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이젠 쿨하지 않아요[오늘을 생각한다]

2023. 6. 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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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쯤이었을 것이다. 서울에 놀러갔다 온 친구가 카페에서 종이컵과 컵홀더, 커피젓개를 집어와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1999년 국내 1호 스타벅스 커피전문점이 이화여대에 개장하였다. 그즈음부터 서울에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들이 퍼지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지역에 거주하는 고등학생인 나에게 일회용품들은 낯설지만, 쿨하고 신기했다. 소중히 간직하며, 몇 번이나 다회용(?)으로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이듬해에는 내가 살고 있던 지역에도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꽤 많이 생겨났다. 그 후로 20여 년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브랜드 로고가 찍힌 종이컵을 이용했다. 그러다 2018년 쓰레기 대란이 터졌다.

매일 일회용품에 중독된 듯 살아가는 한국인이지만, 이렇게 버려도 되나 하는 죄책감을 다들 갖나보다. 2018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3.4%의 소비자들이 커피전문점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제한에 찬성하였고, 2019년 조사에서도 10명 중 9명이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에 적극 동참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열화와 같은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환경부는 2020년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을 법제화함에 이르렀다. 2년 후로 시행일도 법 부칙에 아로새기고 관련 업무를 담당할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를 개소하는 등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2년을 준비하고도 자신이 없었던지, 작년 5월 법에서 정해놓은 시행일을 갑자기 연기하더니, 막상 연기된 시행일을 목전에 두고는 그 시행규모를 대폭 축소해 제주와 세종에서 시범사업을 하는 것으로 초라한 개막을 했다.

시범 지역에서의 저항은 거셌다. 소상공인들의 실무 및 비용 부담이 컸을뿐 아니라 회수체계 등 시스템도 턱없이 모자랐다. 정작 가맹점 본사는 쏙 빠졌다. 올해 3월 시범사업 시행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연 가맹점주들은 참여 매장의 99%가 고객과의 마찰이 있었으며, 10곳 중 8곳이 매출 감소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일회용컵 보증금제 폐지가 아니다. 표준컵 제도의 도입이나 전국 동시 시행과 같은 더 나은 시행을 위한 시스템 개선을 요구했다. 가맹점주들조차도 일회용품의 문제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정부는 현장의 문제점에 귀기울이고 하루빨리 개선해 나가야 한다. 미미하게 시작한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끝은 반드시 창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 사례가 있어야 확장 가능성이 생긴다. 독일의 경우 엄격한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이 다회용컵 활성화로 이어졌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제주도에서의 움직임이다. 적용 대상 매장 범위를 확대하는 조례를 준비하고, 가파도의 경우 일회용컵 추방을 실험하는 등 애쓰고 있다. 환경부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자 분투하는 제주도민들의 행보를 응원한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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