽑힐 것 같은 두통은 멈추지 않았다. 얼굴도 퉁퉁 부어 올랐다. 전형적인 고소 증상이라고 형들이 말했다. 고소증상이 멈추지 않으면 강진곰파로 하산했다가 휴식 후 다시 올라오라고 대장이 말했다. 거기까진 왕복 사흘거리, 꾹 참고 베이스캠프에 머물렀다.

박소정 대원은 호전될 기미가 없었다. 베이스캠프 도착 3일이 지나서야 대장이 결단을 내렸다.

"손호성, 박소정 대원은 강진곰파로 하산!"

나와 박소정 대원은 강진곰파로 하산하고 형들은 표식기와 함께 ABC캠프를 설치할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로지에서의 편안함은 고소증상을 빠르게 완화시켰다. 안락함 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형들이 정상 등정을 한 번에 성공하지 않을까?' '이렇게 나의 첫 히말라야 등반이 허무하게 끝나는 건 아닐까?'

캠프1에서 ABC로 하강하고 있다. 미등봉답게 난공불락이었다. 박격포처럼 떨어지는 눈보라와 낙석, 체력 소모로 인해 캠프 사이를 숱하게 오가야 했다.

결국 3일 휴식 후 다시 베이스캠프로 올라갔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텐트는 모두 텅 비어 있었다. 텐트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을 때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 형의 목소리와 함께 뒤를 이어 정용이 형이 나타났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시커멓게 탔고 신고 있던 등산화는 실밥이 터져 너덜너덜했다. 스틱은 S자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 한참 지나서야 대일이 형도 복귀했다. 그 역시 같은 꼴이었다.

스틱이 왜 S자로 휘어졌을까?

카트만두를 떠나 베이스캠프에 안착한 지 2주가 지났다. 3월 중순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동계라 그런지 오후 1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보라가 몰아쳤고 베이스캠프는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였다. 형들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씨는 처음이라며 동계시즌 등반은 험난하다고 말했다.

'나는 왜 하필 이런 시즌에 맞춰 첫 히말라야 등반을 온 걸까?'

첫 판에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고소에 적응한 나는 형들과 함께 등반에 나서기로 했다. 고소 증상이 조금 남아 있는 박소정 대원은 베이스캠프에 남아 등반팀과 통신하며 비상시를 대비하기로 했다.

캠프2에서의 야영. 블랙다이아몬드 3인용 텐트에 4명의 장정이 포개어 잤고, 다음날 정상에 올랐다.

베이스캠프에서 출발, 계곡 골짜기로 내려와 몸통만 한 바위가 깔린 너덜지대를 걸어 ABC1으로 향했다. 박격포 포격처럼 떨어지는 낙석을 피해 걸었다. 낙석도 문제였지만 흔들리고 무너지는 바윗길에서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바위 사이에 수차례 발이 빠져 몇 바퀴 구르자 ABC1에 도착했다. 형들의 스틱이 왜 S자로 휘어져 있었는지 깨달았다.

ABC1에서 휴식 후 다음날 ABC2로 이동했다. 작은 너덜지대로 이뤄진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반복했다. 5,000m 높이까지 올라가니 숨이 찼다. 체력적으로 엄청난 부담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좀비처럼 걸었다. 오후가 지나자 골둠피크 남벽이 보였다.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지 이틀이 되어서야 피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저게 골둠피크인가?'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또 걸었다.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하는 걸까? 진이 빠질 때쯤 저 멀리 ABC2 텐트가 보였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얼마나 더 걸어야 벽 앞에 다다를 수 있을까?

2피치를 등반 중인 정지훈 대원. 청빙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시샤팡마다.

ABC2에서 하루 휴식하고 다음날 새벽 6시 기상, 간단하게 수프 한 그릇 먹고 다시 이동했다. 삼중화로 갈아 신었다. 2시간쯤 걷자 빙하지대가 나왔다. 다리가 무릎까지 빠졌다. 체력이 두 배 이상 들었다. 더 고통스러웠다. 대일이 형이 평소 트레일러닝으로 다져진 강철 체력을 과시하며 불도저처럼 전진했다. 청빙 구간과 설벽 구간이 나왔다. 정용 형이 먼저 나갔다. 우리는 고개를 눈 속에 처박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벽 끝부분까지 도달했다. 40m가량 남은 것 같았다. 설벽이 이어지다가 중간에 얇은 얼음 구간이 나타났다. 이어서 바위구간이 나왔다. 벽은 수직에 가까웠다.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정용 형은 마지막 턱을 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까지 등반을 마치자 오후 4시쯤 됐다. 모두 더 이상 전진할 힘이 없어 블랙다이아몬드 텐트 2~3인용 2동을 쳤다. 하루 휴식 후 다음날 등반하기로 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식량과 가스를 챙겨 벽으로 이동했다. 설벽 하나를 넘어서니 골둠피크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보였는데, 설빙벽을 올라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왼쪽으로 이동했다. 걷다 보니 어느덧 5,600m 높이의 벽 아래 도착했다. 설사면을 깎아 텐트 칠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체력이 방전되어 있었다. 피켈을 이용해 눈을 쓸어 내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정용이 형이 나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지만 듣고도 대꾸하지 않고 오로지 피켈로 눈만 쓸어 내렸다. 옆에서 지훈이 형이 나의 행동을 보고 그저 웃기만 했다. 30분가량 눈을 파내고 텐트 칠 자리를 확보했다. 텐트를 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3인용 텐트에 모여 다음날 등반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상에 선 원정대. 왼쪽부터 손호성, 정지훈, 박정용 대원. 김대일 대원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정상 아래 6피치에 머물렀다.

