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각각의 계절』 권여선 “한 생을 살아내려면 각각의 시절에 맞는 각각의 힘이 필요”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3. 6. 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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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큰 벌레가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는 거예요?” 오래 전 어느 날,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 입주해 있던 한 레지던시 작가는 큰 벌레를 발견한 뒤 문화관을 관리하는 간사에게 물었다. 문화관 간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벌레는 어디로든 들어와요.”

어디로 들어와, 라는 물음에 대답이 무려 어디로든 들어와, 라니. 레지던시 작가와 문화관 간사의 문답이 재미있어서, 그는 당시 상황과 문답을 노트에 기록해뒀다. 가끔 이런저런 응용 문답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자꾸 하다 보니 무서워지기도 했고, 슬퍼지기도 했다.
지난해 소설가 권여선은 젊은 시절 새끼 오리들처럼 함께 어울려 지내다가 엇갈린 행로를 걷게 되는 네 친구를 그린 소설을 준비하다가 문뜩 그때의 문답 장면을 떠올렸다.

“네 명의 친구들의 여행에 그 문답을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물들의 상황이 변하면서 그 문답도 묘하게 뉘앙스가 변하는 걸 느꼈지요. 집필 과정은 언제나 어렵지만, 이 소설에서는 네 친구들의 삶이 조금씩 훼손되고 관계가 변질되는 과정을 쓰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해 말 잡지 『에픽』에 네 친구의 엇갈린 관계와 기억의 문제를 예리하게 그린 단편 「사슴벌레식 문답」을 발표했다. 리더 격인 부영과, 규칙적이고 예의바른 경애, 상냥하고 조심성 많은 정원, 술을 좋아하고 즉흥적인 준희 네 사람은 대학 시절 초기 같은 하숙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친밀하게 지낸다. 생활하는 곳이 달라진 뒤에도 한동안 접촉을 이어가던 이들은 정원의 갑작스런 자살과 경애의 배반으로 엉클어진다. 준희는 지난 세월을 절박하게 돌이켜보다가 삼십 년 전 넷이 함께한 여행에서 경험한 사슴벌레식 문답의 의미와 뉘앙스가 점차 바뀌어가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29쪽) 방어나 강요, 차단의 뉘앙스는 다시 두려움으로 바뀌어간다. “그것은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어디로든 들어는 왔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래서 빠져나갈 길도 없다는 막막한 절망의 표현인지도.”(37쪽)

권여선 작가가 간절히 직시함으로써 스스로 과녁이 되는 자리로 옮겨가게 되는 「사슴벌레식 문답」을 비롯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한 단편 7편을 엮은 소설집 『각각의 계절』(문학동네)을 들고 돌아왔다. 『아직 멀었다는 말』 이후 3년 만의 작품집이자, 그의 일곱 번째 소설집.
『각각의 계절』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 관계와 기억 문제로 고민한다. 「사슴벌레식 문답」의 준희는 대학 시절 늘 붙어 다니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무참히 깨진 뒤 불면증에 시달리고, 베르타는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서 죽은 마리아와 일화를 기억해내고 자신도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반희 역시 「실버들 천만사」에서 딸 채운을 생각하다가 밤새 뒤척이고, 「기억의 왈츠」의 ‘나’도 삼십여 년 전 기억과 마주하며 자신의 실수를 바라봐야 한다.

소설가 권여선이 관계와 감정과 기억이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본 한 시절과 인물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의 작가적 여정은 어디로 향해 갈까. 권 작가를 최근 이메일로 만났다.

―「사슴벌레식 문답」 속의 법사나 포럼, 배신 등은 부조리한 현재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힐 수도 있어 보입니다. 독자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요.

“정확히 지적해주신 대로, 부조리한 현재에 대한 알레고리로 쓴 면이 있고, 또 시간이 주는 무서운 혼탁과 두려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2020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실버들 천만사」는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반희가 어느 날 딸 채운의 전화를 받고 함께 여행을 가게 되는 이야기다. 반희는 딸과 여행을 하면서 인연의 밧줄을 꼬기로 결심하는데.

“반희는 담배를 끄고 두 손을 맞잡았다. 바람이 휙 지나가면서 진한 흙내와 풀 향이 스쳤다.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모녀 사이의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뇌를 젤리화하고 마음에 전족을 하고 기형의 꿈을 꾸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 밑도 끝도 없이 샘솟았고 반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뛰었다.”(79쪽)
―제목이 이야기의 주제와 언뜻 겹쳐지기도 합니다만, 제목의 의미를 조금 설명해 주시죠.

