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못하는 오승환을 봐서 눈치를…" 앞으로 다시 없을지 모를 대기록, 시민구장 추억 떠올린 돌부처의 희미한 미소[현장스케치]

정현석 2023. 6. 7.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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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통산 500세이브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한 오승환. 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삼성 라이온즈 끝판왕 오승환이 대망의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를 달성한 6일 대구 NC전.

3점 차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1안타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하며 시즌 8세이브 째이자 KBO 통산 378세이브째를 기록했다. 일본 프로야구(NPB) 통산 2시즌 80세이브와 미국 메이저리그(MLB) 4시즌 통산 42세이브를 합쳐 대망의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 고지에 올랐다.

전인미답의 대기록의 역사적 현장을 보기 위해 1만4639명의 많은 관중이 라이온즈파크를 찾았다. 3루 관중석 아래쪽을 가득 메운 팬들이 만들어내는 푸른 물결이 장관이었다.

타선과 불펜이 연출을 했다. NC 새외인 테일러 와이드너에게 무려 9득점을 뽑아내며 일찌감치 승리를 예감케 했다.

관건은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까지 단 한걸음을 남겨뒀던 오승환의 세이브 상황 여부. 9-5로 앞선 7회초 교체 출전한 NC 천재환의 시즌 2호 우월 솔로포가 터졌다. 3점 차 리드. 세이브 요건이 갖춰졌다.
케이크 세례에 범벅이 된 얼굴. 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시민운동장 시절의 데자뷔, 끝판왕의 공 하나하나에 열광한 삼성 팬들

9-6 리드가 이어지던 9회말 NC 마지막 공격. 어김 없이 라첸카 세이브 어스가 라팍에 울려 퍼졌다.

관중들이 뜨겁게 환호했다. 오승환이 불펜 문을 열고 500세이브를 향해 성큼성큼 마운드에 올랐다.

선두 타자는 손아섭. 초구 144㎞가 미트를 울렸다. 스트라이크 콜. 관중이 일제히 환호했다. 2구도 144㎞ 직구에 배트가 헛돌았다. 또 한번 환호가 터졌다. 오승환이 살짝 흥분한 듯 또 한번 직구를 뿌렸다. 살짝 빗맞은 타구가 좌중간에 떨어졌다.

하지만 오승환은 서호철을 2구만에 직선타 처리한 뒤 전 타석 홈런타자 천재환을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7구 승부 끝에 마틴을 포크볼을 던져 1루 땅볼로 돌려세웠다.

전인미답이자 앞으로 다시 없을지 모르는 기록.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가 달성되는 순간. 공 하나 하나마다 뜨거운 함성을 보내주던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삼성 라이온즈의 자랑이자 영원한 레전드 오승환을 연호했다. 대구 시민운동장 당시 왕조시절의 끝판왕을 삼성 팬들은 이렇게 공 하나 하나에 함성을 보냈었다.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추억같은 데자뷔.

"예전 시민구장 시절에는 정말 팬 분들이 공 하나 하나에 다 이렇게 열광을 해주셨거든요. 그렇게 자주 해 달라는 건 아니고요.(웃음) 팬 분들의 환호에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었고, 팬 분들도 오늘 이런 기록이 있다라는 걸 알고 계셨구나 하는 걸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죠. 팀이 많이 이기는 게 첫 번째이지만 그래도 홈 팬 분들 앞에서 기록을 달성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한미일 500세이브 기념구. 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500번 팀 승리를 지켰구나 하는 뿌듯함 있다"

그라운드에서 동료들의 물세례와 이상민의 도발로 케이크까지 뒤집어 쓴 오승환은 한바탕 전쟁 같은 축하 세리머니 후 취재진 앞에 섰다. 수 많은 전설적 기록에도 늘 무덤덤한 돌부처. 이번에도 어김 없었다.

하지만 드물게 만족한다는 소감 한마디는 들을 수 있었다.

