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상철 2주기, 아직도 뚜렷한 ‘월드컵 영웅’의 흔적

이선명 기자 2023. 6. 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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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유상철의 인천 감독 시절. 연합뉴스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 고 유상철이 세상을 떠난 지 2주기를 맞았다.

고 유상철은 2021년 6월 7일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50세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2002 한일월드컵 영웅이자 이후에도 축구계에서 굵직한 역할을 해왔던 레전드의 죽음이었다.

고 유상철은 2019년 11월 췌장암 4기 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투병생활 중에도 불구하고 축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으며 2021년 1월까지 인천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고 팀을 극적으로 잔류시켰다.

고 유상철을 항암 치료를 이어갔다. 몇 차례 응급상황이 있었지만 2020년 6월 항암치료를 마쳤고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암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대외활동을 마친 고 유상철은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복귀까지 거론될 정도로 건강이 호전된 상태였다. 하지만 뇌쪽에 암이 전이됐다는 통보를 받았고 상황도 악화됐다.

고 유상철이 세상을 떠나자 축구계를 비롯해 각계의 추모가 이어졌다. 고 유상철의 애제자 이강인(마르요카)는 “하늘에서 지켜봐 달라”며 애틋한 메시지를 남겼고 또 다른 2002 한일 월드컵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도 “한국에도 내게도 진정한 영웅”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고 유상철 빈소를 조문하는 팬. 연합뉴스



국체축구연명(FIFA)는 “한번 월드컵 영웅은 언제나 월드컵 영웅”이라고 추모했고 대한축구협회(KFA)는 “당신이 함께한 그 날의 함성과 영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일본 요코하마도 각각 추모의 메시지를 올렸다.

고 유상철은 1994년 울산 현대에 입단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일본의 요코하마, 가시와 레이솔을 거쳐 2006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고 유상철은 한국 역사상 최고 멀티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선수다. 수비에서 미드필더, 공격까지 전천후 대부분의 포지션을 소화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고 유상철의 국가대표팀 시절.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 유상철은 2006년 현역 은퇴를 하면서 왼쪽이 거의 실명상태였다는 것도 처음으로 고백했다. 그만큼 투지의 상징이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과 함께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을 치르면서 전반전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에도 풀타임 경기를 소화했고 경기 종료 직전 헤딩 결승골로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춘천기계공고 축구부 창단 감독, 대전 시티즌,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로 지냈다.

고 유상철의 1주기인 지난해 6월 7일에는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명의로 고인을 다시 한번 추모했고 울산 또한 고인을 기리는 추모공간을 운영했다.

유상철의 2주기인 7일 축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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