“김소월의 시라고 생각되는, 연구적 고증에선 확실히 김소월의 시인지 밝혀지지 않은 면이 있다고 합니다만, 「실버들」에서 제목을 가져왔습니다. 실버들 천만사를 늘여놓고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에서처럼, 반희는 딸을 향해 천만 갈래의 마음을 가지고서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지내다가 딸과의 여행을 계기로 그 천만 갈래의 마음을 땋아서 단단히 엮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 결심은 이루어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천만 갈래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고 나부끼는 모습이 떠올라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딸 채운의 ‘미래 완료형’ 인생관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해서 태어나게 된 것인가요.

“채운이 말하는 ‘미래 완료’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고통스러운 상황이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듯이 겪는 채운의 한 증상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저는 제 세대의 여성이 엄마가 되어 딸을 키울 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습니다. 이전 세대의 엄마가 딸을 키울 때처럼 그렇게 반복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마음, 그러나 결국 그 마음 때문에 딸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는 상황에 대해 쓰고자 했습니다.”

2019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어느 성당의 여신도 모임에 일흔두 살의 마리아 부고가 전해지면서 시작된다. 신도들은 각자의 기억으로 추모하면서 마리아를 재구성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마리아를 낮게 보는 은근한 배타성과 위선이 존재한다. 그들의 위선을 느끼던 베르타 역시 마리아의 구취로 편견을 갖게 된 자신을 발견하고 비관한다.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는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쳤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114쪽)

―처음 마리아를 재구성하다가 나중에 추모하는 이들의 위선으로 나아가는 전환은 놀라운 풍경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떤 경험이나 구상을 통해서 태어났나요.

“첫 생각은 파독 간호사에 대한 소설을 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파독 간호사들 중 독일에 영주하지 못하고 부득이 돌아온 경우(강제송환까지 포함해서)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미 노년이 되고 죽음이 임박한 마리아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녀의 삶이 품은 비극성에 대해 쓰게 됐습니다.”

―간단한 궁금함인데, 왜 마리아는 태극기를 팔았을까요.

“젊은 마리아가 조국을 떠날 때 보았던 태극기의 나부낌이 깊이 각인되었을 수도 있고, 조국으로 돌아오면서 독일에 두고 온 아들이 태극기로 환치되어 생각되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마리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태극기라는 이미지에서 어떤 희열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기억의 왈츠」는 ‘나’가 동생 부부와 함께 교외에 있는 숲속 식당에 찾아갔다가 삼십년 전 시절의 기억과 마주하는 설정이다. 대학원 시절 나는 또래의 경서와 만났다가 헤어지게 됐는데, 그때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며 살아가던 잿빛 거미 같은 나를 위로해 주던 경서가⋯.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나는 서두르지도 앞지르지도 않을 것이다⋯다리가 불편한 숙녀에게 춤을 권하듯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 테고 우리는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돌아갈 것이다. 공중에서 거미들이 내려와 왈츠의 리듬에 맞춰 은빛 거미줄을 주렴처럼 드리울 것이다. 어둠이 내리고 잿빛 삼베 거미줄이 내 위에 수의처럼 덮여도 나는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 나를 타인처럼, 관객처럼 만든 게 아니라 비로소 나를 제 자리에 돌려놓았다는 걸 아니까.”(241―242쪽)

―기억에 따라서 관계가 이리저리 바뀌고 부유하다가 새롭게 희망을 변해가는 모습이 마치 춤추는 듯합니다. 왜 기억에 주목하시는지요.

“기억에 사로잡히는 일이 소설가의 주요한 일 같습니다. 예전에는 그게 저주인가 생각했는데, 이제는 기억이 주는 고통까지도 어쩌면 축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억은 우리가 한번 주조한 대로의 패턴으로 존재하지 않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면들을 자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쓰는 일은 과거를 다르게 한 번 더 사는 일과 같게 여겨집니다.”

―이번 일곱 번째 소설집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번 소설집의 ‘계절 힘’은 무엇이었는지요.

“저는 이번 소설집의 주요한 테마를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들을 쓰는 동안 기억하고 반추하는 힘으로 살았습니다.”

