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17] 시민 단체라는 이름의 국민 혈세 절도단

김규나 소설가 2023. 6.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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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의회의 계획 없이는 태양도 떠오를 수 없다. 전 세계 양초 관리 의회들의 허가를 받아, 전 세계에서 필요한 양초 수량을 결정하고, 횃불을 대체할 양초 생산 계획을 최적화하는 데 무려 5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이는 수십 국가에서 일하고 있는 수백만 명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계획을 수정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우리는 이렇게 빨리 또다시 계획을 변경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매우 사악한 일이다. 이것은 파괴되어야 한다.” - 아인랜드 ‘우리는 너무 평등하다’ 중에서

국고지원금은 ‘눈먼 돈’이라고 불렀다. 방법만 알면 쉽게 타낼 수 있다고 했다. 사업 성과 보고서도 대충 제출하면 토해낼 일은 없다고 들었다. 지난 정권 아래, 지자체를 제외하고도 민간 단체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연평균 5조원, 해마다 4000억원 늘었다. 지원 단체도 수천 곳 늘었다. 최근 정부가 시민 단체 일부를 감사한 결과, 지난 3년간 1865건 부정 수급, 314억원 불법 착복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국민 혈세 절도단이다.

노후한 신호기 고장으로 발생한 열차 충돌 사고로 사상자를 1400여 명 낸 인도에서 건설 중이던 대교가 또 무너졌다. 정부의 부정부패 탓이라는 그 나라 정치인의 비난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철도 시스템 보완과 교량 건설에 쓰일 세금과 자금이 엉뚱한 주머니로 들어갔으리라는 추측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사회는 평등하다.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시민은 신체 조건이 우월한 것도, 지능이 뛰어난 것도 죄다. 모두가 평등한 건 아니다. 지식을 금지하고 과거를 은폐하고 개인을 통제하는 건 의회다. 결정에 불복하면 감금하고 채찍질한다. 주인공은 사라졌던 전기 사용법을 찾아내 인류에게 빛을 선물하려 하지만 의회는 양초를 고집하며 폐기하라 명령한다.

민주, 평등, 정의를 외치지 않는 권력자와 시민 단체가 있을까. 그러나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는 정치인에겐 돈이 먼저이고, 평등을 크게 주장하는 단체일수록 ‘우리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 법이다. 차별화를 부추기고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는,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수백억짜리 고급 아파트 광고가 차라리 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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