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50. 태백 그린목욕탕

김우열 2023. 6. 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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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마음 녹여줄 추억이 모락모락
1993년 태백 황지동 동네 최초 목욕탕 오픈
탄광 호황기 하루 평균 600명 방문 ‘인기’
폐광 이후 운영난에도 단골손님 꾸준
어린시절 다니던 모습 그대로 추억 소환
꺠끗한 시설·친절한 서비스 경쟁력 강화
▲ 그린목욕탕 2대 사장인 허태형 씨와 어머니 권춘자씨가 목욕탕 입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응답하라 1993’


3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대중목욕탕이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3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흘렀지만, 시간이 멈춘 듯 그때 그 시절 흔적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낡고 소박한 목욕탕은 어렴풋한 우리네 과거를 소환하고, 옛 추억을 끄집어 낸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가 다녔던 촌스러움과 아련함, 정이 묻어있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다. 역사의 한 페이지처럼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 삶을 이야기한다.

2층 규모 목욕탕의 전체 면적은 500㎡에 불과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최신식 사우나, 찜질방, 목욕탕 시설에 비해 작고 아담하다. 하지만 내·외부는 흐트러진 것 하나 없이 잘 정돈돼 있고, 씻는 물은 물론 집기도 깨끗해 ‘목욕탕의 정석’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태백시 시장길(황지동)에 있는 ‘그린목욕탕’. 도심 번화가에서 1993년 개업했다. 동네 최초의 목욕탕으로 당시 그린목욕탕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목욕탕 1층 입구에 설치된 옛 공중전화, 벽에 붙여진 ‘귀중품은 카운터에 맡겨주세요’ 등의 글귀가 아날로그 감성을 내뿜고 있다.

그린목욕탕은 1대 사장인 허형호씨가 7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허태형(52)씨가 물려받아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허씨는 “우리 목욕탕에서 때를 안밀어 본 동네 주민은 없을 것”이라며 “초등학생이 성인이 돼 다시 목욕탕에 오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고 웃음지었다.

허씨는 지난 2009년 목욕탕에 첫 발을 내디뎌 현재까지 14년째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 권춘자(76)씨도 카운터 일을 보며 아들을 돕고 있다. 그린목욕탕은 30여년 전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이자 ‘핫플레이스’였다. 광부와 난전에서 장사하는 할머니, 일용직 근로자, 보따리 장수, 마을 주민은 그린목욕탕 단골들이다.

최고 전성기인 1990년대에는 마대자루에 담을 정도로 큰 돈을 만졌다. 하루 평균 600여명, 명절 때는 1000여명이 몰렸다. 목욕탕 사장 뿐만 아니라 이발사, 세신사, 구두수선사 모두 쉴새없이 바빴고 수입도 짭짤했다.

허씨는 “탄광 호황기 시절 가장 하고 싶고, 가장 돈 많이 버는 사업은 목욕탕과 여관이었다”며 “명절에는 사람들이 밖에서 대기했다가 들어갈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며 호시절을 회상했다.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기 마련.

석탄산업합리화 조치 후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손님이 줄더니 대형 목욕탕까지 하나 둘 생겨나면서 2010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재 하루 평균 손님은 30명, 예전 10% 수준도 안된다. 그렇다보니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기름값, 전기·수도요금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허씨는 “손님들이 좋은 곳도 많은데 낙후된 시설을 찾아준 것에 오히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며 “겨우 현상 유지를 하고 있지만, 물가가 올라간다고 해서 요금을 당장 올릴 수는 없다”고 했다.

유일한 버팀목은 단골 손님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인연과 주인·손님 간의 계산적 관계를 뛰어넘는 인심 등이 단골들의 발길을 여전히 붙잡고 있다. 허씨는 “목욕탕은 사람들의 정과 우정, 소식을 나누는 만남·소통의 장소”라며 “손님이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그린목욕탕 아니면 목욕을 한 것 같지 않다는 단골들의 말에 힘이 절로 난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허씨는 “마을 주민과 전통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어르신들, 일용직 노동자 분들의 경우 따뜻한 물에 지친 몸을 녹이며 일상을 마무리하는 곳이 목욕탕이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지만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오랫동안 계속 운영하고 싶다”며 “‘깨끗한 목욕탕, 친절한 서비스’로 추억이 깃든 동네 작은 목욕탕의 경쟁력을 높이고 되살려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우열 woo96@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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