권 작가는 책에 ‘작가의 말’을 별도로 적지 않고, 대신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별도 엽서 ‘독자 여러분에게’를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살면서 보니, 어느 시절을 살아내게 해준 힘이 다음 시절을 살아낼 힘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다음 시절을 나려면 그 전에 키웠던 힘을 줄이거나 심지어 없애거나 다른 힘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힘은 딱 그 시절에만 필요했던 것인데, 계속 그 힘으로만 살려고 하다 추해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고 그러는 것이죠. 우리가 한 생을 살아내려면 한 힘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각각의 시절에 맞는 각각의 힘들, 다양한 여러 힘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네가 좀 똘똘하다고 생각했는데⋯ 시를 어쩌면 이렇게 빤하게 들여다보이게 쓰는 거야. 시를 스무 편쯤 쓴 뒤 아는 시인에게 자신이 시를 보여주자, 시인이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쓰고 싶었고, 대학 초년 시절 시를 조금 쓰기도 했다. 하지만 격동의 시대에 시 쓰기를 계속 할 수 없었고 그러다가 나중에야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그였다.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오라는 곳도 없었고, 취직을 엄두내지도 못했다. 되는 일 없이 계속 쫓아만 다니다가 서른이 넘어서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했다. 처음에는 드라마나 영화 작가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일은 혼자보다는 협업이나 소통이 중요했고, 글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으며, 글쓰기 역시 제한이 많았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야는 역시 시나 소설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그였다.

안되겠구나. 이때 그는 생각했다. 소설가는 노력하면 될 수 있지만, 시인은 노력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언어 감각이랄까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는 해괴한 시선 같은 것을 타고 나야 한다는 걸.

그러면 소설을 써야겠구나. 소설 쓰기를 배우러 다닐까 생각하다가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고, 돈도 없었다. 한 달 정도 집에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셔가면서 일기 쓰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예전에 생각했던 재미있던 일이나 마음 아팠던 일, 기억에 남는 일⋯.

한 달 정도 쓰고 또 쓰니 제법 분량이 됐다. 무려 2000매. 그는 가까운 친구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줬다. 친구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격려하면서도 너무 길어서 지루한 곳이 있으니 줄이는 게 낫겠다고 의견을 줬다. 그는 글을 줄이고 또 줄였다. 그리하여 900매의 소설 『푸르른 틈새』가 나왔다. 권여선 문학의 원점이었다.1)

“저의 원점은 등단작인 『푸르른 틈새』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또 찾다가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끝내 지금에 이르렀고,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매우 칭찬합니다.”

1965년 안동에서 태어난 권여선은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잡지 『상상』이 주관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등단 이후 한 동안 고전했지만, 절차탁마를 거듭한 끝에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숲』, 『안녕 주정뱅이』, 『아직 멀었다는 말』을,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 『레몬』 등을 펴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전혀 쓰지 않는 소설가도 있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불행마저 관조하는 작가도 있는데, 권 작가님은 어느 쪽입니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는 죽도 밥도 아닙니다(웃음). 삶을 총동원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의도에 거부감도 있지요. 다만 이것만큼은 명확합니다. 어떤 불행을 당하더라도 고통의 체험에 적극적이지는 않아요. 소설도 중요하지만 나의 삶도 중요해서죠. 소설을 위한 실험에 가까운 불행을 미리 맛보려 하지는 않습니다. 과도하게 모험적이지도, 그렇다고 자폐적이지도 않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소설과 삶은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어요. 즐기는 순간엔 소설이 안 됩니다. 알려고 발버둥치고 할 때는 소설이 쓰여 지는데, 그때는 삶의 우울한 시기입니다. 둘의 교차 편집이 이어지는 거죠.”2)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다지 중요한 미학적 원칙이나 방법은 없고, 오로지 시간을 확보하고 배분하는 원칙만 있습니다. 써야 할 원고 매수에 맞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집필하는 것뿐입니다. 확보한 시간만큼 생각하고 쓰고 생각하고 쓰면 어떻게든 소설이 써지게 돼 있습니다.”

매일 새벽 3시 전에 자리에 눕고, 오전 11시 전후 몸을 일으킨다. 카페에 들어가서 체력이 되는 만큼 글을 쓰거나 읽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식사는 세 끼를 챙기고, 가끔은 오래된 친구 같은 술도. 퐁당당퐁당당당, 퐁당퐁당, 퐁퐁퐁⋯. 그 속에 다시 새로운 계절을 지나가려는 소설가 권여선이 서 있다. 이런저런 일로 외출하고 사람을 만나는 관계의 숲에서, 다시 혼자 지내는 생활로 급하게 돌아오고 있는 그가. 그런데, 지난 시절 기억하고 반추하는 힘으로 살았다던 그녀가 다시 키울 새 계절의 힘은 무엇일까.

*참고문헌

1)권여선(2008).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캠프―소설가 권여선과의 만남」. 한국번역문학원 유튜브 참고. 

2)김유태(2020. 2. 25). 「권여선 소설가 “슬픔의 마에스트로는 과한 수식어…차라리 슬픔의 피에로 되고 싶어”」. 『매일경제』.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출판사 제공 c)정멜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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