아뿔싸! 이 능선이 아냐!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선등으로 대일이 형이 출발하고 그 뒤로 정용이 형, 다음이 나, 마지막으로 지훈이 형 순서로 오르기로 했다. 벽의 중간쯤 올랐을까? 얼음 구간이 나왔다. 대일이 형은 설벽 구간이 이어진다고 생각한 듯 한 손엔 피켈, 한 손엔 스틱을 들고 등반했다. 그러다가 수직의 얼음 구간에서 뭔가 잘못된 것을 감지했는지 대일 형의 몸짓이 다급해졌다. 그는 피켈을 찍고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추락했다. 정용 형은 추락하는 대일이 형의 자일을 잡기 위해 피켈로 벽을 타격했다. 대일이 형은 10m쯤 추락하다가 눈 사면에 부딪친 다음 통통 튀기며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렇게 20m 더 추락하다가 안자일렌으로 확보를 보던 정용이 형의 피켈에 체중이 실리면서 멈췄다. 대일이 형은 괜찮다고 소리쳤다. 대일이 형은 설사면을 올라 내가 있는 곳까지 왔다. 추락의 충격 때문인지 형은 몸을 엄청 떨었다. 형은 하강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스크루를 설치해 하강 준비를 도왔다. 위를 쳐다 보니 정용이 형이 검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계속 등반하자는 뜻이었다. 우리는 수직의 빙벽구간을 한참 동안 올라 6,100m 능선에 올라섰다. 먼저 올라간 정용이 형은 웃기만 했다. 나는 '저 형 왜 저러지?'하면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정상면을 쳐다봤다. 아뿔싸! 정상으로 가는 능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뒤이어 올라온 지훈이 형과 우리 둘은 얼굴만 보면서 웃었다.

정상 설원 등반 중. 모두 눈앞의 벽만 쳐다보면서 오르고 있다. 400m 정도 오른 끝에 대원 셋은 정상에 섰다.

이렇게 골둠피크 원정은 실패로 끝나는 걸까? 허탈했다. 가지고 있는 식량과 가스가 많지 않아 베이스캠프로 철수해야 했다. 거기서 다시 여기까지 올라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형들은 오른쪽 세락 아래 빙벽구간까지 등반한 다음 트래버스해 반대편 사면으로 넘어 등반해 보자고 했다. 원정이 끝날 때까지 보름 정도 남았으니 더 시도하자고 했다. 우리는 하강 후 C2에 설치한 텐트를 걷은 다음 남은 체력을 쥐어 짜내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모두 ABC2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콜핑의 4인용 텐트가 고급 호텔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이동했다. 이틀 동안 올라왔던 길을 하루 만에 내달려 늦은 저녁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몸을 추스르고 본부 텐트에 모여 남은 기간 계획을 짰다. 히말라야 경험이 많은 정용이 형은 일주일 정도 쉬자고 했다. 그러자 지훈이 형이 일주일 휴식이라면 다음날 아침 일찍 강진곰파로 내려가 로지에서 편하게 쉬자고 했다. 반대의견이 없었다. 다음날 우리는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했다. 강진곰파로 내려오니 3일 동안 눈이 내렸다. 우리는 세락 아래 빙벽구간을 등반해서 올라가자고 결의를 다졌다.

힘겨운 재도전

6일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올라갔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 고통을 다시 참아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땅만 쳐다보며 오르니 어느덧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휴식할 틈 없이 곧바로 2차 등반 준비에 들어갔다. 마지막 설벽 구간을 지나 빙벽구간을 하루 종일 등반해야 했기에 바일과 피켈의 날도 날카롭게 갈았다. 손목걸이도 새로 만들었다. 빙벽등반에 맞는 장비들로 재정비했다.

