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우리도 바다에 민망한 걸 버리던 때가 있었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2023. 6. 7.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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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27년간 연 600만톤씩 투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불유쾌한 일이지만
‘안전’ 국제 판정 난다면 이웃 사정 이해도 해줘야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5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 주최로 열린 초청 간담회에서 '방사능 공포 괴담과 후쿠시마'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뉴스1

얼마 전 방한한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처리를 거친 오염수라면 1L, 아니 10L라도 마실 수 있다”고 했다. 평생 방사선을 연구해온 팔십 넘은 노(老)학자다. 후쿠시마 방류수는 건강에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 진심 어린 충고였을 것이다. 그의 ‘생명을 위한 원자력(2015)’이란 책엔 방사능 공포가 과장됐다는 걸 입증하는 연구들의 소개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는 방사선 치료에 성공한 암 환자 5000명의 역학조사다. 무려 29년을 추적 조사했다. 방사선 치료 때 암 환자들은 한 달, 또는 한 달 반 사이 하루 1000mSv씩의 방사선 치료를 20~30차례 받는다. 암 부위를 정밀 조준한다고 하지만 주변 정상 세포들도 1만mSv, 2만mSv의 방사선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5000명 가운데 7.4%만 암 주변 정상 세포에서 2차 암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일반인 선량 한계치(연 1mSv)의 1만배, CT 피폭량의 1000배 이상 방사선에 노출됐는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개를 상대로 한 임상실험에선 매일 3mSv씩, 5년간 6000mSv 쬐였는데도 대부분 무사했다고 한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다. 전혀 알 수 없는 사이 몸을 뚫고 지나가고 10년, 20년 뒤에야 암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감각 방어가 불가능하다. 그 점이 방사선을 과도한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앨리슨 교수는 방사선을 직접 다루는 방사선 의학자들이 나서서 설명해줘야 한다고 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흔히 이해관계에 오염됐다는 의심을 받는다. 방사선 의학자들은 원자력 산업계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다. 중립적 전문가들이 설득해야 시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를 방류할 경우 평균적인 한국인이 받게 될 방사선량은 높게 잡아도 0.0000000035mSv라는 계산을 했다. 흉부 X레이 1000만분의 1 피폭량이다. 2021년 이런 평가를 학회에 공개했던 박사는 정부 입장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징계받았다. G8 선진국 멤버로 올라서길 희망하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선량 연구 결과가 보도됐어도 야당 지도부는 “핵 방사능 물질이 바다에 섞여 있다면 멍게를 누가 먹겠나. 김이 오염되면 김밥은 무엇으로 만드냐”며 공포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미국 소 광우병과 사드 전자파가 그랬듯, 후쿠시마 오염수 공포도 허망한 가짜 뉴스라는 것이 결국은 밝혀질 것이다.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기 위한 몰상식의 정치 게임일 뿐이다.

영국 환경저널리스트 조지 몬비오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 후 열흘밖에 안 된 시점에 ‘후쿠시마 사고가 나를 원자력 지지자로 만든 이유’라는 글을 썼다. 그 사고로 치명적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나선 원자력 지지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몬비오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환경 전문가다. 주장과 설명 하나하나마다 근거가 되는 과학 논문을 달아놓는 엄격한 실증주의자다. 그는 로드킬로 죽은 동물에서만 동물 단백질을 섭취하고 몇 년에 한 번씩만 비행기를 탄다. 육식과 비행기 여행이 기후 붕괴를 촉진한다는 확신에서다. 그런 철저한 환경 실천가가 원전 폭발 직후 전 세계가 공포에 빠져 있던 때에 본질을 꿰뚫는 분석을 내놨다.

그의 직관은 유엔 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EAR)의 28국 전문가 80명이 2년여 조사 끝에 2013년 내놓은 사고 보고서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방사선 피폭 사망자는 한 명도 없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평생 살아도 CT 한 장 찍는 수준을 살짝 넘는 방사선에 추가 피폭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도 바다에 못된 오염 물질들을 갖다 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1988년부터 군산, 포항, 부산의 먼 바다 쪽에 엄청난 오물을 투기했다. 축산 분뇨, 하수 슬러지, 식품 가공 찌꺼기 등 고농도 유기물들이다. 육지엔 처리 시설이 부족했고 바다에 버리는 것이 비용이 싸게 먹혔다. 2015년까지 27년간 연평균 600만톤을 공해상에 버려왔다. 망망대해의 확산력, 자연 정화력을 믿었다.

오염 처리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일본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화가 나고 일본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도 어쩔 도리가 없어 그렇게 하려 하고 있다. 이웃 국가와 전 세계에 큰 빚을 지는 행위다. 다만 그로 인한 오염은 우리가 걱정하는 만큼 생태와 건강에 부담을 주는 건 아니라는 과학 연구들이 있다. 상대방이 달리 방도가 없어 민망한 일을 벌일 때, 거기 대고 욕을 할 수도 있고 그쪽 사정을 감안해 돕는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도 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 판정이 난다면, 어느 쪽이 길게 봐 우리에게 득(得)이 될지 헤아려 판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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