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 “북침설 검토 가치도 없어…누가 시작했느냐는 질문 멈춰야” [김용출의 한권의책]
한국전쟁에 관한 최고의 연구서로 평가되면서도 왜 이렇게 국내엔 번역이 늦어졌을까. 출판사는 이에 대해 “내재적 동학과 전쟁으로의 발전 과정에 대한 탐구보다는 ‘범인을 찾는 식’으로 전쟁 발발의 책임소재를 밝히기에 집착해”온데다가, 소련의 기밀문서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커밍스 저작의 오류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대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실제 커밍스가 제2권을 완성한 뒤 소련의 기밀해제된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저작이 문서 내용을 미리 통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문서들이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데 소련과 스탈린이 강력하게 개입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커밍스는 이에 대해 “내가 북한의 독립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잘못이었다. 북한이 스탈린의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 스탈린은 너무나 엄청난 인물이었다”고 자신의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소련이 이 전쟁에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는 내 주장은 옳았다”며 자신의 주장도 맞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커밍스는 그러면서 미군정이 박정희와 김석원, 김창룡 등 일제에 협력한 친일 군인이나 경찰을 다시 고용하기로 한 결정이 가장 압도적이고 우선적으로 중요했고, 1945년 해방 직후 결성된 인민위원회 역시 매우 중요했지만 거의 무시돼 왔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 모자이크는 검토할 가치가 거의 없다. 남한이 38도선 전역에서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북한은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았다”(2-2권, 339쪽)
다만, 그는 한국전쟁 발발 전부터 중소규모의 유격전과 국지전으로 1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을 주목해 남침유도 가능성에 흥미를 가졌고,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책임론 역시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 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고, 특히 한국인들은 이런 질문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가 한국전쟁을 시작했는가?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우리는 적절한 세 가지 모자이크를 볼 수 있었을 뿐이며, 그 가운데 둘은 복잡하고 상충되는 증거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증명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2-2권, 341쪽)
책은 이어서 전쟁 발발 직후 미군을 비롯해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국제전으로 비화하는 과정 역시 면밀하게 추적한다. 딘 에치슨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을 자국의 안보 강화와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서 미군과 유엔군을 신속히 참전시키면서도 제한전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은 이후 유엔군과 국군이 북진했다가 중국군까지 개입함으로써 전면적 국제전으로 비화했고, 1951년 초부터 38선 부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휴전 논의로 이어졌다. 결국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고 휴전했다.
커밍스는 발발과 전개 과정, 휴전까지 전쟁의 전 과정에 걸쳐서 미국의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분단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1945년 이후 이 유서 깊은 나라를 경솔하고 분별없이 분단시킨 미국의 고위 지도자들이 촉발한 분열에 나 자신을 개입시키지 않으려 늘 노력했다는 사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다...한국을 분단시킨 내 조국이었기 때문에 나는 늘 책임감을 느꼈다. 내 개인적 견해가 어떻든 남한이나 북한 가운데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없다는 뜻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면밀한 역사적 탐구가 두 한국이 누려야 할 화해로 가는 최선의 처방이자 방법이라 믿고 있고 늘 그렇게 생각했다.”(1권, 18쪽)
커밍스의 책은 한국전쟁 자체보다는 한국전쟁을 둘러싼 국제적인 구조와 동학, 한국 사회 내부의 구조와 갈등에 집중함으로써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기원, 한국전쟁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아울러, 세계적 차원의 냉전 체제의 형성과 한반도 정책간의 관계나, ‘국가안보회의 문서 68’를 중심으로 미국 안보체제 형성과 한국전쟁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남한에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것과 일본이 동아시아의 경제적 거점으로 다시 복원하는 역코스 정책과 연결시키는 등 전후 동아시아 질서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개인적으론 해방 이후 한국전쟁 때까지 한국 사회가 겪은 격동적 변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촘촘하게 그린 ‘시대의 세밀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각종 이슈와 논란에 지레 겁을 먹고 원전에 다가가지 못한 ‘지적 나약함’이나 ‘기만의 순결주의’을 다시 반성하게 만들지도. 원제는 Origins Of The Korean War.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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