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는 없다

기자 2023. 6. 7.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의 전성시대다. 이제 한류라는 이름을 넘어 K콘텐츠, 나아가 K컬처가 미디어와 언론, 대학의 강의실은 물론 일상의 언어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그러나 이에 대한 사회적 성찰의 목소리도 조금씩 발화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K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우리 사회에서 이의 활용이 한쪽 방향으로, 또 과잉으로 재생산되는 데에 대한 우려라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일상의 삶은 녹록지 않고, 정치(인)는 미덥지 못하며,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은 무언가 즐거움과 자긍심을 느끼며 위안의 도구로 삼을 만한 사건을 만들고 이에 몰두함으로써 현실의 곤고함을 잠시 잊거나 대체하곤 한다.

동시에 바로 이러한 사회심리적 지점을 ‘K’라는 기표가 파고들어 전유하는 문제가 그것이 가져오는 순기능을 압도한다는 데에서 혼돈과 비극의 씨앗이 움튼다. 이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드라마나 영화 등 K콘텐츠, K팝 외에도 K뷰티와 K푸드를 거쳐, K방역과 K백신, K배터리와 K반도체 등 국뽕적 정서가 한껏 녹아든 조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직면한 다기한 문제와 모순들을 마술적으로 은폐하는 담론 구성체로 기능한다. 심지어 이는 K육아, K며느리, K명절 등 부정적 의미를 담지한 자조적 언어로 치환되거나 이의 본래적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소환하는 문화정치적 성격도 드러낸다.

초기 한류를 연구하던 서구의 미디어와 한국학자들의 시각과 개념적 틀 중 문화적 할인이나 문화적 친연성 등으로 오늘날의 ‘K’ 현상을 적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류를 비롯한 K콘텐츠의 놀라운 성취와 관련해, 과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경제성장 모델과 유사한 방식을 문화에 적용한 국가의 발전주의적 역할을 강조하는 해석 또한 ‘K’ 현상을 온전하고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혹자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체제로 개인들의 삶이 급격하게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할리우드의 환상적 세계관 대신,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자기 성찰적이며 사회비판적 콘텐츠에 국경이나 문화적 차이를 초월해 동시대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을 두고 문화적 혼종성이나 초국가적 근접성 같은 개념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 드라마와 영화, 대중음악을 접하고 지리적, 정서적 거리를 넘어 자신의 삶을 바꾸는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 온 수많은 젊은이들은 K팝과 드라마에서 경험한 다른 사회를 꿈꾼다. 그들이 특정 콘텐츠나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해서 한국의 패션과 화장품, 음식, 나아가 뿌리 깊은 가부장제 등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전통문화 모두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정서의 이면에서 ‘K’는 생성되지만, 휘발되거나 남용되면서 다른 정치적 목적에 복무한다.

무질서해 보이는 뒤섞임과 예측불가능한 잡종성을 통해 제3의, 혹은 그 이상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문화의 힘은 상품이자 산업이면서, 동시에 좋은 삶과 다른 사회, 그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상상으로 연결된다.

이를 두고 서구의 시선에서 정치와 경제 권력이 충분히 강하지 않은 작은 나라의 문화를 폄훼한다고 불평하거나, 서구에 대한 오랜 콤플렉스에 기인한 우리 자신의 내면화한 오리엔탈리즘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무엇보다 ‘K’라는 환원적이며 자기 복제적인 정치적 구호를 넘어 그 이름에 부합하는 품격 있는 사회와 문화를 가꾸기 위한 내실이 필요한 때이다. 한 예로 빠른 인구 감소와 국가 소멸에 대한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시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세대를 철부지로 보는 대신, 과도한 업무강도와 권위주의, 폐쇄적 조직문화 등 한국의 노동 조건과 기업 문화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숙의가 절실하다. “출생률 말고 자살률을 보라” “살기도 싫은데 낳으라고?”라는 시위 현장의 손팻말 문구가 마음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