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 공개, 기초학력 보장을 저해한다?

주하은 기자 2023. 6. 7. 07:1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초학력 보장 지원 조례’를 둘러싸고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교육청이 충돌했다. 진단검사 결과 공개 여부가 쟁점이다. 조례가 오히려 기초학력 보장을 저해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기초학력 보장은 인권의 문제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에 대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동일한 평가를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등교가 제한되며 발생한 학습 결손과 교육 격차 문제에 대해 위기감을 공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의 결과로 탄생한 ‘서울특별시교육청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에 대해 두 사람은 정면으로 부딪쳤다. 서울시의회가 지난 3월 조례를 통과시키자 조희연 교육감은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시의회가 다시금 조례를 의결하고 5월15일 의장 직권으로 공포하자 조 교육감은 조례가 상위법에 위반된다며 대법원에 효력정지를 신청했다. 핵심 쟁점은 학교별·지역별 기초학력평가 결과를 외부로 공개할지 여부였다. 조 교육감은 학교 서열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고, 김현기 의장은 조 교육감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결된 조례를 무시한다고 반발했다.

5월15일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맨 오른쪽)이 서울특별시교육청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를 의장 직권으로 공포했다. ⓒ연합뉴스

논란의 중심에 선 기초학력평가란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을 활용한 진단검사 결과를 의미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매년 3월은 ‘진단의 달’이다. 담임교사는 각 학생의 학업 수준을 평가하고, 기초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학생을 선별한다. 기초학력 미달로 선정된 학생들에게 수준에 맞는 추가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2학기에 실시되는 학업성취도평가와는 차이가 있다. 학업성취도평가는 국가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수집을 목표로 하며, 학생의 학업 수준을 4단계(우수·보통·기초·기초 미달)로 나누어 평가한다. 반면 기초학력 진단검사는 학생이 기초학력 이상인지 미달인지 여부만을 가르며,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실시된다.

기초학력 진단에는 비단 지필평가 결과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 및 학부모 면담과 학생 관찰 등 정성적인 요소까지 고려해 지원 대상 학생을 선정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이미 그 결과가 안내되고 있다. 다만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학생이 기초학력 미달로 추려졌는지 시·도 교육청조차 알 수 없다.

어떻게든 ‘기초 미달’을 줄이면 되는 걸까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된 조례는 이 기초학력 진단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확히 어떤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지는 조례에 규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대체적으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공개 대상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기초학력 미달 제로 플랜’의 일환으로 학교별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공개했을 때 활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과 교원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지나친 경쟁과 학교 서열화를 조장했다며 이번 서울시의회의 조례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 우려한다.

경쟁이 심해지고 서열화가 발생하더라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어들면 좋은 것 아닐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을 줄이려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착시일 뿐이며, 미달 비율을 급격히 줄이려는 것 자체가 기초학력 보장에 악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현격히 감소했다. 학교별 학생 수준(보통 이상·기초·기초 미달 학생 비율)과 개선 정도를 공개하고, 이에 따라 학교에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한 결과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기초학력 미달 학생 평균 비율이 초등학생은 2.4%에서 0.7%로, 중학생은 10.4%에서 3.3%로, 고등학생은 9%에서 3%로 급감했다.

그러나 이 시기, 지표가 개선된 것과 반대로 교육 현장에선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교육과정을 무시한 채 학업성취도 평가 시기에 맞춰 문제 풀이 수업을 반복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을 통계에서 제외시키자, 학습 부진 경계선에 있는 아이들을 대거 특수교육 대상자로 편입시키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에게는 이명박 정부 시절 무한 경쟁에 내몰리며 교육적으로 최선이 아닌 일을 해야 했던 트라우마가 있다. 조례에 대한 의견 조회에서 120여 개 학교가 반대 의사를 밝힌 이유다”라고 말했다.

5월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의회에서 서울특별시교육청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필고사 이외에 정성평가 요소가 더해진 기초학력 진단검사에서 부작용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선정할 때 정성평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20~30%로 알려져 있다. 교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 경우 결과 공개는 기초학력 보장이라는 목적과 정반대의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기초학력 미달 경계선에 놓여 있는 아이를 교사의 판단에 따라 기초학력 이상으로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적절한 지원을 통해 기초학력을 다질 수 있는 학생이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초학력 진단 결과 공개 논란은 더 나아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결과를 공개해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은 기초학력 미달 자체를 ‘없애야 할’ 현상으로 바라본다. 기초학력 수준 미달은 나쁜 것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비율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뒤처지는 학생 없는 학교 만들기’라는 슬로건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은 “뒤처지는 학생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각자 재능과 환경에 따라 배움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핵심은 비율을 줄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력에 미달한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원하는지다. 지원 결과 미달 비율이 감소할 수는 있지만, 미달 학생 비율 ‘제로화’ 따위의 목표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것이 된다.

일각에서는 학교별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학부모의 ‘알권리’를 충족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과가 공개돼야 학부모 입장에서 학교가 얼마나 기초학력 보장을 잘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의 한성준 공동대표는 “학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그 학교 학생들의 수준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각 학교가 제공하는 기초학력 보장 지원책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학부모가 학교에 더 나은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한 대표는 “학교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공개하자는 것은 그 학교와 지역에 대한 낙인찍기밖에 되지 않는다. 기초학력 보장이 발전하기 위해선 ‘학생이 얼마나 우수한지’가 아니라 ‘학교 지원제도가 얼마나 우수한지’로 경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