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융합’과 ‘학생선택권 강화’라는 이데올로기
근자에 들어 융합과 학생선택권 강화가 대학개혁의 금과옥조인 양 대학사회를 휘젓고 있다. 융합으로는 부족했던지 첨단이란 수식어를 붙여 정부는 수도권 대학 정원을 800여명이나 늘렸다. 지역대학의 몰락이 촉진되어도 일단 융합부터 도모하겠다는 태도다.
한편에선 학생선택권 강화가 대학혁신의 징표처럼 횡행하고 있다. 학생이 전공을 선택하고 새로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다. 강의 내용과 수준, 방법 등도 학생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학생의 원대로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며 너스레를 떨어댄다. 대학과 사설학원은 존재 이유와 목적이 엄연히 다름에도 학원 경영하듯 대학을 운영해야 바람직한 혁신이라고 우기는 모양새다.
물론 대학도 수요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학생뿐 아니라 기업 등 사회의 요구도 경청해야 한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다. 대학들이 제공하고 있는 5융합이 정녕 학생의, 또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일까? 4년 남짓 되는 대학생활 동안 학생이 원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융합역량을 온전히 갖출 수 있을지 의심되어 던진 물음이다.
융합역량의 실체가 불확실한 것도 문제지만, 암튼 그것이 요구되는 이유는 일터에서 여러모로 필요한 창의력 때문이다. 단지 여러 분야의 지식을 갖춘 융합역량이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하는 융합역량이라야 비로소 사회에서 통하는 경쟁력이 된다. 설령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할당된 직무를 너끈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직무에 따라서는 전문성을 갖춘 융합역량이라야 쓸모 있는 경쟁력이 된다. 창의력은 차치하고 실무역량이나 전문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융합역량을 사회가 반길 이유는 거의 없다.
결국 대학을 다니는 동안 실무역량과 전문역량, 창의역량을 두루 갖추면서 융합역량도 구비해야 한다. 과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어느덧 이데올로기가 된 융합을 좇느라 어느 한둘이라도 제대로 갖출 기회를 박탈하는 건 아닐까? 이것저것 다 떠나서, 학생들이 대학에서 제공하는 융합교육이 사회에서도 통하는 역량 구비에 별 도움이 안 됨을 알게 된다면 그들이 과연 융합을 원할까? 남쪽 나라로 가고자 하면서 말머리는 북쪽으로 향한다는 남원북철의 고사가 절로 떠오르는 형국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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