1차 때와 동일하게 ABC1, 2를 거쳐 C1으로 이동했다. 처음 우리가 올랐던 빙하지대가 모두 무너져 있었다. 우리는 하강했던 왼쪽 벽면을 따라 설사면을 올라갔고 1차 등반 때와 달리 거리가 줄어들어 수월하게 올라갔다. 마지막 턱을 넘어서고 대포해 놓았던 3인용 텐트를 폈다. 이번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도 날씨가 좋았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다음날 새벽부터 이동하지 않고 해가 뜨는 8시쯤 출발했다. 이번엔 북벽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도착하니 오후 1시. 설사면을 깎아 2~3인용 텐트를 설치하고 북벽을 한번 쳐다봤다. 빙벽구간이 수직으로 끝없이 펼쳐졌으며 중간 중간 돌출되어 있는 거대한 빙벽으로 인해 아래쪽은 거대한 동굴 형태의 모양이었다. 정용이 형이 등반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해 지기 전 미리 한 피치 등반 후 로프를 설치하고 오겠다면서 대일이 형과 설사면을 올라 빙벽구간으로 올라갔다. 형들은 오후 5시쯤 되어서야 70m 로프를 설치하고 텐트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70m로프 3동을 가지고 나섰다. 선등은 정용이 형과 지훈이 형이 번갈아 가며 서기로 했다. 1피치는 청빙으로 얼음이 단단했다. 높이 30m쯤 돌출된 얼음구간이 있어 오버행 턱을 넘는 부분에서 힘이 많이 들었다. 설악산 토왕성폭포를 오르는 느낌이었다. 2피치, 돌출된 오버행 구간을 왼쪽으로 피해 등반했다. 왼쪽 사선 방향으로 올라갔는데 등반 중인 형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았다. 3피치 얼음은 물러서 피켈이 잘 박혔다. 힘든 와중에 손맛을 느꼈다. 어느덧 천장 오버행으로 이뤄진 거대한 세락으로 다가섰다. 우리는 4피치 시작 부근, 빙벽 안의 동굴에서 나와 턱을 넘어 직상했다.

5피치 시작점에 올라가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형들도 지쳐 있었다. 정용이 형이 왼쪽 사면으로 넘어간 사이 지훈, 대일이 형 나는 5피치 시작점에 모였다. 지친 형들을 대신해 내가 두 번째로 등반에 나섰다. 왼쪽 사면으로 올라가니 정용이 형이 보였다. 5피치 끝에 도착하자 정용이 형이 곧바로 등반을 시작했다. 형은 6피치를 올랐다. 정상 아래 보였던 거대한 세락구간을 무사히 넘었다. 뒤를 이어 대일이 형과 지훈이 형이 올라왔다.

정상 아래 설원 구간으로 이어 등반하려고 하는데 대일이 형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형은 숨을 헐떡였다. 이대로 어려울 것 같아 칼날 같은 사면을 피켈로 긁어 내어 텐트 칠 자리를 확보했다. 동시에 상단 빙벽 부위에 스크루를 설치하고 로프를 연결, 텐트 주위에 둘러 텐트가 떨어지지 않게 붙들었다.

블랙다이아몬드 3인용 텐트에서 바람을 피해 하루 버티기로 했다. 텐트 안에 4명의 장정이 들어가 있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등반 장비와 뒤섞여 몸을 구긴 채로 잠을 잤다. 그나마 휴식을 취한 덕분일까? 대일이 형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용이 형은 대일이 형에게 여기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일이 형은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우리 셋은 세락구간을 넘었다.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400m 정도 설상 구간을 안자일렌으로 등반했다. 바닥만 쳐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등반이 드디어 끝났다.

info

원정대 명칭은 골둠피크이지만 팀이 등정한 봉우리 이름은 팡그리 골둠바Pangri Goldumba인 것으로 확인된다. 익스플로러스웹exploersweb.com에 따르면 이 봉우리를 등정한 기록은 한국팀 외에는 없다. 다만 봉우리 이름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지리정보시스템 IT업체 캠프 투 캠프camptocamp.org에서 제공하는 지도에 '골둠'이라고 표기된 봉우리가 따로 또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골둠피크 원정대는 해당 봉우리 북벽을 올라 세계 초등했다.

루트명

부산 엑스포BUSAN EXPO

ABC2 이후의 고도차

1,600m

NCCS(루트를 오르는 시간에 따른 그레이드)

6(2일 이상의 힘든 등반)

Alpine System(루트 전체 난이도)

TD(Très Difficile, 매우 어려움)

Mixed Grade(혼합등반 난이도)

M5(일부 수직구간이 지속됨)

*표기된 난이도는 박정용 대원에 따른 것이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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