쏠리면 위험하다[편집실에서]

2023. 6. 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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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N수’는 기본이고, 서울 명문대 재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의대에 재입학하거나 편입하는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의대가 없는 대학들은 호시탐탐 의대 신설 기회를 노립니다. 학원가에 초등학생 대상 ‘의대 입시반’까지 생겼다니 말 다했지요. 맛있다고, 몸에 좋다고 특정 음식만 편애하면 오히려 몸에 해로운 것처럼,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너도나도 의대 진학만 꿈꾸는 현상도 국가 전체로 보면 결코 건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의료 현장에선 의사가 없다고 난리인데, 의대 정원은 18년째 3058명이라는 숫자에 갇혀 있습니다. 원한다고 누구나 의사가 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이 달리니 풍선 효과처럼 인접 분야의 인기가 부풀어 오릅니다. ‘의치한약수’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의 첫 글자를 합성한 신조어랍니다. 대입 성적 우수자들이 서울부터 지방까지 전국의 의대를 한 바퀴 돈 다음에 명문대의 다른 전공을 채워가기 시작한다는 말이 나온 지 이미 꽤 됐는데요. 이젠 그것도 모자라 의치한약수가 전국의 인재들을 다 빨아들입니다.

서울을 넘어 수도권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현상을 보는 듯합니다. 수도권도 저출생 심화, 성장의 정체 현상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데요. 그나마 지역인구를 탈탈 끌어다 쓰는 바람에 겨우 규모를 지탱해가고 있습니다. 없는 살림 빼앗아 있는 살림 채워주는 꼴이니 서울-지방 간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전국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부 자료(2023~2029년 초·중·고 학생 수 추계)에 따르면 올해 고3 학생 수는 역대 최저인 39만8271명입니다. 2024학년도 대입 선발인원인 51만884명(4년제 일반대 34만4296명, 전문대 16만6588명)에 한참 모자랍니다. 골고루 들어가면, 재수니 삼수니 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실은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의치한약수만 고집하니 사교육비는 사교육비대로 들고, 수험 스트레스도 잦아들지를 않습니다.

의대 정원을 늘리겠답니다.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1000명 이상 늘린다고 해서 의대 입시 과열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요. 문호가 넓어졌다고 의사 지망 행렬이 더 길어지지나 않을까요.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수면 위로 급부상한 ‘의대 정원’ 이슈는 간호법 무산이 촉발시킨 의료 현장의 혼돈을 어느 정도나마 바로잡아보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정부가 꺼내든 카드인데요. 응급환자들이 여러 곳을 전전하다 이송 도중 사망하는 일이 속출할 정도로 의료 일선의 인력 부족 현상은 직군을 가리지 않고 심각합니다. 단순하게는 의사 숫자부터 늘리는 게 맞겠지요. 그것도 대폭 늘려야 합니다. 그런데 일손이 달려 격무에 따른 고충을 호소하면서도 의사들은 정원 확대에는 소극적입니다. 이상하지요. 의대 정원을 둘러싼 논란과 풀리지 않는 궁금증, 박송이 기자가 파고들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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