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마동석에게도 화낼 수 있나
허기를 달래러 포장마차를 방문한 어느 밤이었다. 옆 손님이 갑자기 사장에게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연인즉 이러했다. 가게 사장이 돈을 더 받으려 단체 손님의 주문 수량을 부풀렸는데, 그 금액이 너무 컸던 터라 총무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다. 술에 취한 젊은 남자가 엄마뻘 되는 사장을 향해 육두문자를 날리고 있었다. ‘사장이 잘못했지, 왜 사기를 쳤어?’ ‘저 남자가 너무했지. 저 정도면 폭행이잖아.’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일대 소란은 금세 잠잠해지고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남자의 한마디가 뒷덜미를 잡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분노 조절을 못해서….”
과연 그럴까. 만약 가게 사장이 배우 마동석 씨였어도 저 난리를 칠 수 있었을까. 힘없는 노인 여성을 향해 선택적으로 분노가 발동한 건 아닐까. 저 남자는 어쩌면, 분노 조절을 정말 잘하는 사람 아닐까. 그런 의문이 이어졌다.
흔히 무차별적이라고 생각되는 분노나 폭력은 실제로는 무척이나 차별적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번에 국내를 경악시킨 부산 정유정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살인이 해보고 싶었다”라는 말 때문에 이를 ‘묻지 마 범죄’로 보도하는 언론이 많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정유정의 사이코패스 여부에만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을 살해 대상으로 삼았는지는 희석되고, 범죄에 실제로 취약한 이들이 누구인지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 또한 무의미해진다. 묻지 마, 이유가 없다는 식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분노나 폭력에 관해서라면 반성이 먼저다. 운전하다가 만만한 이들에게만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울리지는 않았는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걸어가는 사람 중 누군가에게만 짜증을 내지는 않았는지, 그런 것들을 되돌아볼 일이다. 그러한 반성이 없다면 다음번에 “죄송합니다, 제가 분노 조절을 못해서…” 같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폭력은 약자를 향해 아래로 흐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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