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부 팔린 비결? 어린이를 한 ‘인간’으로 존중했기 때문

곽아람 기자 2023. 6.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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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라이터] [9] ‘어린이라는 세계’ 저자 김소영
김소영은 ‘당신은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에 “문장을 길게 쓰지 않으려 한다. 부사를 많이 쓰는 게 좋지 않다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부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중복되는 표현은 줄이려 노력한다”고 했다. /이명원 기자

김소영(47)씨의 에세이집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는 지난 2020년 11월 출간돼 현재까지 20만부 팔렸다. 불황이 거듭되고 있는 국내 출판 시장에서 이는 놀라운 사건이다. 저자는 유명인도 아닌 어린이 독서교실 선생님. 제목에 ‘어린이’를 내세웠지만 육아서도 아니다. 독서교실을 운영하면서 만난 어린이들에 대한 일화를 바탕으로 어린이가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어른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글에 김소영은 이렇게 썼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를 가르친 대가로 수업료를 받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어린이를 ‘고객’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社訓)이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아동 학대 사건,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정중하게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를 신선하게 여긴 30~40대 여성 독자들이 열렬히 반응했다. “지금까지 내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독자가 남긴 리뷰다.

지난 5일 기자와 만난 김소영은 “누구든 고객이나 동료에게 지키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어린이와 나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어린이와 아무리 친해져도 스킨십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서로 상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어린이에게는 반드시 존댓말을 쓴다. 그래야 존중하는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다.”

김소영은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후 여러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로 10여 년간 일했다. 2012년 편집자 일을 그만두고 이듬해 겨울 독서교실을 차렸다. “가지고 있는 자산이 어린이책이라 그걸 활용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이상 어린이를 1대1 수업 위주로 가르친다. 문학뿐 아니라 역사 등 지식 관련 책도 함께 읽는다. 수업의 목표는 “어린이가 평생 독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읽기를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도록 ‘읽는 근육’을 길러 주고 싶다.”

처음부터 주목받는 저자였다. 2017년 낸 첫 책 ‘어린이책 읽는 법’(유유)은 9000부, 2019년 낸 ‘말하기 독서법’(다산에듀)은 1만2000부 팔렸다. 코로나 발발로 수업도, 강연도 모두 취소된 2020년 초, 속상한 마음에 뭐라도 하자 싶어 쓰기 시작한 글이 ‘어린이라는 세계’다. 인기 비결을 묻자 그는 “누구에게나 있는 ‘어린 시절’이라는 공통점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어린이들의 일상을 ‘구경’하거나 ‘전시’하는 방식으로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단순히 이렇게 귀여운 일, 혹은 웃긴 일이 있었다며 부풀리지 않으려 신경 썼다. 내 책을 어린이가 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어린이에게 실례되지 않도록 썼다.” 이를테면 ‘어린이의 품위’라는 글에서 그는 독서교실에서 제공하는 ‘겉옷 시중 서비스’를 이야기한다. 수업을 들으러 온 어린이가 외투를 벗고 입는 걸 깍듯하게 시중 든다. “선생님이 이렇게 하는 건 네가 언젠가 좋은 곳에 갔을 때 자연스럽게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해서야. 어쩌면 네가 다른 사람한테 선생님처럼 해줄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우리 이거 연습해 보자.”

기혼이지만 아이 없는 여성이 ‘어린이’를 소재로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아이를 안 키워봐서 미화하는 거라는 분들도 있고, 아이가 없는데도 어린이의 좋은 점만 봐 줘서 힘이 된다는 분들도 있죠. 어떻게 어린이가 순하고 곱기만 하겠어요. 그렇지만 일종의 ‘사회적 약자’를 이야기할 때 시끄럽다거나, 통제가 안 된다거나 하는 그들의 부정적인 부분을 꼭 다루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김소영의 ‘어린이가 책을 읽게 하려면’]

어른의 바람직한 태도

읽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어린이와는 꼭 함께 읽어야 한다. 어린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게 그림 없이 텍스트로만 된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일이다. 능숙한 독자인 어른들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하는지, 내 경험과는 어떻게 연관시켜야 하는지 등을 도와줘야 한다. 요즘은 하루라도’읽기 독립’을 빨리 시키려는 어른들이 많은데, 그 일이 어린이들에게는 굉장히 어렵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이라는 미국 책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독서 환경과 딱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어른이 먼저 읽은 후 어린이가 따라 읽기라든가, 서로에게 읽어주기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자면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열네 살이 될 때까지 매일 15분씩 책을 읽어주라는 것이다. 흔히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책 읽어주기를 포기하는데, 아이의 듣기와 읽기 수준은 열네 살 무렵에나 같아진다.

읽기는 자전거 타기 같아

읽기는 자전거 타기와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두발자전거를 타게 되는 것이 아니듯, 읽기에도 기초 능력이 필요하다. 어린이책의 연령 구분에 구애하지 않고 아이의 수준을 정확히 측정해 읽히는 게 좋다. 긴 책을 여러 번 나눠 읽는 것보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을 여러 번 읽는 재미를 아이에게 알게 해 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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