"아홉수라면 아홉수가 걸려 있던건데 한 번에 이렇게 하게 된 게 좀 가장 큰 것 같고요. 이게 끝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다른 감정이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제게 조금 칭찬을 하자면 그래도 정말 오백번 팀 승리를 지켰구나 하는 잠깐 뿌듯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또 이 세이브라는 기록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마지막에 팀 동료들도 같이 세리머니를 해주고 축하해줬는데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죠."

(그럼에도 '승부사' 오승환은 평소 자신을 잘 따르는 순둥이 이상민의 케이크 도발에 본능적으로 격하게 저항했다)

이상민의 케이크 도발에 몸싸움을 벌이는 오승환.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다시 돌아온 마무리, 그리고 힘 보탬"

불혹을 넘긴 나이. 마무리 투수로 뛰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다.

불철주야 노력하지만 오승환도 인간이다. 물리적 하향 곡선을 피할 수 없다. 그저 떨어지는 속도를 부단한 노력으로 늦출 뿐이다.

그런 면에서 오승환의 하루하루는 전쟁이다. 구속 저하에 따른 위기는 숙명이다.

힘든 과정을 극복해 가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장르의 드라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올시즌 초. 마무리에서 내려오기도 했고, 프로 커리어 처음으로 선발 등판도 했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돌아온 마운드. 그래서 조금은 더 특별한 대기록이다.

"시즌 초반 좋지도 않았고, 마무리 보직에서도 내려 왔었고, 말도 안되게 선발로도 나가게 됐는데 그런 계기를 통해서 그래도 빨리 제 자리로 돌아와서 불펜 과부하나 힘든 부분을 조금이라도 같이 힘을 보탤 수 있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관중앞에 선 오승환.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아내는 제가 야구 못한 것만 많이 봐서 눈치를…"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오승환에게 가족은 큰 힘이다. 지난해 1월 결혼식을 올리고. 지난 4월 사랑스러운 첫 아들을 얻었다. 친가와 처가 식구들까지 아들, 사위 경기를 가슴 졸이며 응원한다.

편안하게 야구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잦아진 실점 만큼 요즘 부쩍 문자 연락이 잦아졌다.

"정말 올 시즌 같은 경우는 부모님도 조금 힘드셨던 것 같아요. 매일매일 이제 어머니께 문자가 오세요. 이제 점수 줄 때가 더 많다 보니까요.(웃음) 그리고 이제 장인 어르신 같은 경우에는 야구를 워낙 좋아하세요. 장모님은 야구를 아예 모르시는데 이제는 야구 박사가 되셨어요. 보약도 지어주시고 그러면서 제가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제가 결혼을 하고 저희 와이프 같은 경우는 야구를 잘 했을 때보다 못한 모습을 더 많이 보다 보니까 좀 더 제 눈치를 보고 더 많이 미안해하더라고요. 그게 좀 많이 미안했어요. 저도 아닌 척은 하고는 있지만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니까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KBO 400세이브를 향해 뛰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승환은 이제 KBO 통산 첫 400세이브에 도전한다. 22세이브가 남았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KBO리그 400세이브가 남아 있는데 물론 그 목표를 향해 뛰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승리를 지키는 게 가장 큰 것 같고요. 블론세이브를 하지 않고 세이브를 계속 하다 보면 분명히 팀 성적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거고, 팀이 많이 이기면 400세이브도 따라오는 거라서 블론세이브를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습니다."

물세례 받는 오승환.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日美 팬분들께 이런 선수도 있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

일본 미국 팬들도 여전히 오승환을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강렬한 소중한 기억을 선사했던 이방인. 통산 500세이브 안에는 타국에서의 땀과 노력이 포함돼 있다.

"오키나와 갔을 때도 그렇고 일본 팬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세요. 한국에도 이런 선수가 있다는 어떤 그런 마음이 좀 더 생기더라고요.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까지도 기억을 해주시고 그분들이 한국 야구를 찾아보실 때는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응원들이 저한테도 힘이 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미국 팬들, 카디널스 팬 분들이 아직도 DM(SNS 다이렉트메시지)도 많이 보내시는데 항상 너무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좀 있으면 분명히 잊혀지겠지만 제가 좀 더 좋은 기록을 남겨서 그분들도 여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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